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癌) 못 이기면 끌어안고 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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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癌) 못 이기면 끌어안고 살랍니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6.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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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선고, 투병의지 불태우는 고명종 전 충주시의원
복막중피세포암, 서울대 분당병원 임상실험차 치료 진행
고명종은 누구인가...
89년 서원대 총학생회장,
3년 옥고 뒤 농군생활
최연소 지방 의원 맹활약


암투병 중인 고명종 전 의원을 찾아간 9월18일 오전, 고 전 의원의 병실은 비어있었다. 언제나처럼 링거병 지지대를 밀고 병동 주변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숲에서 만난 고 전 의원은 우려와 달리 밝고 당당했다.

서원대 역사교육학과 87학번인 고 전 의원은 1989년 여름 평양축전 준비와 관련해 어렵게 구한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해 청주시내 증권사 객장을 찾아갔다가 권총을 머리에 들이대는 형사들에게 연행돼 구속돼 꼬박 3년을 옥살이 했다.

1989년은 임수경씨의 방북 등과 맞물려 이른바 공안정국이 조성됐던 시점으로, 전국의 학생운동 지도그룹이 대대적으로 구속되고, 학교에서 제적됐던 시기다.

1992년 출소한 고 전 의원은 당시 전대협 의장을 지낸 임종석 의원 등과 함께 제적생 복적운동을 벌였고, 1996년 졸업장을 받게 된다.

구속전력으로 교사의 꿈을 접은 고 전 의원은 고향인 충주로 돌아와 선친과 함께 1만2000평에 이르는 과수원을 일구며 농군의 길을 걷게 되는데, 충주시 복숭아 작목반장, 충주시 4H연합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2002년 중원JC에 가입해 2005년에는 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 도내 최연소 지방의원으로 충주시의회에 입성한 것은 그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었다.

옥문(獄門)을 나온 89년 구속동지들끼리 ‘고향에 가서 시장(市長)하자’고 다짐했던 약속을 일부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복기왕, 임종석, 이기우, 한병도 국회의원 등이 당시 함께 결의했던 전대협 동기(3기)들이다.

고 전 의원은 “그 때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다. 더불어사는 삶을 살고자 했던 우리들은 계속해서 (정치참여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동권 학생에서 농민운동가, 지방의회 의원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고명종(39) 전 충주시의회 의원이 ‘복막중피세포암’이라는 희귀암에 걸려 투병중이다. 고 전 의원은 의사로부터 생존가능기간 3~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고 현재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원래부터 마른 체구에 퀭한 눈… 헐렁한 환자복을 입은 고 전 의원은 영락없는 아픈 이의 몰골이었지만 빛나는 눈동자는 시종일관 떨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건해 보였다. 그렇다고 생의 밧줄을 부여잡고 매달리는 조바심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내일 죽어도 하나 아쉬울 게 없지만 이놈 (암)을 끌어안고 살지못할 이유가 없다”는 고 전 의원의 말에서 지사(志士)의 풍모를 느꼈다면 표현의 남용일까?

그러나 불과 2개월 전, 직경이 27cm에 이르는 초대형 암덩어리를 제거했음에도 또다시 10cm가 넘는 암조직이 그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고명종’을 아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학생운동의 리더로서 3년의 옥고를 넘어서, 제초제도 없이 1만2000평의 과수원을 일궈온 뚝심을 굳게 믿는 까닭이다.

   
5.31선거 끝나고 암 발병 알아
고명종 전 충주시의원이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5.31 지방선거에서 충북도의원(충주1 선거구)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낙선사례를 다니는 과정에서였다. 가끔씩 항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배변 시에 느끼는 고통은 형언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장외과의 내시경, 혈액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고, 비뇨기과의 소변검사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진통제 처방과 함께 의사로부터 ‘선거 후유증이 아니겠냐’는 오지랖 넓은 위로의 말을 들어야 했다.

6월말 단순히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주의료원에 입원했을 때만해도 발암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40도가 넘는 고열증세가 찾아왔고, MRI(자기공명영상)·CT(컴퓨터단층촬영) 촬영 결과 대장과 소장을 둘러싸고 있는 복막에서 심상치 않은 조직이 발견됐다.

불과 보름만인 7월14일, 서울의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7시간30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직경이 무려 27cm에 이르는 암덩어리를 제거하기 직전에는 복수가 차고 의식이 혼미해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었다. ‘축구공’만한 암덩어리를 떼어냈지만 7월29일 퇴원할 때까지도 그저 암인줄만 알았을 뿐 정확한 병명을 몰랐다고 한다.

   
▲ 고명종 전 의원의 병실에는 가족사진과 딸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고 전 의원은 재수 동기이자 노선은 달랐지만 운동권 동지였던 심선화씨(인하대 졸)와 결혼해 세딸을 뒀다.
9월1일 확진, “그냥 내려가라”

수술 뒤 원체 회복이 빨랐고, 수술 이전에 느꼈던 증세도 한동안 사라져 이름도 모르는 암이 그렇게 물러가는 줄 았았다. 그러나 8월 중순부터 다시 통증이 시작됐고, 8월31일 서울대 분당병원에 입원한지 하룻만에 ‘복막중피세포암’이라는 확진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한두명 정도 환자가 발생하는 희귀암 중에서도 희귀암이었다. 의사가 “생존가능기간은 3개월, 연장된다하더라도 6개월은 넘기기 어렵다”는 시한부 선고와 함께 “병실에서 삶을 마감하지말고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라”는 충고까지 덧붙였다고 하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암덩어리가 복부를 돌아다니며 대장과 소장의 위치를 흐트러뜨리고 마침내 장기에 구멍을 내 갑자기 목숨을 잃게 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고 전 의원은 담대했다. 실제로도 동요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 전 의원이 삶에 대한 ‘집착’과는 분명 다른 ‘자신감’을 내보이자 병원 측에서도 ‘환자가 저 정도라면 해볼만 하다’며 항암치료를 결정했다.

현재 고 전 의원은 미국에서 임상실험이 완료된 A라는 항암주사를 3주 간격으로 맞고 있다. 1회 치료에만 1500만원이 드는 고액의 항암제지만 고 전 의원은 서울대병원의 국내 임상실험 대상으로 선정돼 A를 투여하는데 드는 비용을 면제받고 있다. 그의 절대긍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고 전 의원은 “학생운동으로 투옥돼 3년 동안 복역하는 동안 도인술을 수련했다. 네가 이놈을 물리치지 못하더라도 끌어안고 살지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게 웃었다. 숲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산책로 저 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링거병 지지대를 밀고 병동으로 돌아가는 고 전 의원이었다.

“웃는 게 좋다고 해 산책에 나설 때 마다 늘 큰 소리로 웃고다니다보니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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