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방’ 김상윤 명탐정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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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방’ 김상윤 명탐정 꿈꾼다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0.08.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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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생 99%가 전직 경찰‧군인인 탐정시험… 직업으로 인정
김 씨 “사회활동 경험살려 약자 위한 탐정 되겠다”포부
김상윤 씨 /육성준 기자
김상윤 씨 /육성준 기자

 

청주 수암골의 하늘다방주인이자 지역 SNS스타인 김상윤 씨가 최근 탐정시험에 합격했다. 탐정은 소설 셜록홈즈’, 만화 명탐정 코난처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주로 반려동물 찾기, 절도품 찾기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탐정활동이 불법이었다. 대신 떼인 돈 받아 드립니다등과 같은 광고 문구를 앞세운 흥신소들이 활개를 쳤다. 하지만 흥신소의 영업활동 역시 불법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회는 올 2<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을 개정하면서 85일부터 탐정이라는 명칭을 상호나 직함에 사용해 영리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간 흥신소 등이 음지에서 해오던 일을 제도권으로 끌고 오겠다는 취지다.

부수적으로 자격증 제도도 도입했다. 정부는 경찰청을 주무부서로 탐정업을 민간자격증으로 등록해 관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향후 자격증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인자격증으로 전환하는 공인탐정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김 씨는 우연치 않게 탐정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형부가 직업군인이다. 3년전 쯤 함께 차 타고 놀러 가는 길이었는데, 형부가 탐정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미 군인들 사이에서는 법안이 준비됐으니 곧 시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다.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김 씨가 운영하는 하늘다방의 수익이 크게 줄고 기타 부수입들도 감소하자 문득 형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85일부터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됐고 서울, 광주 등에서 5월부터 매월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곧장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탐정시험은 탐정학 개론, 탐정관계법 개론, 증거조사론, 정보분석론 등 4개 과목을 과락 없이 평균 60점 이상 받아야 한다. 시험은 4과목에 25문항 씩 총 100문제를 100분 안에 풀어야 한다.

시험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경력직인 매니저급과 신입인 탐색사 1(탐정사)’이다. 탐정사는 만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반면 매니저급은 만 35세 이상으로 관련 저술 경력이나 석박사 논문이 있거나 경찰검찰국정원경비업체 등 정보수사생활 안전 분야 실무 10년 이상의 경력자만 응시 가능하다.

김상윤 씨(가운데)는 합격 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대한탐정협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김상윤 씨(가운데)는 합격 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대한탐정협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여성활동 경험 살려 합격

 

법학 과목은 대개 법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공부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통과하기도 어렵다. 이를 노려 서울의 몇몇 학원에서는 수강료 약 100만원에 탐정시험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학원 다니자니 그 돈 내서 합격하면 뭐하나 싶어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널널한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2만 원 정도 되는 예상 문제집을 하나 사서 모르는 건 법조문을 찾고 단어 하나하나 외워가며 공부했다고 비결을 귀띔했다.

또한 그가 쌓아온 배경 덕에 진도도 비교적 빠르게 나갔다. 그는 충북여성장애인연대, 한국여성의전화 등에서 일하며 약 13년 동안 여성 장애인과 관련된 업무를 맡아왔다. 그는 단체들에서 일할 때 여성 장애인 성폭력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들과 협조해서 관련법을 찾고 정보도 얻으면서 그 과정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다 들춰내야 했다그때 해결하지 못해 울분을 토하며 모르는 것을 배워갔던 경험들이 시험볼 때 요긴하게 쓰일 줄 몰랐다고 멋쩍어했다.

이어 여성이고 장애인인 제가 합격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면서도 반기는 것 같다. 덕분에 합격 이후 탐정협회 사람들과 인증샷도 찍고 누군가로부터는 흥미로운 제안도 받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자격시험은 퇴직경찰, 퇴직군인들의 전유물이다. 지난 5월 치러진 첫 탐정시험에서는 응시자 120명 중 100명이 전직 경찰, 20명이 전직 군인이었다. 탐정이라는 직무 특성상 관련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정보를 얻고 영리활동을 펴기에도 쉽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김상윤 씨가 공부한 기출문제집
김상윤 씨가 공부한 기출문제집

 

 

청주에 탐정 많아졌으면

 

김 씨는 갑작스레 생긴 탐정이란 직함 때문에 얼떨떨하다. 그가 SNS에 탐정이 된 소식을 알리자 사람들은 그의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어떻게 탐정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문의도 쇄도했다.

그는 며칠 사이 저에게 문의한 사람 모두 탐정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에서 탐정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함께 고민하고 싶다저는 우선 정보에 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사를 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는 여성 단체 등에서 일하며 장애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조차 접하지 못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또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건, 변호인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돈이 안 돼 기피하는 사건 등을 접했다.

김 씨는 아직 탐정은 흥신소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탐정과 경찰이 수사 사각지대에 놓인 일에 대한 분담도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에서 법으로 추진하겠지만 이에 앞서 우리 사회가 탐정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모두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탐정들은 이제 막 일을 시작했다. 물론 탐정이 잘 될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김 씨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에는 공권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탐정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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