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스스로 모험과 저항을 찾아라”
상태바
“삶에서 스스로 모험과 저항을 찾아라”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04.16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괴산 ‘여우숲’ 조성한 인간(?) 대표 김용규의 숲 예찬
매달 인문학 공부하는 숲 학교 운영…플랫폼 만들고파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여우숲’. 여우가 언젠가 되살아오기를 기다리는 숲에 김용규 씨가 있다. 그는 오늘도 여우를 기다리며 사재를 털어 숲을 가꾼다. 숲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김용규. 그래서 그는 자신을 여우숲의 인간대표라고 부른다.

2000년 김 씨는 잘나가는 벤처회사의 CEO였다. 결국 그 일을 2007년까지 했지만 김 씨가 뭔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꼈던 것은 3년 째부터였다고 한다.

그 때마다 그는 치유받기 위해 산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산에 가면 몸과 마음이 편했다. 자주 가다보니 산에 대해 뭔가 알고 싶어졌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을 검색하다 구본영 선생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란 강의가 소개된 것을 봤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40대 성공을 위해 달리던 그에게 이란 단어는 생소하게 다가왔다. “꿈을 어떻게 팔 수 있지?”

강의를 들으면서 그는 숲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숲을 공부하는 일은 바로 잃어버린 생명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김용규 씨는 2006년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미루길 일대 산을 매입하고 이곳을 ‘여우숲’이라 이름 붙였다. 산을 돌보며 자신을 돌아봤다. 숲은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주었고, 그는 화답하듯 책으로 엮었다. 여우숲에선 매달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 사진=육성준 기자
김용규 씨는 2006년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미루길 일대 산을 매입하고 이곳을 ‘여우숲’이라 이름 붙였다. 산을 돌보며 자신을 돌아봤다. 숲은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주었고, 그는 화답하듯 책으로 엮었다. 여우숲에선 매달 인문학 강의가 열린다. / 사진=육성준 기자

 

벤처 CEO에서 숲 활동가로

 

김 씨는 2006년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미루길 105-43번지 약 8만 평을 매입하게 된다. 그는 이곳을 여우숲이라 이름 붙였다. 2년 동안 전기를 끌어오고 난 뒤 2008년 오두막인 백오산방을 지었다. 백오(白烏)는 김용규 씨의 호다. 역술인인 초아 서대원 선생이 술 한잔 걸치고 지어줬다. 흰 까마귀는 고구려의 시조새인 삼족오이다. 상서로운 새이지만 무리에 끼지 못하는 돌연변이이기도 하다.

예종 때 흰 까마귀가 떼로 날아와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인문주의자의 숙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외롭고 쓸쓸한 신세이지 않나.”

사실 산을 매입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내 또한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고정된 삶의 지표들이 확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화려한 성공의 길, 어쩌면 제일 앞 순번에서 달렸던 그를 숲이 끌어내렸다.

우연히 등산을 하다가 거대한 바위위에 떨어진 소나무를 봤다. 바위를 뚫고 지나간 소나무의 생명력을 보면서 경외감이 생겼다. 바위의 작은 틈 안에 생명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한편 나무는 얼마나 가혹했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나무의 미덕은 포용한다는 것이다. 바위를 끌어안는 나무를 본 뒤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큰 깨달음이었다. 나로 사는 일은 곧 과는 멀어진 삶이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모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말하길 절망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살아있음을 경험하기로 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일종의 저항정신을 요구했다. 그런데 심장이 뛰었다.”

 

여우숲은 사람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여우숲은 사람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3개월 만에 쓴 책 베스트셀러가 되다

 

2008년 가을 백오산방에서 3개월 만에 쓴 책이 <숲에게 길을 묻다>였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상은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김 씨는 숲을 매개로 한 삶과 생태,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이후에 <숲에서 온 편지><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을 펴냈다.

또 마을사람들과 농업회사법인 숲이랑 사오랑을 꾸렸다. 사오랑은 이 마을의 옛지명이다. 김 씨는 5년 여 동안 마을사람들과 마음을 맞췄지만 쉽지 않았다.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법인을 만들고 사업을 도모하는 것은 숲의 질서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숲은 이념이 없다. 씨가 발아하고 난 뒤 풀 더미와 가시덤불이 생긴다. 더 큰 바람이 불어와 싹을 틔우고 또 흘러간다. 사회적인 조직은 그렇지 않다. 인위적인 것들을 동반해야 한다. 숲의 원리가 무위무불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인위적으로 조림하려고 한다. 계몽의 관점으로 자꾸만 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숲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여우숲은 회복과 전환의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숲을 사랑하는 도시인과 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가꾸었지만 자본의 논리로 보면 도저히 해답을 낼 수 없다. 지금은 이곳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돈을 쓰고 있다. 혼자선 감당하기가 힘들다. 이곳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발성을 가지고 함께 운영하기를 바란다.”

사재를 털어 산을 매입했지만 그는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사유지 공간도 농업회사법인이 무료로 사용하도록 했다. 농업회사법인에선 정부지원을 받아 여우숲 안에 숙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여우숲은 지대가 높아 사계절의 풍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김 씨는 지금 여우숲에서 인문학 학교 오래된 미래의 교장을 맡고 있다. ‘자연스러운삶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숲 학교 오래된 미래는 한 달에 한번 인문학 강연회를 연다. 매달 첫째주 토요일에 여우숲에서 강의가 열린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와서 12일로 여우숲에 머무르며 강의를 듣고 숲을 체험한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능동적인 에너지를 체험하고 가면 좋겠다. 오롯이 자기 세계를 만나기를 바란다. 결국 인문이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인지 계속 묻는 것이다. 성공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면 좋은 삶일까. 생명은 언제나 모험하도록 설계돼 있다. 모험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곳에서 작은 실천을 해보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