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자명 선생 기념사업 탄력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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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명 선생 기념사업 탄력 받나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1.03.0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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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사단법인 승인 임박”…충주시 움직임 주목
중국 후난농업대학 내에 있는 류자명 선생 흉상. /독립기념관 제공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속보=지지부진하던 류자명(유자명) 선생 기념사업이 사단법인 등록을 계기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본보 2월 26일자, 신축 충주역, 디자인 설계 무엇을 담을까>

2일 류자명 선생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조만간 사단법인 등록 승인이 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날 충북도 관계자도 “서류 절차가 마무리돼 최종 사인만 남은 상태”라며 “이달 상순 내에 승인될 것”이라고 확인해 줬다.

이에 따라 류 선생의 고향 충주에서 정체되던 선양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난 7월 등록 서류를 충북도에 제출했고 도에서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단법인 등록이 마무리되면 기념사업회는 지역과 충북도, 충주시와 협조체제를 갖고 일념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류자명 선생의 고귀한 뜻을 새겨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류자명 선생의 손자인 기념사업회 회장 류인호(85)씨는 “남들은 기관을 찾아 떼를 써서라도 사단법인 승인을 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지역 분들의 도움으로 사단법인 인가가 나올 것으로 알고 있다. 고맙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할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 후손들이 말하고 다니는 것은 그렇지 않느냐”면서 “모든 일이 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충주시가 류자명 선생 기념사업에 소극적이라는 일부 여론에 대한 답변이다.

이번 사단법인 승인은 류자명 선생이 1919년 삼일운동 때 충주에서 일경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지 102년 만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번 승인은 정부와 지자체가 그에 대한 선양사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충주시는 류 선생 기념사업을 빠르게 준비하다가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06년 한창희 시장 시기에 충주시는 중국에 있는 유족과 기념관 설립 등을 약속하고 육필원고 등 유품 200점을 기증받았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유품은 지금까지 충주박물관 수장고에 결박된 처지다.

기념관 등 설치 추진 될까

유품 전달에 앞서 당시 중국 측 유족 류전휘씨와 부인 및 국내유족 등 14명은 충주시장실을 방문해 한창희 시장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유품은 본인의 것도 중국 것도 아닌 한국의 것이요 충주의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충주시는 충주박물관을 활용해 전시·보존하고 향후 류자명 선생 생가터 복원 및 기념관을 건립해 상설 전시될 수 있도록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 시기에 류 선생과 관련한 국제학술 대회 등이 열리기도 했지만 용두사미가 됐다.

이와 관련해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선양사업이 안 돼 안타깝다”며 “기본적으로 아들 류전휘와 MOU를 맺고 자료를 고향에 기증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는 생가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하는 내용이었다”라며 “시장이 바뀌면서 파기한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특히 박 교수는 “개인이 한 게 아니고 대한민국 충주시가 독립운동가 후손한테 약속한 건데 MOU대로 하는 게 도리에 맞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43년생인 아들(류전휘)이 건강하게 있는데 내가 아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충주시가 한 건데 내가 항의를 받고 있다”며 “국내에서 가면 (그가) 안내도 하곤 한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지자체의 가장 큰 폐단이다”라고 비판했다.

충북도에서 사단법인 등록 등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에 박 교수는 “맺음도 충주시가 해야 된다”며 류자명 선생에 대한 시의 적극적인 행보를 주문했다.

길경택 예성문화연구회 회장은 “지난해 10월 22일 교육청에서 중앙탑면에 있는 단재교육원 북부분원에 류자명 선생 흉상을 세웠다”면서 “전 시장들이 몇 번씩 바뀌면서 전시관 건립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용도가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선양사업에 대해 그는 “종합적인 시각을 갖고 해줘야 된다. 그동안 몰랐던 부분인데 3개국(남북한 및 중국)에서 다 훈장을 받은 분인데 격에 맞게 기념해야 해야된다”며 “단재 선생에 비하면 발굴 자체도 늦고 더 많이 선양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충주역에 유품 전시 전망

사단법인 승인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충주시 관계자는 “법인과 유대관계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점차적으로 토론과 의견을 모으다 보면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가 복원 및 전시관 설치에 대해서는 “생가터를 가 봤는데 외져 있다”면서 “복원을 해놓고 관리가 안되고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라며 사후 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아울러 신축하는 충주역사에 류자명 선생의 뜻을 담아내자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시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시민 모임에서 건의가 들어왔다”며 “역사 내에 류자명 선생의 홍보관을 설치해 유품을 전시하는 방법을 철도공단에 건의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철도공단 관계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도 “우리 시설이 아니니까, 거기서도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되니까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편, 류자명은 의열단의 투쟁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거사를 계획한 비밀참모장이었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과 임시의정원 충청도 대표 의원을 역임했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인 그는 1923년 신채호와 함께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했다.

그는 광복 이후 사회주의자로 분류돼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1985년 중국 후난성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중국 국적을 받지 않았다. 끝까지 한국인으로서 후난농업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유해는 2002년 봉환돼 대전국립현충원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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