진중권과 리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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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리원량
  • 한덕현
  • 승인 2020.02.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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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과 확산을 내부 고발한 리원량에 대한 추모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사회의 온갖 통제 속에서도 호루라기를 불어댄 그 용기도 그렇거니와 의사로서의 책임과 양심을 끝까지 곧추세우며 고군분투하다가 스스로 감염되어 34세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스토리가 세계인을 울리고 있다.

리원량의 죽음은 중국 현지에서도 천안문 사태 이후 숨죽여 있던 시민사회 의식을 일거에 일깨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향후 코로나 대책의 성패 여부에 따라 지금으로선 상상하기가 쉽지않은 폭발력을 일으킬 공산도 크다. 이미 중국인들의 SNS와 세계 언론들은 중국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향한 특단의 여정이 시작됐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추모글에는 “우한인들이여 일어나 저항하라! 이제는 행동할 때다”라는 댓글이 올라오고 교수등 지식인 집단들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중국 정부가 이번엔 역으로 리원량에 대한 관제(官製) 영웅만들기로 여론을 희석시키려고까지 하고 있다.

리원량에 대한 이같은 추모열기는 어찌보면 단순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의사라는 직분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또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바이러스 확산을 경고한 이후 중국 당국으로부터 괴담유포자로 몰리며 엄청난 핍박을 당하면서도 그는 정부를 욕하고 무슨 상대를 탓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바로 이러한 행동들이 비록 사후이지만 리원량을 진정한 의인으로 각인시켰고 그 파장 또한 거침이 없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신의와 신념은 끝까지 소중하게 하면서도 역할과 본분을 다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본인을 드러내기 보다는 “한 명의 의사로서 바이러스 전선을 지키겠다”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진보의 아이콘이었다가 돌연 진보의 저격수로 변신한 진중권이 요즘 정치담론의 단골 소재가 됐다. 지난 9일 안철수의 국민당 발기인대회에선 특강까지 하면서 한 때 본인이 그토록 받들던 진보의 부도덕함과 이중성을 탓하고, 유시민과 안도현 공지영 등 진보 인사들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그가 과거 청문회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어떻게 그렇게 살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느냐”고 1분간 울먹이기도 했다.

 

진중권이 본격적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1998년 11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출간하면서 부터다. 이 책은 같은 의미의 프랑스영화 <I spit on your grave >를 원용한 것으로, 박정희가 생전에 자주 입에 올렸다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를 패러디하여 과거 박정희 권력과 이를 지지하는 당시 우파논객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 박정희는 재임시 청와대 출입기자와 주변인,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핵심 인물들에게 두 가지 말을 특히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와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이다. 후자는 요즘 성황리에 상영중인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자주 튀어 나와 흥미를 주고 있다.

박정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독재와 폭압정치라는 국민적 비난에 맞서 그래도 대한민국의 경제부흥을 이룬 지도자임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지금이 아니라 죽은 뒤에나 평가하라는 취지로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겠지만 진중권은 오히려 현대사의 굴절된 역사에 남겨진 박정희의 악역이 더 크다는 의미로 그 추종자들까지 파쇼로 규정하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맞받아친 것이다. 진중권은 지금도 공개적 발언에 직설적이지만 당시의 책 내용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길만큼 독설적이었고 이를 계기로 진보논객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진보에 대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니 당연히 진중권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진정 소신있는 지식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 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대접받다가 난데없이(?) 박근혜 찬가를 부르는 바람에 시나브로 무대 뒤로 사라진 이문열과 김지하에 빗대어 ‘변절자’라는 딱지가 중첩된다. 분명한 것은 진중권은 자신이 평생 공들여온 ‘진보’를 부도덕으로 매도하고 대표적인 진보론자들을 ‘좀비’ 내지 ‘바이러스’라고 칭함으로써 진보 자체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상으로 치면 이는 이념적 전향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조국 사태를 계기로 본격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진보에 대한 진중권의 쓴 소리는 맞다. 진보라고 하면 국민들은 여전히 깨끗한 도덕성과 정직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진보는 골프를 쳐도 비난을 받고 양주를 마셔도 눈총을 받는다. 조국이 국민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한 결정적 요인은 사실 위법이니 탈법이니 하는 것들보다도 그가 누리는 상위계층의 특권과 이를 당연시하게 여기는 그들의 박제된 의식 때문인 지도 모른다.

진중권 같은 내부 고발자 성격의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말이야 진실과 정의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그가 속한 조직 혹은 집단의 분위기는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썰렁해지고 심지어는 적대적이 된다. 지금 진중권에 대한 진보쪽의 속내도 바로 이럴 것이다. 이 때 당사자를 지켜주는 건 비록 생각은 다르더라도 자기가 천착했던 집단의 논리에 대한 신의와 믿음은 변치 않으려는 의지인 것이다. 리원량처럼 말이다.

진보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진중권이 빨갱이와 종북타령으로 소일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식을 안길 수는 없다. 진보 안에서 투쟁하고 싸우라는 것이다. 진보에 배신감을 갖는다고 해서 수구와 태극기에 눈을 맞출 수는 없다. 안 그러면 그는 평생 삶의 유랑아가 된다.

리원량은 병상에서 말했다. “건강한 사회에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선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진중권이 단 하나의 목소리만 내려는 진보를 향해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지 결코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그의 얼굴이 자꾸 옹색해진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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