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큰 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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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큰 별의 꿈
  • 충청리뷰
  • 승인 2020.08.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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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현 농부 작가
최성현 농부 작가

 

1 믿을 수 없었다. 부음을 전하는 이에게 여러 번 되물어야 했다. 그 분이 녹색평론 발행인인 그 분 맞냐고? 김종철! 그는 1947년생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70대 초반이다. 떠날 나이가 결코 아니다. 그런 그가 6월 25일에 떠났다 했다. 황망했다. 큰 별이 진 느낌이었다.

그는 1991년부터 녹색평론이라는 이름의 격월간 잡지를 내기 시작하여 올 7,8월호(173호)까지 단 한 차례도 빼먹지 않았다. 3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이었다. 큰 서원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올 3,4월호에서 그는 그 잡지를 시작할 때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대로 가면 세상이 망할 게 눈에 명확히 보이는데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는 ‘녹색평론’이란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두 달에 한 번씩 녹색평론이 오면 반가웠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어 기뻤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글이 있어 고마웠다.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글, 부끄럽게 해주는 글, 희망을 갖게 해주는 글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2 내가 하는 일 가운데는 일본어 번역도 있다. 읽다가 좋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는다. 그동안 그렇게 해서 낸 책이 스무 권에 가깝다. 그 중에 출판사 쪽의 의뢰로 하게 된 책은 단 두 권뿐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김종철과의 공역인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이다.

그 일이 내게 온 것은 충북의 어느 깊은 산에 살 때였다. 외진 곳에 살고 있는 내게, 더구나 그 무렵의 내 살림은 밑바닥을 기고 있었으므로 그 책을 자기와 함께 우리 글로 옮기자는 김종철의 제안은 참으로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다. 신의 자비로운 손길이 멀리 나를 찾아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게 온 그 책은 인류 문명이 꼭 빙산을 향해 달려가는 타이타닉이라는 배와 같다고 했다. 그 배의 승객, 곧 인류는 경제성장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지만 사실은 어떨까?

그 책은 그것이 잘 못 된 가치관이자 꿈인 것을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경제가 발전하면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아니지 않느냐?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시간상으로도 더 여유가 없어지고, 빈곤감 또한 더 커지지 않았느냐?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경제성장이 지닌 한계가 아니냐? 경제성장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인과 같은 삶인데, 지구인 모두가 그들처럼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살려면 지구가 네 개, 혹은 다섯 개가 있어도 부족하지 않겠느냐? 또 그 길을 걸어오며 우리는 각 나라의 귀중한 토착 문화와 지구의 자연환경을 얼마나 망가뜨려 왔느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제성장이 길이 아니라면 무엇이 길인가? 그 책이 하는 말과 김종철의 꿈은 다르지 않았다.

3 그의 마지막 책이 돼버린 녹색평론 173호(2020년 7, 8월호)에 쓴 그의 글에 따르면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이 같은 밥상에서 평등한 관계로 밥을 먹는’ 대동大同의 세상이었다. 자연과 조화로운 생태 문명이었다. 소농에 바탕을 둔 농본사회, 시민의회를 기반으로 한 숙의민주주의, 부국강병이 아니라 생명 평화, 기본 소득…의 세상이었다. 그런 대동의 세상이 그의 꿈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자신과 제 식구의 생일날에는 기꺼이 현관에 국기를 거는 세상이다. 덴마크가 그런다 했다. 왜 그런가? 왜 생일날 국기를 내거나? 바보가 아닌가?

아니다. 나라를 보는 생각이 다를 뿐이다. 덴마크 사람에게 나라란 구성원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큰 집이다. 그게 가능하다. 그러므로 걱정이 없다. 마음 편히 웃으며 살 수 있다. 그런 나라라면 나나 식구의 생일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쁘게 국기를 내어 걸고 싶어질 것이고, 그런 나라가 내가 보는 김종철이라는 큰 별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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