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골프] 골프가 문제가 아니라 미치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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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골프] 골프가 문제가 아니라 미치는 게 문제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6.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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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인들은 죽어라 골프장으로 달려갈까?”
   
최근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면 정치인들은 마치 죽을 각오로 골프를 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죽을 줄 모르고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을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동안 걸어 온 길에서 하루 아침에 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제 2인자이던 이해찬씨도 지난 3·1절에 골프 한번 잘못 쳤다가 옷을 벗었다.

이해찬씨는 그 전에도 2004년 6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 조문전 골프와 2005년 식목일 강원 대형산불시 골프, 2005년 7월 전국 집중호우시 제주 골프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물(水) 불(火)을 가리지 않고 골프를 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재야운동권 출신의 소신파라는 이미지가 골프 한방에 모두 날아 갔다.

지난 집중호우 때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들도 불명예 퇴진이나 경고 등을 당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역정에 치명타를 입혔다.하지만 “정치인들은 왜 골프에 미쳐 버리는 것일까”를 궁금해 한다면 이 역시 정상이 아니다. 정치인들만 미치는 게 아니라 한번 골프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미쳐 버리기 때문이다. 30도를 웃도는 3복의 염천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도 전국의 골프장들은 휴일은 물론 평일 마저 내장객들로 넘쳐난다. 말 그대로 골프에 미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골프 속설에 이런 말이 있다. 골프에 딱 한가지 약점이 있는데 ‘너무 재미난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사회적 물의를 빚은 모든 골프 문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너무 재미나기 때문에 간혹 ‘오버’를 하면서까지 즐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골프가 재미없는 운동이라면 지금처럼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골프가 너무 재미 나기 때문에 골프로 정권을 잡은 YS는 오히려 임기 내내 정치인과 공직자 골프에 대해 가장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1990년 1월 6일, 당시 민주 공화 양당의 통합선언은 YS와 JP의 연이은 4번째 골프회동에서 결론이 났다. 골프가 끝난 후 전격 대외적으로 발표됐고, 1주일이 지난 22일 여당인 민자당까지 합세하는 3당 대통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써 YS는 골프를 배경으로 평생의 소원인,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집권 후엔 되레 골프에 철퇴를 내렸다. 공직자 골프 금지령과 이로 인한 각종 사정이 가장 많았던 때가 바로 YS 집권 시기다. YS가 이렇게 표변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그는 왜 골프를 치지 않느냐고 묻는 측근들에게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걸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것. 이런 YS가 대안으로 구상해 낸 것이 툭하면 북한산에 오르는 이른바 등산정치다. 이처럼 노태우 정부의 3당 합당은 물론 97년 대선을 앞두고 전격 이루어진 DJP 연대 역시 골프장에서 물꼬가 트였다. 각각의 밀사들이 골프장을 들락날락하면서 작품구상에 합의한 것이다.

DJ가 JP를 유혹하는데 있어 골프 그 이상의 호재가 없었다.당시 JP는 그야말로 국가가 공인하는 골프매니아였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보통이고 언론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 자신의 골프에 대해 비난이라도 일게 되면 JP는 “내가 건강을 잃으면 그 사람들이 책임진다냐”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 때 쌓은 내공은 그가 곧잘 구사하던 몽니와 어울려 5·16 쿠데타 이후부터 은퇴한 지금까지 무려 40여년이라는 최장 라운딩으로 계속되고 있다. “JP가 3김중에서 가장 잘하는 것은 골프다”라는 비난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골프에 연연하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이처럼 ‘재미난다’는 골프의 원초적 본능 못지 않게 그 효율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정치인들이 한번 라운딩에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골프를 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때문에 일단 기회가 생기면 시간을 최대한 쪼개서 운동을 즐기려 한다. 예를 들어 지방출장이라도 있게 되면 전날 미리 내려 간다든가, 혹은 당일 시간을 악착같이 할애해 골프채를 잡으려 한다. 이 때 의욕이 너무 앞서다 보면 이번 수해골프처럼 앞뒤 안가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주변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대자연을 벗삼아, 그것도 무려 5시간 이상 상대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사실 골프 그 이상의 계기가 없다. 게다가 운동이 끝나면 필히 같이 옷벗고 샤워를 할 수 밖에 없어 복잡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정치판에서 이만한 1차적 인간관계를 단숨에 틀 수 있는 호기도 없는 것이다.

과거 삼청각 대원각으로 대변되던 요정정치가 룸살롱정치를 거쳐 지금의 골프정치로 옮겨진 것은 사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비용이 훨씬 덜한데다 탁트인 자연에서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합리적인 ‘작품’이 나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결론은 골프에 미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자기절제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정치와 골프] 도내 국회의원들의 골프수준은?

홍재형의원 등 공직자 출신이 수준급

충북이 지역구인 국회의원 가운데 단연 실력이 돋보이는 골퍼는 김종률(증평·진천·괴산·음성)의원이다. 변호사 출신의 김종률의원은 로펌 ‘춘추’를 운영하면서 기업, 금융관련 소송을 전담했던 경제통, CEO형 변호사. 그래서인지 골프실력도 72타 이하 이븐파 수준으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골프 지존’으로 통한다. 골프로 자주 구설수에 오른 바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 정작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 실력은 80타 중반이다.

69세의 고령(?)이지만 홍재형(청주 상당)의원의 골프 실력도 만만치 않다. 홍재형의원은 태권도 공인 2단(명예 9단)을 땄을 정도로 자타가 인정하는 운동신경을 자랑한다. 서울대 상대 재학시절에 ‘상송회’라는 상대 태권도 모임에서 활동했는데, 강봉균, 사공일, 임창열, 진념 등 전직 경제 관료들이 모두 상송회 멤버다. 오제세(청주 흥덕갑), 변재일(청원), 이시종(충주)의원 등 관료 출신의 의원들도 80~100타 수준. 관료 출신 의원들은 자리에 따라 골프삼매에 빠지거나 아예 손을 놓는 경우도 있다.

이시종의원실 관계자는 “재경부 시절 골프를 배웠지만 충주시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거의 골프를 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수준급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다 국회에 입성한 노영민(청주 흥덕을)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후에 골프채를 잡은 왕초보 골퍼다. 상임위 활동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골프모임이 많아 측근들의 권유에 떠밀려 골프연습장을 찾게 된 것.

노영민의원실 관계자는 “골프연습장에 3번 나간 뒤 바로 필드에 올라간 초보 수준이다 보니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곤혹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노 의원의 골프실력을 평가했다.
/ 이재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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