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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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반성
  • 한덕현
  • 승인 2020.12.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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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여부가 연일 이슈가 되면서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가 생겼다. 비로소 위기감을 실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끄럽지만 이제까지는 코로나에 대한 느낌이 다분히 추상적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강했는데 요 며칠동안 지역사회에서도 확진자가 폭증하고 외국의 백신접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위기감이 높아진 것이다.

확실히 일상이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 그동안 관성처럼 해오던 각종 모임이나 사람 만남이 줄어들었고 주변의 모든 것들도 예전같은 편안함을 주지 못한다. 코스크니 턱스크니 하며 건성으로 쓰던 마스크는 이제 옆에 사람만 나타나면 신경 바짝 쓰고 매무새를 고쳐잡아야 하는 극도로 민감한 생필품이 됐고 어쩌다가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주변부터 살피게 된다.

아직은 가설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 이상으로 높아져 어지간한 업소는 문을 닫아야 하고 사람들도 문밖 출입을 제한당하는 현실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지금의 위기감은 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종종 외신으로 비쳐지는 후진국들의 코로나 실상, 예를 들어 입원실이 부족해 길바닥에 누운채로 줄을 서 기다리거나 아예 죽은 시체들이 대충 수습되어 널부러져 있는 광경들을 보면 “이젠 장난이 아니네”를 독백하게 된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세밑인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도 어쩔 수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또 많은 것을 성찰한다는 점이다. 일찌감치 요즘처럼 절제된(?) 생활을 했다면 좀 더 윤택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망상에서부터 내 몸과 머리를 좀 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에 활용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반성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가 최촉하는 세밑의 자기성찰은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과 더불어 당장은 우울하게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희망도 보이는 것이다.

우선 공수처가 그렇다. 국민의힘의 실속없는 몽니로 야당의 동의가 없이도 대통령 임명이 가능케 된 공수처장과 그가 이끌 공수처가 과연 검찰개혁의 마지막 초석이 될지, 아니면 야당의 주장대로 권력의 충견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많은 국민들은 일단 지대한 희망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여하튼 국가권력구조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지금도 검찰개혁을 놓고 추미애-윤석열 갈등의 잔재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 국민들은 더 이상 민생과 동떨어진 정쟁, 그들만의 아귀다툼을 보고 싶지 않다. 이로 인한 국가적 낭비가 얼마인가.

당초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위한 ‘조국-윤석열의 환상적인 조합’을 추켜세우며 그들을 요직에 앉혔다면 그것이 잘못 되었을 경우 이 역시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책임지고 해결했어야 할 문제다. 아무리 인내도 좋고 법과 원칙, 절차도 중요하지만 이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풀었어야지 임명된 자들의 끗발다툼에만 맡길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검찰개혁은 그동안 역대 정권의 실패사례를 보더라도 가히 혁명과도 같은 차원의 국가적 의지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 싸움과 과업을 추미애에게만 일임했다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 굳이 사족을 단다면 어떤 명분을 들이대도 자신을 전 정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대통령에게 처음부터 맞서는 윤석열은 민주주의니 헌법이니를 논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의 개인 삶은 더 피폐해진다.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조국이라는 장수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지켜만 보았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았으면 한다. 국가통치는 때에 따라선 시스템이나 절차보다도 지도자의 결단을 더 요구하게 된다. 아들 문준용씨의 코로나 예술지원금 수령은 상식적으로 접근해도 뭐가 문제인지 분명한데도 목하 크게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요즘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자꾸 회의가 생긴다.

결국 김종인이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 반대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컸다. 지금까지 그만한 강도의 워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사과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일부 의원들의 어깃장은 여전히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는다. 이명박 박근혜는 정책의 실패자가 아니고 권력형 부정부패, 국정농단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과는 군말없이 나왔어야 했다. 기껏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사과했지만 이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이 학수고대하는 정권교체는 앞으로도 요원하다.

그래도 조짐은 보인다. 김종인은 이날 정당개조, 인적쇄신, 정치혁신을 다짐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인적쇄신이다. 인적쇄신 없이는 나머지는 되지도 않고 될 리도 없다. 지금처럼 상대방의 말꼬리나 물고 늘어지고 오로지 반대, 저주, 증오, 막말하는 것으로 야당의 위상을 확인하려는 정치는 이미 한계에 왔다. 국민들도 이에 극도로 식상해 있고 태극기와 결별하라는 주문은 이래서 나온다. 문제가 있는 전국 당협위원장들을 대거 물갈이하겠다는 당의 예고를 주목하면서 세밑에 또 하나의 희망을 엿보게 된다.

최근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현상도 역으로 생각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언론에선 추락의 원인으로 추-윤 갈등과 여당의 독선을 주로 꼽지만 시중여론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의 정치성향이 극명하게 엇갈린 상황에서 진영논리의 변화보다는 코로나 대응과 경제문제가 지지도 판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진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에서 빠지는 수치만큼 그대로 야당 지지세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봐도 그렇다.

결국 관건은 국민들이 먹고사는 삶의 문제다. 부동산 실책에 따른 아파트, 전세값의 고공행진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오랫동안 꿈쩍않던 대통령지지도까지 내려앉힌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공수처도 좋고 검찰개혁도 좋고 야당의 환골탈태도 좋지만 정작 문제는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느냐는 것이다. 28년 전 미국의 대선을 뒤흔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후년에 있을 우리나라 대선 판도도 지배할 게 분명하다.

그러기에 세밑 반성에 뒤따르는 한 가지 국민희망은 ‘이젠 제발 보통의 상식으로 내 삶을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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