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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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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십니까?
  • 충청리뷰
  • 승인 2020.02.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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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초연결사회에 살지만 더 외로워
사회적 해법 찾기 위해 각자 방식대로 연대해야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헝가리 작가 프리기예스 카린시는 1929년 단편소설 <사슬>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다섯 사람만 있으면 된다’며 네트워크 사회를 예견했다. 그리고 1967년 스탠리 밀그램은 ‘작은 세상 실험’(Small-world phenomenon)’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거주하는 160명의 사람에게 소포를 주고, 보스턴에 거주하는 증권 중개인에게 보내도록 했는데 그를 잘 알 것 같은 지인에게 소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소포를 보내는 실험이었다. 소포의 경로를 추적해보니, 평균 6.6명을 거쳐 도착했다. 다섯 사람만 거치면 지구상의 누구와도 연결 될 수 있다는 ‘여섯 단계의 분리(Six Degrees of Separation) 법칙’이다.

6단계의 작은 지구가 더 작아지고 있다. 네트워크 사회를 넘어 초연결 사회로 진입했다. 페이스북은 ‘알 수도 있는 사람’을 보여주고, 인스타그램은 ‘친구의 친구’를 소개한다. 원한다면 클릭 몇 번으로 셀럽과 직접 소통도 가능하다.

나는 <여행생활자>의 저자 유성용 작가의 팬이다. 페이스북에 안부를 남기면, 그가 답한다. 설레는 세상이다. 비행기보다 빠른 시속 1,220㎞의 하이퍼루프가 개발되고, 5G를 통해 누구든 무엇이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술의 진보는 예측불가능하게 전개된다. 스마트 시티는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바이러스도 초연결 네트워크망을 따라 전 세계로 빠르게 이동한다.

결국 작은 세계야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한 작은 지구에 사는 지구인은 점점 외로워진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혼밥, 혼술이 대세다. 고독사는 더 이상 노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피로사회, 혐오사회, 인종주의, 맘충, 한남, 꼴페미.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개념어는 온통 부정어다. 혐오 대상은 많아지고,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뿐이랴. 기후 변화로 인한 미세먼지는 일상의 재앙이다. 회색빛 세상이 감정과 건강을 위협한다. 6개월동안 지속된 호주 산불이 초래할 기후변화는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빙하는 녹고,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폭염, 폭우, 지진, 해일은 지구의 신음소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결국 작은 세계다.

지구라는 공동체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공동체의 공간 영역을 확대시킨다. 이웃보다 페이스북 친구와 교류를 나누는 시대다. 그러나 오래 집을 비울 때, 반려견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 사는 사람이다. 공동체를 정의할 때 공간의 범위가 여전히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라는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구 공동체는 너무 거대해서 실체가 잡히지 않는 상상의 공동체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와 확산은 지구가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소름끼치게 실감시켜준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상처를 주는 것은 타인이지만, 회복할 힘을 주는 것도 타인이다. 감정도 전염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다. 고독이나 행복도 관계망을 따라 이동한다.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무엇인가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오염된 작은 세상의 우리는 혐오할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인류 대가족에 관심을 갖게. 사람들에게 자네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게.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그만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도시는 함께 사는 우리, 공동체가 만든다.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지만 도시를 도시답게 하는 건 고층 건물이 아니라 보행, 만남, 소비, 놀이, 교류, 연대의 공동체 활동이자 서로가 낯선 타인이 아닌 공통의 운명 공동체라는 자각이다.

타인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공감각되고 언제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고통으로 인지할 때 사회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연대할 수 있다. 어떤 개인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 말로 실상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외로움 뿐 아니라 범죄, 재해, 재난, 기후변화, 전염병에 대응하는 지구 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다.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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