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초등학교와 골프연습장의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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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초등학교와 골프연습장의 특별한 만남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6.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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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구정초등학교-증평골프연습장 “제 3의 대안학교” 기발한 꿈
“다시 돌아 오는 학교, 희망을 심기 위한 것”
전혀 상반된 위치에서 마을 공동체 실현 단초


골프는 어느덧 운동이 아닌 꿈이 됐다. 더 이상 사치의 대상도 아니다. 98년 박세리의 ‘신화’는 8년이 지난 지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자아실현의 ‘실체’로 변하고 있다. 이름없는 한 시골 초등학교와 골프연습장이 만난 이유는 바로 신화같은 꿈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런 작은 도전은 앞으로 지금과는 반대로 도시에서 시골로 아이들이 역류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큰 꿈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증평에 인접한 구정초등학교(교장 김휘웅·진천군 초평면 용산리)는 요즘 아주 특별한 방과후 수업을 갖는다. 이 학교 5, 6학년 전원이 매주 화, 금요일마다 골프를 배운다. 만약 이런 일이 대도시 학교에서 있었다면 별다른 시선을 못 받았을 것이다. 이 학교는 외형으로만 보면 전체 학생이 54명에 불과한 그야말로 폐교위기에 처한 촌동네 학교에 해당된다. 저학년이 빠져나간 오후 시간대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학교 5, 6학년 전원이 지난 4월 정식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5학년 9명, 6학년 8명 등 모두 17명이다.

사연은 이렇다. 이곳 구정초등학교는 요즘 흔해빠진 무슨 무슨 특성화 학교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차별화 교육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일단이 연극과 영화, 원어민 영어교육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런 교육을 도입해 아이들에게 자아 성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도 학생수는 자꾸 줄어들고, 시골학교로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았다. 이런 고민 속에 나타난 발상이 바로 아이들에 대한 골프 교육이다. 하지만 시골 학교의 재정형편상 이런 뜻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쳤다. 학교측이 마음고생을 계속하던 중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 학교에 자녀가 다니는 몇몇 학부형이다. 평소 인맥관계를 동원, 인근 골프연습장과 연결해 준 것이다. 증평 지역의 유일한 골프연습장인 증평골프연습장(대표 이동희)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증평골프연습장은 구정초등학교의 무모한 발상을 선뜻 받아들였다. 무료 교육을 약속했고, 곧바로 5,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레슨을 시작한 것이다. 증평골프연습장 이동희대표(52·여)는 “여기에 정착한 이상 항상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한테도 이번 일은 좋은 계기가 됐다. 다른 것보다도 아이들에게 한가지라도 더 안기려는 학교 교장, 교감선생님의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기엔 여러 부담이 따르지만 지금으로선 할 수 있을때까지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꼭 선수로 키우겠다는 욕심보다는 뭔가 자신감을 심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몇몇은 벌써 상당한 끼와 가능성을 엿보여 솔직히 기대감도 갖는다. 날이 갈 수록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는 것같아 그 것이 우선 즐겁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골프장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골프장의 이용객중 현재 절반이 공짜 혹은 할인고객이다.

증평골프연습장은 약 10여년 전부터 다른 사람에 의해 운영되던 것을 2003년 이대표 부부가 인수했다. 당초 생각은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이들 부부는 구정초등학교와의 인연으로 더 의미있는 노후를 대비하게 됐다며 즐거워 한다. 아이들에 대한 레슨은 주로 이대표의 부군인 유준선씨(52)가 전담하고 연습장에 소속된 2명의 세미 및 티칭프로가 거들고 있다. 대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유씨는 20년 경력의 프로급 실력자로 현재 PGA 티칭프로 자격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화, 금요일마다 증평 대전을 오가는 신역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비록 시골학교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여건상 일주일에 두 번밖에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쉽다. 학교 스스로 약식이나마 자체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각계의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 골프를 가르치다 보니까 아이들이 더 활동적이고 자신감을 갖는 것같아 나로서도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이들을 인솔하는 역할로 족했던 이 학교 최종덕 교감과 정해란교사(31)도 이젠 아이들 틈에 끼여 골프배우기에 열심이다. 최종덕교감은 “시골학교에 근무하면서 항상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아이들의 감소, 즉 이탈현상이다. 때문에 역발상으로 다시 돌아 오는 학교로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중 골프를 떠올리게 됐다. 골프장측의 헌신적 노력으로 일단 그 계기를 만든 것같아 기쁘다. 학교 분위기도 눈에 띌 정도로 밝아 졌다”고 말했다. 또 정해란교사는 “보통 사람들의 골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귀족스포츠로만 생각하고 과연 될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모두 편견이었다. 우선 아이들이 모든 일에 더 자신감을 갖는 것같다. 자기들끼리의 대화도 많아졌다.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또 하나 경험케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골프채를 잡게 한지 이제 불과 두달, 그런데 ‘다시 돌아오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교직원들의 꿈이 현실로 다가 올지도 모를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주변에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도시 지역인 인근 증평읍과 청주에서까지 자녀의 전학을 타진하는 문의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취재 당시 현장에서도 학교측과 한 이용객이 이를 숙고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청소년들에게 골프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최소한 월 300만원에서 50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통설이 됐다. 이를 감안하면 구정초등학교와 증평골프연습장의 무료 교육은 당연히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의 과정을 얼마나 내실화시켜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냐는 것이다. 이를 놓고 현재 학교와 골프연습장은 또 다른 행복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유준선 사장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골프에 끼가 엿보이는 학생은 달리기 축구 등 다른 운동도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 기본교육에 머물고 있지만 이들이 앞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정신적으로 큰 경험이 됐으면 한다. 역시 아이들에겐 아낌없는 칭찬이나 격려가 최고의 교육이라는 것 절감하고 있다. ”

홍승표 군(12·6학년)
“골프가 재미는 있는데 너무 어렵다. 하지만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진 것같아 좋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과 제주에서 학교 다닐 땐 못 느꼈던 자연도 가까이 할 수 있어 좋은 것같다. 앞으로도 더 배우고 싶은데 코치 선생님이 무서워서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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