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 유치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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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광가속기 유치의 메시지
  • 한덕현
  • 승인 2020.05.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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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청주유치에 성공한 충북은 연일 축제분위기다. 지역사회의 모든 계층이 자발적으로 긍정의 목소리를 합창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7조원대 경제유발과 10만여명 고용효과로 추산되는 외형적 지표가 상징하듯 이번 쾌거는 충북에 던지는 메시지가 특별하고도, 아주 특별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이를 ‘지역의 정서’와 ‘지역의 발전’이라는 두 축으로 해석하고 싶다.

우선, 방사광가속기의 청주유치 확정은 지역의 정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호재를 안겼다. 유치가 결정되는 순간 도민들은 그저 뿌듯하기만 했고 이는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민관과 학계, 언론 등이 모두 참여해 지역사회가 한 가지 이슈에 대해 총체적으로 매달려 소기의 성과를 내기는 지난 2005년 6월 호남고속철도 오송 분기역 확정 이후 처음이다. 그때도 전 도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똘똘 뭉쳐 지금의 오송역을 가능케 했다. 한 가지 과제를 놓고 도민들이 그 때만큼 일치단결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시종 견인하며 어느덧 암적인 존재로까지 작용한 것들이 있다. 세대간 반목, 행정력에 대한 불신,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냉소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른바 ‘꼰대문화’가 득세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크지 못하고, 청주시를 위시한 공직자들의 비위·일탈이 끊이지 않자 시민들의 행정불신이 그 어느때보다도 팽배했으며, 각종 공조직이나 직능단체의 책임자를 맡은 인사들의 정체성이 의심받으면서 결과적으로 지역사회의 통합을 저해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번 방사광가속기의 청주유치는 이같은 지역사회의 계층간 괴리감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되고도 남는다. 긍지와 자신감은 곧 신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종 지사는 청주 유치가 확정된 후 “만약 무산되면 도지사 직을 내려놓을 각오였다”고 그간의 심적고충을 토로했다. 가정이지만 청주유치가 좌절됐다면 그 후폭풍은 패배한 전남 나주시 경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컸을 수도 있다. 당장 3선 임기의 마지막 후반기에 돌입한 이 지사로선 심각한 레임덕까지 고민할 판이었다. 지난 2008년 1차 신청 때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올인한 처지에선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공언한 청주시 선거구의 민주당 당선자들은 누구보다도 전전반측의 밤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4개 선거구 전체를 민주당에 안긴 시민들의 입장에선 실패할 경우 그 상실감의 파괴력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선자들이 국회의원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시한폭탄을 안았다’는 얘기는 이래서 나왔다. 청주유치 확정이 발표될 시점의 시민들 사석에선 ‘실패한다면 문재인 정권의 충북출신 요인들과 민주당 당선인들은 곧바로 허당이 된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두 번째로 ‘지역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선 평가가 더욱 구체적이다. 방사광가속기 유치로 청주는 오송과 오창을 연계한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중심, 세계적인 과학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전초기지를 마련한 셈이 됐다. 앞으로 이 사업의 전개과정에 따라선 지금으로선 예측할 수 없는 더 큰 시너지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동안 이시종체제의 충북도가 흔들림없이 주창해 온 것은 충북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균형발전론이다. 이 것에서 도출해 낸 정책 아젠다가 ‘국가철도망 X축 구축’과 ‘영충호시대’, ‘강호축’ 등이다. X축 구축은 오송분기역 유치와 그 이후의 진척으로 어느정도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지만 영충호시대와 강호축 발전론은 냉정하게 따지면 수사(修辭)적 이미지를 뛰어넘는 실체감을 도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조감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조감도

 

영충호는 그동안의 영호남 양극체제를 벗어나 인구에서도 호남을 앞서는 충청권을 포함시키는 3극 체제로 전환할 것을 주창하는 논리이고, 강호축은 기존의 경부축을 대체해 강원, 충청, 호남을 잇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벨트전략이라는 측면에서 그 발상의 전환과 또 이를 선점한 충북의 창의·순발력은 아무리 호평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에 대한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면서도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지역세가 약한 충북이 선창하는 것에 대한 머뭇거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충호와 강호축의 실천적 추이에 대해서는 지역언론에서도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던 차에 이번 방사광가속기 청주유치는 이런 논란에 화룡점정을 찍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대외적으로도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한 충북은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또 하나 특단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축제 분위기의 이면엔 일부 비판론도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방사광가속기 유치가 과연 시민과 도민들에게 어떠한 실질적 이득을 가져오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워낙 고도의 첨단기술에 기반하는 국책사업의 특성상 역시 특정 엘리트들만의 무대가 되어 자칫 방사광가속기라는 시설이 지역의 산업생태계와는 동떨어진 ‘섬’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않게 제기된다. 건설과정에서도 특수 공정이라는 이유로 지역업체가 참여는 커녕 강건너불구경을 하거나 향후 그 곳 종사원들도 거주가 아닌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혁신도시의 재판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충북으로선 유치의 성공 못지않게 앞으로의 진행과정에 더 심혈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방사광가속기를 목표로한 지역 교육기관들의 맞춤형 취업전략, 이른바 패러다임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고 행정기관 또한 이 시설이 최대한 지역과 밀착될 수 있도록 선제적 대안을 창출하는데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충북은 방사광가속기에 땅만 내주었지 실익은 모두 애먼 데에 내주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기껏 범도민운동으로 청주공항을 유치하고도 그 활성화와 지역밀착까지는 오랜 시간을 소요한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다. 좋은 일에는 그만큼 역기능도 잠재해 있다. 이런 점에서 충북도가 방사광가속기 건설에 맞춰 인근에 과학 인재들의 정주공간이 될 사이언스 아카데미 빌리지를 구축하려는 계획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구상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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