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과 직지(直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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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과 직지(直指)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6.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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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 영 문화부 기자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다. 때마침 파리로 간 디자이너 이상봉은 ‘한글’을 모티브로 컬렉션을 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각종 매체에서도 한글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문자로서 갖는 한글의 디자인적 요소, 사라진 옛말, 인터넷 매체를 통해 변형된 말들에 관한 다양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지난 10월 4일 청주에서는 직지가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와 춤에 이어 연극 무대에서 직지가 공연 된 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천상천하 유아 직지.’ 부처님이 태어나서 처음 외치셨다던 ‘천상천하 유아 독존’을 카피한 제목 그대로 무대에서 ‘직지’의 가치가 고고히 드러났다.

이쯤에서 “한글날과 직지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냐”고 질문한다면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고 싶다.

첫째, 디자이너 이상봉의 옷들을 보니, 직지 관련 문화상품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참고로 이상봉은 수묵화를 컨셉으로 한글을 그림으로, 옷의 디자인요소로 차용했다. 민족주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상표부터 모두 다른 나라말인데, 한글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냐로 해석된다.

여하튼 때마침 책상서랍에는 어디선가 받은 ‘직지 스카프’도 놓여 있었다.
직지(直指). 청주시도 바로 이 ‘直指’를 모티브로 그동안 다양한 컬렉션을 펼쳐온 셈이다. ‘直指’가 새겨진 가로등을 만들었고, 길의 이름을 정했고, 도자기를 구웠고, 넥타이를 맸다. 또 직지라는 닉네임이 붙은 다양한 체육행사들이 열렸다. 청주시에서 ‘直指’ 는 한글 문자보다 확실한 우대를 받고 있다.

둘째, 천상천하(청주시의 하늘과 땅)에는 왜 ‘直指’만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직지의 문자적인 물성을 갖고 다양한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정작 직지보다 더 혁명적인 인류의 사건인 금속활자에 대한 얘기는 우연에 의존한다거나 빠지기가 일쑤다. 연극도 마찬가지 였다. 또한 직지축제를 가봐도 금속활자의 주조과정은 보기좋은 시연행사장이자 인기높은 체험학습장으로 그치고 만다.

책으로서의 직지와 금속활자로서의 직지를 다같이 보되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직지를 연결지어야 할 때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금속활자는 정보 유통을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인데 우리는 21세기를 살면서도 고려시대에만 얽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부처님은 날때부터 비범하셔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셨다지만, 청주시까지, 또한 연극배우들까지 오로지 천상천하 유아 직지라고 외친다면 무리수가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이제 ‘현존 최고 직지’는 누구나 안다. 더 이상 직지라는 문자에 얽매이고, 또한 설명하려 말고 문화콘텐츠로서 승부를 냈으면 좋겠다. 문화계 종사자들이 흔히 문화상품 하나만 잘 터지면 로또가 부럽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직지가 품고 있는 다양한 스토리들을 뽑아내 ‘그 밥에 그 나물’ 말고, 다양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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