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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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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대한 기억
  • 충청리뷰
  • 승인 2020.10.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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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부활 문화의 퇴보 아냐, 갈등사회에 여유 주는 역할

 

몇 달 전 고향에 계신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인사말도 생략한 채 어머니는 ‘씽씽밴드’를 아는지 물어오셨다. 처음 듣는 그룹이었다. 찾아보니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활동하던 씽씽밴드는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었다. 어머니는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씽씽밴드의 음악을 접했는데, 그들의 노래가 정말 좋아서 나도 꼭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민요를 듣게 되니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즉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르신다는 것이었다. 말씀에 따르면, 어머니는 원래 민요를 싫어하셨다. 1926년생인 외할머니는 괴산의 시골 마을에서 남의 집 밭일을 하면서도 막걸리를 걸치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구성진 민요를 부르셨는데, 어머니는 남들 다 보는 데서 그렇게 흥을 자랑하는 외할머니를 어린 마음에 창피하게 여기셨다. 어머니께 민요는 빈궁함의 상징이었다.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이렇게 중년이 되어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흥은 외할머니께서 슬픔을 잊고자 했던 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한다는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첫째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을 했는데, 나의 외할아버지신 둘째 남편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외할머니는 단칸방에서 반신불수인 외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어린 삼 남매를 먹여 살리고자 새벽같이 일을 나가셔야 했다. 한 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던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가운데 잠시나마 그 무게를 잊는 얼마 안 되는 순간이 참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민요를 부르는 때였던 것 같다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나서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터트롯' 콘서트./ 뉴시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터트롯' 콘서트./ 뉴시스

 

트로트 덕택에 지루함 잊어
이 얘기가 끝나고서야 우리는 안부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문득 3년 전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근무할 때가 떠올랐다. 시설 이용인들은 모두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시설에 맡겨지신 분부터 부모도 기억 못 할 때부터 시설에서 생활해오신 분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시설에 가면 항상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용인들이 하루종일 mp3 기기 같은 것으로 트로트를 트는 것이었다. 나는 내 세대라면 으레 그렇듯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80년대 팝이나 헤비메탈 같이 내가 즐겨 듣는 음악 취향도 확실해서 더욱 그랬다. 내 생각에 트로트는 과거 한국이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하던 시절에나 만들어진 ‘촌스러운’ 음악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가 그 시설만 가면 예전 명곡부터 요즘 신곡까지 온갖 트로트를 들어야 했으니 지겨울 만도 했다.

그렇게 일할 때나 쉴 때나 트로트를 계속해서 듣게 되니 문득 생각이 바뀌는 때가 있었다. 먼저 익숙해진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인간은 자극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그것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그것을 좋아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나 또한 트로트에 대해서 그랬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시설에서 이용인들을 위한 부업 활동을 돕는 일을 했는데, 그분들과 함께 하루에 수많은 손톱깎이를 계속해서 조립하고 납품하는 식이었다. 이런 단순작업의 장점이자 단점은 생각을 완전히 비우게 한다는 것인데, 이용인들이 틀어놓는 트로트 덕택에 나는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트로트에 대해 가졌던 모종의 폄하하는 감정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대신 수많은 사연을 지닌 다양한 연령대의 시설 이용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들을 흥겹게 만들어준 음악의 힘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 어떤 음악이 이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강하게 묶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주겠는가?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면
트로트에 대해 내가 한 경험과 외할머니가 부르는 민요에 대해 어머니가 한 경험이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경험한 것은 아직도 너무나 짧다. 그래도 나는 내 경험과 어머니의 이야기 덕택에 무언가 어렴풋이 들었던 생각을 마침내 정리할 수 있었다. 삶의 고난을 덜어주고, 듣는 이를 울고 웃게 만들며, 집단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음악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본질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는 그 점에서 부차적인 일일 수도 있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풍적 인기와 최근 추석의 나훈아 열풍까지, 트로트는 갑자기 대중문화의 주류로 재등장했다. 이에 대해서 세상이 다시 수준 낮은, 소위 ‘구린’ 취향 일색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종종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트로트는 갑자기 재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어렵고 고생스러웠던 한국 현대사를 겪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흐르고 있던 것에 가까웠다.

그 음악이 물론 나의 선호에 안 맞을 수는 있다. 공익 근무를 마친 뒤에 나는 트로트를 한 번도 찾아 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트로트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기억을 떠올리면 트로트의 ‘부활’을 감히 문화의 퇴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대 사람들의 몫이다. 옛 사람들이 새 사람들을 탄압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그들의 삶이 담겼을 수도 있는 문화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를 즐길 필요는 없지만 과거를 이해라도 할 수 있다면 갈등에 피로해하는 한국 사회에 조금의 여유나마 생기지 않을까.

/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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