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대안이 노무현 이었다’ 충북 노사모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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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대안이 노무현 이었다’ 충북 노사모 5인방
  • 충청리뷰
  • 승인 2002.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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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선거는 한국의 선거 사상 가장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했다. 선거 당일에도 오전, 오후 출구조사 결과가 뒤집힐만큼 간발의 승부였다. 낮은 투표율에 자극받은 20·30대가 오후부터 투표장으로 몰려나와 노무현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번 선거의 승부를 이들 20·30대를 움직인 힘, 그 힘은 바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였다. 전국에서 10만 회원이 참여했고 충북노사모도 1216명에 달한다. 노사모는 이번 선거를 ‘개미들의 유쾌한 반란’으로 규정했다. 10만 개미군단이 거대한 보수·우익 골리앗을 무릎꿇린 것이다.
‘유쾌한 반란’에 앞장섰던 충북노사모 핵심회원 5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당초 충북노사모 이용규회장(42)과 직격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나보다 열심히 뛰었던 회원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고사했다. 가까스로 시간이 맞는 핵심회원들과 함께 합동(?) 인터뷰를 갖기로 했다. 24일 늦은 오후 청주시 복대동 명성한의원 대기실에서 ‘번개’ 인터뷰가 진행됐다.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네자 며칠간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서로 말문을 열었다.

철당간서 당선축하 모임가져
“내가 당선자 같았다. 주변 친구들이 모여서 행가레도 쳐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인사받느라구…”(허) “당선 확정후 연일 노후보가 방송에 나오니까,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TV뉴스가 궁금하구 기다려진다”(임) “근데 경호원들이 밀착경호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까, 이젠 정말 노짱을 떠나보내는구나 싶은게 아쉬운 생각도 든다”(정)
이들이 말하는 ‘노짱’은 당연히 노무현 당선자고 노사모의 얼굴인 명계남은 ‘명짱’, 문성근은 ‘문짱’으로 불린다. 우선 ‘왜, 노무현 인가’ 노무현에 미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와 가장 닮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말투나 행동이 소탈하고 ‘이대로 가선 안되겠다’는 개혁에 대한 신념에 신뢰가 갔다”(이) “지난 여름 지방선거때 노후보가 상당공원에서 민주당 지지연설을 끝내고 줄지어 환호하는 우리들 곁을 지나며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로 ‘덮다, 고마해라’는 한마디였는데,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인가? 과연 이런 모습을 가진 정치인이 있겠는가”(선) “기회주의적인 한국 정치판에서 스스로 부산으로 내려가 총선에서 낙선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역투표 성향도 충격이고, 노무현의 소신과 의지도 충격이었다. 이런 사람을 우리 힘으로 지켜내자고 모인 것이 노사모다”(허)

당이 버린 ‘노짱’ 또다시 살려내
노사모는 혼신의 노력으로 ‘노짱’을 지켰고 마침내 대통령 당선자로 만들었다. 지난 4월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정점으로 노후보의 지지도는 60%대에서 급락을 거듭, 20%까지 가라앉았다. 노사모의 힘은 민주당 경선에서 위력을 발휘해 ‘노풍’의 진원지가 됐다. 하지만 노무현의 지지가 바닥을 칠때도 그들의 전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60% 지지율의 대선 후보로 만들어 보냈는데, 결국 당 내부의 흔들기로 노무현 상품을 망친 것이다. 하지만 노짱이 위기에 처할수록 노사모의 결속력은 강해졌다. 일례로 김민석의원이 탈당해 정몽준에게 갔을 때 가입회원이 가장 많이 늘었다”(허)
충북노사모 1200여 회원 가운데 타 지역 원정응원까지 나설 정도로 열성인 회원은 20∼30명 선이다. 자영업으로 시간을 쪼개쓰는 경우, 아예 직장 휴가를 내고 활동한 경우, 퇴근후 저녁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경우 등등 순수 자원봉사로 노무현을 도왔다. 취재기자는 대선기간 중 노사모 활동비가 정말 회비로만 충당됐는지 궁금했다. “당이나 후보자 캠프의 도움은 전혀없었다. 노사모 활동도 사실상 지역조직별로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모임할때 밥값 1만원씩 걷고 남은 돈 적립했다가 원정응원때 차비로 쓰고, 다소 여유있는 몇몇 회원들이 후원금을 내주는 정도였다”(이)
오히려 이들은 민주당 공조직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충북은 홍재형의원이 선대위원장을 고사해 선대본부 출범이 늦어졌고 일부 지구당위원장은 아예 국민통합21로 말을 바꿔탔다며 아쉬워했다. “노후보가 선거운동 개시후 충북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는데 행사장 입구에 당원들은 한명도 없고 몇시간전에 인터넷·휴대폰으로 연락받은 노사모 회원들이 그를 맞았다. 선거때도 유세차량을 함께 쓰려고 도지부 사무실에 갔더니 차는 고장난 채로 세워두고 퇴근한 상태였다. 과거와 같은 금품선거가 아니다보니 역시 공조직은 자발성이 떨어졌다”(허)

해체여부 1월 인터넷투표로 결정
노사모는 조선일보 구독중단을 위한 앤티조선 운동과 유시민씨가 주도한 개혁정당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노무현이 보수언론과 대립각을 세운 상태에서 언론개혁의 기치를 내건 것이다. 또한 개혁정당 활동을 통해 대선기간 동안 노후보에 대한 선거지원을 계속할 수 있었다. 노사모는 1인 3역을 맡아 위기때마다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했고 마침내 국민경선 후보를 당선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노후보 당선이후 노사모 내부에서는 해체론과 유지론의 논의가 분분한 상태다.
“노당선자는 정치권내 자기 기반이 취약하다. 수구보수 세력들의 집단반발에 부딪칠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우리가 계속 힘이 되야 한다. 당선자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개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임) “이제 노당선자는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치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을 해야하고 원칙적인 개혁속에 또다른 지지층을 끌여들여야 한다. 우리의 후진적 정치구조 속에서 노사모가 자칫 차기 대통령이 공격당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허)
조직 해체여부에 대한 논의는 열기를 더 했다. 최근 추미애의원의 말을 인용해 ‘찍으라고 한 당신(노사모), 이젠 책임져라’는 책임론까지 제기됐다. 그 책임은 노무현 개인이 아닌 한국정치의 개혁과 비전에 대한 몫일 것이다. 최종 결론은 내년 1월 전 회원이 참가하는 인터넷 투표방식을 통해 내려질 것이다. 노사모다운 참여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이다. “노사모의 결집력은 내 가까이에 비슷한 생각과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확인하는 즐거움에서 비롯됐다. 구태한 정치 틀을 벗어나 희망의 대안으로 노짱을 지지했다. 결코 개인적 숭배가 아니다” 과연, 2003년 노사모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까. 분명한 것은 그들의 희망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이제 한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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