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 갈채받은 '국악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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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서 갈채받은 '국악 향연'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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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 100명 관객위한 이색공연

<경향신문>한 자락 대금 소리가 풀벌레 합창 사이를 지나간다. 한여름 저녁 서늘한 바람에 눈이 절로 감긴다. 지난 10일 오후 충북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내 한벽루(寒碧樓)에선 딱 100명의 관객을 위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마련한 ‘플레이스 초이스’ 라이브 무대였다. 비교적 한적했던 영화제의 금요일 프로그램 중에서도 이 공연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충주댐 공사에 의해 수몰될 뻔한 남한강 지역 문화유산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는 이곳. 고려 충숙왕 4년(1317) 관아의 부속 건물로 건립됐다는 보물 528호 한벽루는 옥구슬같이 시퍼런 호반을 뒤로 한 채 서 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본 검붉은 마루는 세월의 손때가 배어들어 기름을 바른 듯 매끈했다. 수백년 전 충청도에 부임한 어느 관리도 이 누각에 올라 나라님의 안위와 백성의 평안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날 공연은 ‘국악 장르별 하이라이트’였다. 가야금, 대금, 해금 명인과 젊은 명창이 힙합과 록, 재즈에 익숙했던 젊은 영화팬들에게 우리 소리의 본때를 보여줬다.

첫 주자는 KBS 국악관현악 단장을 역임한 박용호 선생. 홀로 자리를 잡은 채 거두절미하고 ‘청송곡’을 뽑아낸다. 연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던 여름 무더위는 몰려든 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숙였다. 관객은 숨을 멈추고, 이름 모를 풀벌레와 매미만이 철없이 소리를 높인다.

   
강은일과 해금플러스는 젊은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이들은 우리 전통악기 중 월드뮤직에 가장 사용하기 좋다는 해금을 이용해 동서양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연주된 곡은 ‘다랑쉬’(김대성 곡)와 ‘서커스’(신현정 곡). 활대를 한번만 움직여도 절로 구슬퍼지는 해금 소리는 제주 4·3 항쟁의 한을 담았다는 ‘다랑쉬’에서 더욱 애잔했다. ‘서커스’가 연주될 때는 베이스 기타, 아프리카 타악기가 해금과 어울려 어딘지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옛날 유랑극단이 한벽루에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산조 예능보유자였던 성금연 명인의 외손녀 김귀자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들려줬다. 젊은 소리꾼 서정민은 가장 익숙한 판소리 중 하나인 춘향가 중 사랑가를 뽑아냈다. 가사를 잘 생각한다면 ‘미성년자 청취불갗에 가깝지만, 조상들의 해학 덕분에 낯을 붉히지 않을 수 있었다.

때론 애처롭고 때론 유쾌한 소리가 청풍 호반 반대편까지 뻗어나가는 사이 날은 조금씩 저물었다. 연주자들의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그림자는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냈다. 관객들은 아쉬움을 남겨둔 채, 대금 소리가 닿았던 호반 반대편 무대로 서둘렀다. 야외에서의 영화 관람과 콘서트로 이어지는 ‘원 썸머 나잇’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독일 출신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무성영화 ‘들고양이’(1921).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 달파네 그룹이 이 익살스러운 무성영화를 위해 80여분간 음악을 연주했다. 천하의 바람둥이 군인과 산적 두목 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는 80여년의 시간과 지리적 간극을 넘어 폭소를 유발했다.

상영후에는 재능있는 모던록 뮤지션 이지형이 여름밤을 달궈놓았고, 네덜란드에서 온 재즈 싱어 로라 피지는 대중적인 레퍼토리와 여유 있는 매너로 ‘팝스타’ 같은 무대를 만들어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에서 도망갔던 별은 호숫가 하늘에 모여들어 있었고, 시침은 자정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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