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여행가의 지리산 실상사(實相寺) 탐방기 1-
지리산으로 들어온 지 사흘째다. 오늘 저녁은 실상사에서 바랑을 풀어 놓는다. 지난 사흘간은 경상도 쪽 지리산에서 지냈다. 청학동 옆 골짝 작은 암자에서 말 그대로 공양주 보살 노릇을 톡톡히 했다. 비구 스님만 있는 절을, 그것도 하필이면 공양주 보살의 휴가에 때를 맞췄으니, 들어서는 길로 공양간은 내 차지가 되어버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 된 셈인가. 홀아비 삼 년이면 뭐가 서 말이라더니 노스님 공양간 냉장고엔 시어 꼬부라진 김치 몇 조각뿐이다.
▲ 지리산 실상사 전경. | ||
▲ 지리산 실상사 종. | ||
상실감을 치유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그저 쉬려고 찾았던 암자에서 어줍은 공양주 노릇을 하느라 부처님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들려오는 독경 소리에 맞춰 도마질을 하고 부지깽이를 곰곰이 짚어보았다.
바랑을 다시 꾸렸다. 일정대로라면 지금은 귀가 길로 들어서야 맞다. 그러나 암자를 나서자마자 이웃 골짜기 청학동으로 향했다. 근본을 찾고 싶어서였다. 전통을 고수하는 생활 방식으로, 아이들 방학 캠프로, 유명한 그 곳을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리산은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높기도 했다. 청학동 입구에서 나는 발길을 멈추고야 말았다. 가파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갯길을 도저히 다리가 덜덜 떨려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하기는 청주 상당산성 고갯길도 넘지 못해 늘 목련공원 쪽으로 에둘러 가던 나로서는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 실상사 석등 (實相寺 石燈) 보물 35호 1963. 1. 21 이 석등은 규모가 커서 석등 앞에 불을 밝힐 때 쓰도록 돌사다리와 함께 보존된다는 점에서 특이하며, 지붕돌의 귀퉁이마다 새긴 꽃모양이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 ||
평지에 있다는 실상사로 가기로 한다.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리라고 벼르고 별렀던 곳이다. 사실 별 일(?)이 없었다면 실상사는 이번 여름 휴가지로 내심 작정해 놓았던 곳이었다. 비단 혼란스럽던 신라 말,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이자, 천년사찰로서 역사 문화적 볼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천 년 전의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사부대중 공동체로서 생명 평화 살림의 이념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에 더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청학동에서 실상사로 가장 빠른 길은 노고단을 넘어서 지리산을 관통해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또 굽이굽이 높은 산을 넘는 길이다. 아예 대진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거쳐 가는 평지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찾기도 쉬웠다.
▲ 실상사 약사전 철조여래좌상 실상사 창건당시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 ||
잔잔히 종소리가 들려온다. 저녁 공양시간인 모양이다. 실상사 공양간은 절의 규모에 비해 큰 편이다. 그만큼 밥 인심이 후해 보인다. 하기는 함께 밥 먹는 공동체 식구들도 꽤 많다고 했던가. 말 그대로 출재가의 사부대중이 함께 공양을 하고 있다. 사부대중이라는 그 어려운 말이 공양간 풍경 하나로 단박에 이해된다.
▲ 재출가 사부대중이 함께 어울려 사는 지리산 실상사. | ||
어쨌거나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소명감이 우선한다. 지금 나는 하늘이 다시금 물어오는 소명에 대한 답을 구하는 중이다. 신라 말, 그 혼탁했던 시절, 그 무기력한 시대에 과감한 개혁을 꿈꾼 선(禪)종계의 스님들도 부처로부터 소명을 받았을까. 아니다. 소명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하늘과 내가 함께 맞닿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선종에서 깨달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천 년 전, 실상사가 구산선문이 된 것도, 출재가 대중이 함께 이 골짜기로 모여 이렇게 들판을 넓혀낸 것도, 지금 여기에서 인드라망을 조금씩 넓히고 있는 것도, 다 스스로 깨닫고 깨달아서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사람들의 발자취이다.
‘그렇지요? 내 생각이 맞지요?’ 실상사 마당 한 구석 약사전 큰 철부처님께 그렇게 물어본다. 천 년 전 이곳에 모인 신라 사람들은 금입택(金入宅)에 경주 사람들처럼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금도 없고, 동도 없었다. 다만 철은 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철부처님은 그렇게 호미 한 자루, 괭이 한 자루가 한데 모이고 함께 녹아서 세워졌다.
이 부처님은 지리산 천왕봉을 쳐다보고 계신데, 이유 있는 눈길이다. 풍수에 따르면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힘차게 내달려온 산의 정기가 일본 쪽으로 흘러가는 게 안타까워 그걸 막기 위해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철부처님의 공덕은 그 뿐이 아니다.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시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법당인 보광전, 쌍둥이 삼층석탑, 절 대문인 천왕문도 다 지리산 천왕봉을 향하고 있다.
절 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보니 어느새 캄캄해진다. 취침 시간이라는 안내 말씀도 나직하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잠도 쉽게 찾아와 주지 않는다. 절 마당에 두 탑의 그림자가 누워있다. 내 그림자를 숨겼다가 다시 찾고 하다 보니 어느새 탑을 돌고 있다. 하긴 요즘 뜨는 걷기 명상이 결국 탑돌이의 변형이 아니던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 기차를 이용하실 경우 남원역에서 하차하여 남원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택시 이용)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인월 시외버스터미널로 가 실상사행 버스를 탑니다. * 고속버스를 이용하실 경우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시외버스터미널 - 인월시외버스터미널 - 실상사로 오시면 됩니다. * 고속도로는 88고속도로 지리산 IC가 가장 가깝게 연결되며, 88고속도로 함양 IC,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생초 IC 등에서 나와도 국도를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실상사에 오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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