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독립지사,호적취득 왜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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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독립지사,호적취득 왜 못했나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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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유족회,死者취적 가능 특별법 제정 요구

단재 소유 청원 귀래리 2000평 땅, 호적없어 등기못해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유공자의 국내 호적취득이 이뤄지지 않아 후손들이 재산권 행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친일파 거두인 이완용의 증손자가 지난 97년 30억대의 토지를 소송을 통해 되찾은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에따라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은규)는 정부당국에 호적없이 사망한 독립유공자에 대해 사자취적이 가능토록 특별법 제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선생의 경우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묘역 주변의 미등기 토지로 인해 단재사당 재정비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해 청원군은 단재사당 인접부지 1만평을 매입해 사당이전, 생가복원, 주차장 확장사업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해당 부지 가운데 2000평이 토지대장상 단재선생 소유로 명시됐지만 미등기 상태라서 매입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결국 친손자 신상원씨는 작년 1월 청주지법에 토지소유권 확인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단재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여사는 “일제당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국내 호적이 모두 없어졌다. 따라서 국외에서 돌아가신 분은 국적취득도 안된 상태다. 1912년에 일제가 조선민사령을 발동해 창씨개명을 하고 새 호적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신청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해방직후에 이런 모순점을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친일파들이 정부요직을 차지하면서 무시해 버린 것이다. 우리 집안도 시아버님인 단재선생이 남편 신수범(91년 사망)의 호적에 父로만 기재돼 있을 뿐, 정작 당신의 호적이 없다보니 후손이 토지등기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등기 토지를 등재하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상속권 확인과 사자의 재적등본이 필요한데, 단재선생의 재적등본을 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대해 청원군 관계자는 “토지미등기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3차례에 걸쳐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땐 특별법에 따라 재적부가 없어도 소유권을 인정할 증언, 자료만 있으면 등기가 가능했다. 단재 선생의 경우 후손들이 토지소유 여부를 몰랐던 것 같다. 또한 직계 상속인에게 보존등기를 내야 하는데, 서울지법에서 단재선생의 아드님인 신수범씨의 양자관계를 인정한 판결이 있어 어떻게 처리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순국선열유족회 이인규회장도 독립유공자인 조부 이강년 선생의 토지를 되찾지 못해 애를 태운 경험이 있다. 구한말 8도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강년 선생은 지난 62년 독립유공자 대한민국장의 서훈을 받았다. 경북 문경 출신의 이강년 선생은 문경새재 인근에 50만평의 임야를 소유했으나 일제에 체포돼 사형당한 뒤 지역의 일본인 세도가와 한국인 형사에게 빼앗겼다는 것.

손자인 이 회장은 “어릴적에 순사가 집에 나타났다 하면 아버님이 몸을 숨기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일제때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학교교육도 못받으신 아버님이 한국인 순사가 찾아와 자꾸 도장찍으라고 하니까, 찍어줬다가 땅을 다 뺏겼다는 말씀을 들었다. 8·15해방후에 일본이 ㅉ겨가고 조부님 땅이 국유지로 됐다가 79년도에 그 한국인 순사가 문경군에서 불하형식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 군에서 사전공고를 했다면 우리 후손이 알고 대처했을텐데, 그냥 불하해주는 바람에 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회장의 경우에도 해방직후 이강년 선생의 호적취득이 이뤄졌다면 후손들이 잃어버린 땅을 찾는데 결정적인 전기가 됐을 것이다. 이회장의 아쉬움은 원망으로 변했다. “지금 그 빼앗긴 산에 조상님의 묘가 많이 있다. 오히려 새 주인 눈치를 봐야하는 실정이다. 해방정권이 친일파를 쓰는 바람에 모든 게 잘못된 것이다. 후손들의 독립유공자 훈장타고 할 때도 본인의 호적등본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다른 자료를 내고하는 편법을 써서 일을 했다. 하지만 토지상속, 등기이전 같은 법적문제는 유족회원들이 호적이 없어서 겪는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7년 이완용 증손자인 이모씨(당시 64세)는 서울고법에 북아현동 땅 712평(시가 3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해 당시 소유주에게 승소했다.

재판부는 “친일파의 땅이라해서 법률상 근거없이 재산권을 빼앗은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시했다. 이에반해 지난 2001 서울지법 이선희판사는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로로 일왕으로부터 남작작위를 받고 장관까지 지낸 이재극씨의 손자며느리 김모씨(78)가 국가를 상대로 낸 토지소유권확인소송을 각하했다.

이판사는 판결문에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천명하고 있다. 민족의 자주독립과 자결을 스스로 부정하고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가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법원에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보호해달라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반하여 부적법하다”고 판시했다.
/ 권혁상 기자

단재 후손, 호적문제로 잇단 송사 시달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직계 후손들은 지난 98년 친손자를 주장하는 황모씨와 오랜기간 법정공방을 벌여야 했다. 단재의 외아들인 신수범씨가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만난 전처 조모씨 아들인 황모씨가 91년 수범씨 사망직후 자신이 친생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던 것.

이에따라 며느리 이덕남여사와 아들 신상원씨는 황씨를 상대로 ‘친생자 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황모씨가 친생자가 아닌 양자관계만 성립한다고 판결해 단재선생의 혈통시비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서울지검은 황씨에 대한 보훈연금 편취 사기미수 혐의를 수사하면서 신수범씨의 묘에서 유골을, 황씨와 상원씨로부터는 머리카락을 각각 채취해 유전자 감식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상원씨의 친생자 관계가 확인되면서 황씨는 불구소기소됐다. 전쟁직후 호적정리가 제대로 되지못해 직계후손들이 크나큰 상처를 입은 불행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단재선생의 호적이 없어 미등기 토지를 정리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겹친 것이다. 결국 소송을 통해 또다시 권리확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며느리 이덕남여사는 “해방후 독립지사와 후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없어 결국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됐다. 일단 토지등기를 마쳐야만 단재선생 사당의 성역화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될텐데, 이런 허망한 일로 주춤거리니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에서 하루속히 특별법을 마련해 독립지사들의 국적과 호적을 회복해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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