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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든 멸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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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든 멸망할 수 있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09.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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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창간 27주년에 전하는 말
혁신하고 포용하고 의롭고 철학 있는 언론이 되기를…

 

“우리는 언제든 멸망할 수 있다”

도 종 환 본지 초대 발행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도종환 본지 초대 발행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닉 보스트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문명이 대규모로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는 기후 위기로부터 오고 있다. 올해 여름은 가혹한 여름이었다. 두 달 동안 이어진 장마는 우리나라가 아열대에 진입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현실로 경험하는 듯한 불안을 불러왔다. 우기라고 불러도 좋을 기간이었다. 연이어 매주 태풍이 몰아쳤다. 많은 농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흉작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19 위기의 주요 원인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로 생긴 결과가 팬데믹을 만든 거라고 하면서 원인을 세 가지로 거론한다.

“첫째는 물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이다. 지구가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인다. 열은 구름이 지표에서 강수를 더 빨리 취하도록 몰아친다. 그래서 통제가 어려운 물난리를 겪는 것이다. 그 거칠고 극단적인 현상 속에서 가뭄과 산불이 일어난다. 둘 째는 인간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어서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전체의 14% 정도였다. 지금은 77%에 육박한다. 이것도 기후변화를 유발한다. 셋 째,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동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재난을 피해 탈출하고 있다.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인간 곁으로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와 같은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킨 이유다.”

새로운 담론과 운동 일으켜야 할 때
앞으로 더 많은 감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항체치료제, 혈장치료제를 만들어 내서 내년 초에 코로나 19를 잡는다 해도 새로운 변종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도 올해 초 신천지교회 신자들이 감염되었던 바이러스보다 열 배 정도 전염력이 센 바이러스로 변화해 있다고 한다. 다음에 찾아올 바이러스의 공격 때도 치료제나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 1년에서 1년 반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사회생활 방식, 국가 운영시스템, 경제 운영방식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 불황은 오일쇼크라든가 금융시장 버블이라든가 어느 한 부문이 잘못되어서 터진 것인데 이번 사태처럼 수요, 공급, 소비가 한꺼번에 붕괴되는 상황은 이제까지 없었다. 당장 올해부터 시작된 마이너스 성장은 나라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의 길을 모색하면서 충격 완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칼폴라니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 등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이 4개의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면 새로운 담론과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 무한한 욕망을 부추기면서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해온 경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실업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취약하고,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질병의 위험도 그들에게 먼저 찾아오고 경제적 어려움도 그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질병 방역시스템만이 아니라 사회적 방역시스템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보다는 공동체, 효율보다는 연대, 경쟁보다는 상생의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는 방식에서 국가가 조금 더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실업의 문제, 고용의 문제, 지원의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인 대책을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으면 기본소득 문제가 이렇게 순식간에 사회적 과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옆에 국가가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국가 운영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홍기빈 소장은 “우리의 욕망에 우리 스스로 질서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인가. 무한한 욕망을 계속 무한하게 긍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욕망의 거리두기’, 쉽지 않은 이 문제에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상03황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충청리뷰 창간 27주년에 즈음해
충청리뷰가 창간된 지 27년이 되었다. 속리산 정이품송 소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으며 새로운 소나무 씨앗이 되고자 하는 푸른 열망을 품고 일을 시작했다. 물론 그때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웠다. 개인도 어려웠고 회사도 어려웠다. 현재는 불안했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그러나 불확실성 속에서도 저마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의롭게 살고자 하면 길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지역사회를 바르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며 살 것이라고 자부했다. 세월이 흘렀다. 다들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나이도 들었다. 그 사이 고된 날들이 많았다. 세상은 우리가 소망했던 대로 변화해 왔을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진보하고 투명해졌으며 시민의식은 높아졌을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수치로 계량화해서 말할 수 없지만 전보다 나아졌으며 통계로 내놓을 수는 없지만 지역사회가 한 단계 진전하는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많은 노력들이 세상을 이만큼 나아지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하려다가도 지금의 위기를 생각하면 생각을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혁신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이미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진입했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진입했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의 변화가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ICT에 기반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현금 보유액이 제조업을 능가하고 있다.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세계 10대 기업의 상위를 점유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는 서점을 6000 개에서 1800 개로 줄어들게 했고, 10년 사이에 종이신문의 영향력을 70%에서 25%로 낮추어 버렸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포용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거대한 변화의 와중에 가장 많이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감염병 위기 속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는지 찾아보고 그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을 촉구해야 한다. 연민의 눈을 지녀야 한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언론이어야 한다.

의로운 언론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개혁과제 중의 하나가 검찰개혁이다. 충청리뷰는 이미 오래전 검찰과 맞서 싸웠다. 진검승부를 하느라 피 흘렸다. 개인적으로도 고초를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의로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쓰러질 때까지 그 길을 가야 한다. 그게 충청리뷰의 운명이다.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언론과 행정권력, 사법권력, 의회권력이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민주주의가 유지된다. 민주주의는 긴장 관계 위에 세워진 제도다. 민주주의는 긴장에서 유발되는 에너지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불러 일으키도록 의도 되었다. 댐에 가득 출렁이는 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수력발전처럼 긴장과 갈등을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 그게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철학 있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요즘 중앙의 대표적인 언론들이 ‘사실을 기사로 쓰지 않고 생각을 기사로 쓴다’ ‘옳은지 그른지, 맞는지 안 맞는지를 따지기 전에 좋은지 싫은지를 기준으로 기사를 쓴다.’ 비판은 언론의 주된 역할이다. 그런데 비판하는 게 아니라 비난하고 혐오하고 저주하는 글을 사설이나 칼럼이라고 게재한다. 그러면 안 된다. 그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앞장서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뇌하는 언론, 사유하는 언론이어야 한다. 열정에 대해, 확신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올곧은 말을 하되 결 고운 글로 쓰는 일. 그게 기자가 갖춰야 할 자세다. 그게 균형감각이다.

/도종환 본지 초대 발행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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