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를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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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를 막아야 합니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08.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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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협동조합형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 대표

첫 번째 단기 위험은 올 하반기에 다가올 것
지자체 특별지원금이나 준공영제 조기실행 등

특단의 조치 없다면 늦가을부터 약 3~4개월간
장기 임금체불 명약관화

두 번째는 준공영제 시행 후 2~3년 후부터
퇴직금 쓰나미가 반복적으로 닥칠 것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 청주시청 4층 대강당. 드디어 청주형 준공영제 시행을 위한 협약식이 개최되었습니다. 2014. 11. 5 준공영제 도입계획이 승인된 이후 약 5년 반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지난하고 힘든 고비를 넘은 자축의 의미와 청주시 대중교통체계의 미래를 향한 환희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시내버스를 형상화한 각종 행사장식들은 살아서 춤추는 듯 축제 분위기는 고조되었습니다.

한범덕 시장님을 비롯한 청주시 집행부와 청주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청주시내버스 6개사 대표자,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그리고 그간 준공영제 논의를 이끌어온 원광희 대중교통활성화 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하셨습니다.

준공영제 시행협약서에 서명날인을 한 후 시장님을 시작으로 참석자 분들이 그간의 감회를 차례로 발표하셨습니다.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고, 준공영제의 의미를 복지차원에서 재확인하고 특히 원광희 위원장께서는 준공영제의 안착과 발전을 위해 공영차고지를 매개로한 노선개편과 인프라구축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지 역설하였습니다.

드디어 우진교통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행사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변하며 차분해집니다. 그 발언을 기억에 되살리며 현재에 맞게 재구성하고 보완하여 소개합니다.

“오늘 준공영제 협약식을 축하합니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많은 분들의 바람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오늘 이 자리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또한 청주형 준공영제를 위해 함께 지혜와 마음을 모았던 분들께도 존경과 경의의 마음을 표합니다.

그러나 협약식을 축하하는 마음도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난 5월 준공영제 잠정합의를 마무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루 하루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고통스러움은 합의의 유불리에 따른 투정이나 불만이 아닙니다. 이 협약이 코로나 국면의 현재와 그 영향권 속의 미래를 반영하지 못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고, 어쩌면 그 한계가 우리 모두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특히 준공영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코로나 국면의 특성과 미래의 재정적 영향력을 논의하고 반영하지 못한 채 합의 시기에만 쫓긴 모습에 자책이 들기도 합니다.

준공영제 표준운송원가의 숫자는 과거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을 전제합니다. 지금 코로나 정국에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경제 개념은 돌아오기 힘든 과거입니다. 코로나 정국은 경제와 재정운용의 철학과 목표 그리고 프로세스를 빠르고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향후 지속적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준공영제 협약은 이러한 현재나 변화하는 미래를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러면 왜 우진이 미래에 대해 유독 실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을 아십니까? 혹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밤비노의 저주’는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베이비 루스 트레이드 실패와 관련한 불운을 일컫는 말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도리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시대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두 단어에는 ‘상호이익의 전제 하에 이루어진 합의 및 거래의 비극적 결말’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진교통은 청주형 준공영제가 ‘승자의 저주’라는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는 상황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습니다. 만약에 함정에 빠진다면 그 피해는 청주시민은 물론이고 청주시와 버스업계 그리고 버스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모두를 승자가 아닌 패자로,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기적 위험은 올 하반기에 다가올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30% 넘는 연 매출 감소가 초래하는 임금체불 상황입니다. 이는 민간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었습니다. 매출감소를 효과적이고 선제적으로 방어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시내버스가 공공재인 대중교통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자체의 ‘특별지원금이나 준공영제 조기실행’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추워지는 늦가을부터 한 겨울까지 약 3~4개월간에 걸친 장기간 임금체불은 명약관화한 상황입니다.

장기간 임금체불이 진행되면 버스업계의 부도사태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임금만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온 청주시내 1000여 명의 버스노동자의 생존권입니다. 가족까지 약 3500여 노동자 가족들의 하늘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준공영제 시행 전에 운수노동의 기초단위인 각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노동자의 밥상이 엎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위험은 임금체불의 시기를 어떻게든 이겨낸다 해도 준공영제 시행 후 2~3년 후부터 준공영제를 덮칠 거대한 퇴직금 파도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반복적으로 다가올 쓰나미 입니다.

민영제 대중교통체계의 운영주체인 버스업계는 2016년 이후 계속된 매출하락으로 이미 자생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래서 준공영제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가려 합니다. 자생력을 잃었다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퇴직금을 중심으로 한 부채 규모가 크다는 뜻입니다. 그동안은 버스업계의 특성인 높은 현금회전율과 계정과목 전용으로 유동성을 확보하여 자기자본잠식에도 불구하고 근근이 버티었습니다.

그러나 준공영제가 되면 이 장점이 사라집니다. 물론 준공영제 하에서 노동자들의 월 임금은 안정적으로 보장됩니다. 문제는 준공영제 이전의 퇴직금이 거의 적립되지 못한 현실입니다. 특히 그동안 퇴직충당금의 절대적 부족을 해결했던 계정과목별 전용이 완전히 금지되고 심지어 확보된 퇴직충당금조차 준공영제 전후로 과목 내 전용까지 금지되어 기업의 유동성은 탄력성을 완전히 잃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반복되는 퇴직금 미지급 사태입니다. 분할상환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위험인 하반기 임금체불까지 겹치기 때문입니다. 준공영제 하에서도 지차체의 협력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 제로입니다. 결국 퇴직금과 체불임금 보장을 위한 노동자들의 대응은 당연하게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고, 종국은 고용주체인 기업과 운영주체인 청주시 준공영제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장기방안은 공영차고지 매입과 기존 민영차고지 매각의 통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으로서 유력합니다. 또한 단기적으로 재정운용의 유연성을 일시적으로 부여하여 신속하고 책임 있는 자구방안의 물꼬를 터주는 것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승자의 저주’에서 얻어야할 교훈은 ‘상호이익을 전제로 한 공생’입니다. 청주형 준공영제가 이러한 관점에서 공생의 철학이 일관되게 관철되었는지 성찰이 필요한 때 입니다. 청주시, 버스업체, 버스노동자 세 주체는 준공영제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대중교통 공동구성체입니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함께 주저앉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미래지향적인 준공영제를 설계하면서 합리적인 경영적 판단 대신 혹시 과거의 도덕적 선입견, 일부 버스업계의 몰염치에 대한 편견과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버스업계의 과거 경영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은 이 모든 이야기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다양한 시민집단이 조화를 이루고 공생하는 대중교통 체계가 ‘승자의 저주’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획일적인 시민전체주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닙니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것만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입니다. 이제는 과거 상황을 계량화한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급변하는 현재에 기초하여 미래를 지향하는 치밀한 보완을 준비해야 합니다.

청주형 준공영제는 시대정신이 담긴 청주시민의 소중한 자부심 입니다. 이러한 자부심이 손상되지 않고 더욱 발전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청주형 준공영제가 청주시 구성원 모두의 축하와 행복이 되기 위하여 우진교통도 청주시와 함께, 시민단체와 함께, 그리고 버스노동자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주형 준공영제의 도입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

이상의 발언이 끝나고 한범덕 시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결합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물질의 운동법칙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총체적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내일 비가 얼마나 내릴지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거시적 안목과 지식에 미시적 분석의 세밀함을 결합하여 준공영제의 어려움을 예측하고 극복하도록 다함께 노력합시다.

/ 2020년 8월 5일 장맛비 세찬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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