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세우고 부수는 게 그리 간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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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세우고 부수는 게 그리 간단한가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07.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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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도의회, 도민 의견수렴 없이 전두환·노태우 동상철거 계획
청남대에 대통령기념관·동상·길 만들 때 논란, 언제까지 할건가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 사진/ 육성준 기자

 

청남대에 무슨 일이?
계속되는 대통령 동상 철거논란

청남대 안의 전두환·노태우 동상은 철거해야 하는가, 아니면 볼거리로 존치시켜야 하는가. 지난 17일 충북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었던 ‘충청북도 전직대통령 기념사업조례안’이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으면서 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때문에 철거여부가 과제로 남았다. 정치적 사안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진보와 보수로 갈라지는 우리사회 습성답게 이번에도 이를 놓고 찬반 양쪽이 대립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도의회는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도민의견을 수렴하고 심사숙고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며 조례안 상정을 미뤘다. 임영은 행정문화위원장은 오는 9월 이 조례안을 상정하겠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청남대 안에 역대 대통령과 관련된 기념관, 동상, 대통령 길을 만들 때마다 찬반 싸움이 벌어졌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자랑스런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언제까지 이런 일로 갈등해야 하는가. 뭔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동상철거 논란 과정에서 충북도의 도민 의견수렴 불충분, 도의회의 준비안된 조례안 제정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번갯불에 콩 구어먹듯’ 2개월만에 동상 등을 철거해 버리려고 한 점이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몇 몇이 결정하고 넘어가려 한 점을 문제삼았다.

충북도내 1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충북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지난 5월 13일 충북도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와 대통령길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전두환·노태우 신군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탱크와 총칼로 살육하고 정권을 탈취한 군사반란자”라며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철거하고 대통령 길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5·18 40주년을 맞아 이시종 지사에게 이를 건의했고, 이 지사는 다음 날 도정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이렇게 신속히 결정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는 결정을 해놓고 철거 명분이 없자 행동개시를 하지 못했다.
 

도민들의 의견 찬반으로 갈려

그러자 이번에는 도의회가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의원(청주7)이 대표발의를 하고 같은 당 의원 24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충청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조례안’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주요 골자는 ‘도지사는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기념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기념사업을 중단·철회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례안에 따르면 기념사업은 대통령 기념관, 동상, 기록화 제작·전시, 그밖에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이다. 만일 이 조례안이 가결되면 전두환·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 내 전시물품, 동상, 기록화 등은 모두 철거된다. 기념사업을 중단해야 하므로 모든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런데도 충북도나 도의회는 도민 공청회 내지 토론회를 열지 않았다. 공론화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상식 도의원(민·청주7)은 “나는 오래전부터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철거하고 길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충북도가 철거를 결정해놓고 엉거주춤하고 있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 조례안을 발의했다. 올해 5·18 40주년이라 철거요구가 나온 것인데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 또 불거질 것이다. 반복되는 갈등을 종식시킬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동상은 우리의 역사이며 관광상품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동상은 역사적 유물이 아니다. 존경할 만한 인물을 동상으로 세우고 기리는 것인데 이들이 그럴만한 인물들인가. 또 관광상품은 관광객들이 볼 때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데 여전히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의 기념사업에 대한 도민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독재자 살인마를 제외하자는 측과 역대 대통령으로서 기록을 남기되 공과를 정확히 적시해 보여주자는 측이 있다. 일각에서는 세종시의 대통령기록관을 거론하며 나쁜 역사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공은 도민들에게 넘어갔다.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사진/ 육성준 기자

 

“하지 말라고 할 때는 돈들여 하더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기념관, 동상, 길을 만들 때마다 찬반여론이 있었다. 대통령이 쓰던 각종 물건을 전시한 기념관, 동상, 산책로에 이름을 붙인 대통령 길을 조성할 때 살인마 독재자 전두환·노태우를 빼라는 항의들이 이어졌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측은 “사업을 할 때마다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했다”고 했으나 실제는 충북도 계획대로 진행됐다.

지역의 모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대통령의 흔적과 동상, 산책길을 만들지 말라고 할 때는 굳이 돈들여 해놓고 이제는 시민단체가 요구했다고 철거하겠다고 한다. 충북도는 마음 내키는대로 행정을 하는가. 언제 한 번 제대로 도민 의견수렴을 했느냐”고 쏘아붙였다. 과정을 지켜보면 지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이런 상징물을 세울 때도 도에서 구성한 위원회 말만 듣고 추진했다. 때문에 “그 때나 지금이나 충북도가 일을 너무 가볍게 처리한다”는 말이 나온다.

