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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은 항구와 철도를 위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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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은 항구와 철도를 위한 전쟁?
  • 충청리뷰
  • 승인 2020.06.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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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즈화 중국 화동사범대 교수 흥미로운 가설 제시

 

70년 전 6월, 한반도의 역사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6월 25일 새벽에 김일성의 인민군이 38도 선을 넘으며 대거 남침을 개시하면서, 한반도에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낼 전쟁인 한국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전쟁은 국가와 정부가 언제나 일순위로 염두에 두는 역사적 기억이었다. 상이군인, 이산가족, 전쟁 유가족 등 수많은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뿌린 사건이었으며, 이후 70년 동안 숱한 작품에서 변주된 문화적 모티브이기도 했다. 전쟁 후 많은 사람이 북한의 침략을 항상 경계하며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한 가운데 또 어떤 사람들은 ‘분단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몸을 던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70년 현대사는 한국 전쟁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 전쟁은 한반도에 이처럼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사실 한반도만 바라보아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기도 하다. 먼저, 미국과 소련의 세계를 둘러싼 패권투쟁, 냉전이라는 국제질서가 한국 전쟁을 만들어냈다. 물론 냉전도 한국 전쟁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만능 도구는 아니다.

동아시아 지정학 연장 선상에서 보면
개인적으로 한국 전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각으로 꼽는 것은 동아시아 지정학이다. 지정학은 지리적 조건, 즉 대륙과 바다의 모양과 분포, 토지와 수로를 이용하는 방식, 구체적인 장소 위에 뻗어 있는 항만과 철도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강대국들의 권력과 연관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동아시아 지정학의 연장 선상에서 한국 전쟁을 바라보면 전쟁의 동기도 읽기가 쉬워진다. 한국 전쟁은 한반도를 전부 자신의 수중에 넣고자 했던 김일성의 야욕으로 일어난 전쟁이자 냉전기 두 진영의 투쟁으로서 국제전으로 확전되었지만, 전쟁이 일어난 원인에는 철도와 항만도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되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 사람은 중국 화동사범대학의 션즈화 교수다. 그는 국내에도 소개된 저서들을 통해서 한국 전쟁의 기원을 중국의 뤼순, 다롄 항과 창춘 철도(구 남만주 철도)를 통제하고자 했던 스탈린의 바람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의 치타까지 뻗어나간 시베리아 철도는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가닥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가고, 다른 한 가닥은 하얼빈을 거쳐 창춘을 지나 뤼순으로 나가니, 소련으로서는 이 시설들이 태평양 진출을 위한 필수적 교두보인 셈이다.

실제 하세가와 쓰요시 교수의 <종전의 설계자들>을 보면 일본 패망을 목전에 두고 스탈린이 이 지역을 얻기 위해 벌인 게임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1949년에 중국은 공산화가 되어 친소 국가가 되었는데 스탈린은 왜 중국의 항구와 철도를 얻기 원했을까?

션즈화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스탈린이 오히려 이 두 중요한 군사 시설을 상실한 것에 주목한다. 1945년, 소련은 만주의 일본군을 몰아내고 장제스와 조약을 맺을 때 항구와 철도를 얻어낼 수 있었다.

뤼순, 다롄 항과 창춘 철도는 과거 러시아 제국이 영국과 유라시아 전역을 놓고 경쟁할 당시 러시아가 청나라 땅에 건설했다가 러일전쟁으로 상실한 시설이기도 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영수보다 전통적 러시아 지정학의 실천가로서 활동하는 경우가 더 잦았던 스탈린에게 이 지역들은 중국에 돌려줘야 할 곳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곳이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파악 중요
그러나 장제스가 마오쩌둥에 의해 순식간에 몰락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 마오쩌둥은 이제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에서 물러났으니, 동북지역의 중요한 전략자산을 구태여 소련이 계속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장했다. 이제 혁명적인 중국 인민이 그 시설을 관리하면 될 일이었다. 마오쩌둥은 모스크바까지 방문해서도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끝내 스탈린에게서 항구와 철도를 받아낼 수 있었다.

션즈화 교수에 따르면, 스탈린이 번번이 무시하던 김일성의 남침 허가 요청에 전향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점이었다. 만약 뤼순, 다롄, 창춘 철도에 가까운 한반도에 전쟁이 조성되면 스탈린은 안보를 명목으로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부분적으로 회수할 수 있을 것이고, 김일성이 적화통일을 달성하면 원래 목표로 두었던 시설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었다.

미국과 직접적 충돌을 극히 꺼리던 스탈린 이었지만, 그는 마오쩌둥의 중국을 억제하고 소련의 지정학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김일성을 이용해 한반도 주민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수지타산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3년을 이어갈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70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국 전쟁을 둘러싼 이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전해준다. 1950년에도 한반도의 전쟁은 단순히 한반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두고 내린 결정은 지구 각지에 펼쳐져 있는 이해관계를 종합하여 두는 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지구 각지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경쟁과 긴장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펼쳐진다. 단지 플레이어가 바뀌었을 뿐이다.

들어보지도 못한 지역의 도로와 항구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가 알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 전쟁이 주는 주요한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들어보지도 못한’ 지역들을 두고 강대국들이 어떤 이해관계를 갖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다시 혼란해지는 세계를 헤쳐나가는 데 갖춰야 할 중요한 나침반이 아닐까.

/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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