동상 철거를 반대해 온 자유시민연합은 17일 도의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청남대는 한 해 85만명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이시종 지사가 매년 수십억원을 들여 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공청회도 없이 특정단체 얘기를 듣고 철거하려고 한다. 충청북도 ‘전직대통령 기념사업조례안’은 특정단체의 민원해결용 억지 조례안이다. 상위법인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국가사무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자체 사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가하면 도의회는 ‘충청북도 전직대통령 기념사업조례안’을 후반기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행정문화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었다. 7월 첫 째, 둘 째 주에는 박문희 의장파와 연철흠 의원파로 갈려 상임위원장 선출문제로 싸우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17일에 이 조례안을 심의키로 한 것. 하지만 후반기에는 상임위를 다시 구성해 행정문화위 6명 의원 중 5명이 바뀌었다. 이들은 내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임영은 행정문화위원장(민·진천1)은 “상임위가 바뀐 뒤 의원들이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조례안의 문구 수정도 필요하다. 진영논리에 따라 찬반이 갈렸는데 의회에서는 무엇보다 도민들의 의견이 어떤지 들어보려고 한다. 8월에 의견수렴을 하고 9월에 조례안을 상정하는 것으로 추진할 것이다”고 밝혔다.
 

청남대 발전방안 없으니 흔들리지

도의회의 일처리는 한마디로 순서가 바뀌었다. 조례안을 만들어놓고 후에 검토내지 의견수렴`이 돼버린 것이다. 이상식 의원은 6월 29일 이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7월 후반기 의회 시작을 앞 둔 전반기 막바지에 이처럼 중요한 일을 시작했고 17일에 처리하려고 했던 것. 이 의원도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 날 심의하려다 당일 아침에 의원들 사이에서 좀 더 심도있게 검토하자는 얘기들이 나오자 미뤘다는 후문이다.

이 조례안은 민주당 27명 중 25명의 의원이 공동발의 했으나 일부는 상부상조 차원에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같은 당 의원이 요구하면 안해줄 수 없어 서명한다. 그래야 내가 부탁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남대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봄에는 봄꽃, 여름에는 시원한 대청호, 가을에는 국화와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있다. 요즘같은 여름에 가면 대청호의 시원한 물을 바라보며 산책길을 걷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다. 청남대관리사업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2월 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주말 1일 평균 1만~1만2000명, 평일 1일 4000~50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주말 1일 평균 1000명 내외가 입장한다.

그런데 충북도는 특별한 관광자원인 청남대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측은 상수원보호구역인 대청호 영향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해볼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곳에는 관광지의 3대 요소인 식당, 카페, 숙소가 없다. 간식과 물 등 간단한 것을 파는 매점이 한 군데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재는 개발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옛 대통령 별장이라는 특수성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대통령 리더십스쿨이 유일하다. 이는 초중고등학생이 리더십 강의를 듣고 청남대를 관람하는 것이다.

충북도에 아쉬운 것은 개방한지 37년 된 청남대에 관한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점이다. 도는 2004년 8월 ‘청남대 명소화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했으나 돈만 쓰고 흐지부지 됐다. 뚜렷한 계획이 없다보니 청남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차제에 동상문제 뿐만 아니라 청남대 발전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두환 길. 사진/ 육성준 기자
전두환 길. 사진/ 육성준 기자

1983년 준공된 ‘남쪽의 청와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방, 충북도로 이관

옛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별장 건립을 지시했다. 이후 본관, 골프장, 그늘집, 락커룸, 오각정, 양어장, 수영장 등을 갖춘 청남대가 탄생한다. 1983년 12월 27일 준공식이 열렸다.

청남대관리사업소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회 84박10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25회 103박128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28회 95박13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회 83박122일,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회 1박2일을 이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청남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며 2003년 4월 18일 개방했다. 이로써 소유권이 청와대에서 충북도로 넘어갔다.

충북도는 2003년 청남대 관리사업소를 만들고 그 해부터 유료개방을 시작했다. 이후 관리사업소는 하늘정원 개장, 자연생태관찰로를 대통령길로 명명, 대통령기념관 준공, 동상 제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 동상 설치 등을 끝냈고 행정수반 8명에 대한 역사기록관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이 곳에서는 봄에 영춘제, 가을에 국화축제가 열리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촬영 장소로 이용된다. 대통령기념관 세미나실과 별관의 회의실, 세미나실, 강당을 유료로 빌려주고 있다.
 

충북도, 전직 대통령 동상을 두 번이나 제작
형태 조잡하고 노후됐다며 4년 후에 또

충북도는 역대 대통령 동상을 두 차례에 걸쳐 제작했다. 먼저 2009년 2~12월 1억9800만원을 들여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9명의 동상을 만들어 2010년 1월 청남대 대통령광장에서 제막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동상 형태가 조잡하고 노후화로 잦은 민원이 발생한다며 2013~2015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추가해 10명의 동상을 또 만든다. 2015년 1월 준공했고 14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처음에 만든 동상은 2020년 4월 비공개 전시실로 이전했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동상 제작에 대해 논란이 있었음에도 충북도는 두 번씩이나 강행했다. 여기에 투입된 돈만 총 16억원이다. 모 씨는 “철거 근거와 사후처리가 문제될 수 있다. 또 동상을 철거하면 세금낭비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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