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 가득한 계곡에 산그늘은 짙게 드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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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빛 가득한 계곡에 산그늘은 짙게 드리우고
  • 충북인뉴스
  • 승인 2006.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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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화양구곡(華陽九曲)
처음부터 오늘의 화양동 행이 가벼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벼운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10여 년 세월 동안 역사 기행 길잡이로 밥을 벌던 터에, 입장이 바뀌어 단순한 구경꾼 노릇만 하면 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벼운 발걸음일 만했다. 문제는 단체 여행이라는 것에 있었다. 인구 60만의 중소 도시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떠나는 여행인데, 그 중에서 적어도 몇 명은 아는 얼굴일 거라는 지레 짐작으로 속이 꽤 불편하다. 더구나 주최 단체의 성격상, 이리저리 연결된 지인들과의 만남은 예상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마주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 화양구곡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5년에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었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동에 9곡(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을 이름 지었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서, 여름 뿐만 아니라 인근 도명산 산행과 함께 사시사철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나는 인생의 길목에서 크게 넘어져 있는 상태다. 이럴 땐 사람들과 만나는 게 퍽 두렵다. 안부 인사마저도 부담스럽다.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만나는 상대들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로 무거울 것이라는 추측도 많이 생긴다. 또한 이렇게 넘어지고 깨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게 있는데, 사람 사이에서의 갈등과 골 깊은 인간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곱지 않은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외골수에다 고집불통이라니 원! 그마저도 부담스럽고 황송스럽기만 할 따름이지만.

   
▲ 만동묘(위)화양구곡 입구 서낭당(아래)
어쨌거나 처한 입장이 이 정도이다 보니, 아는 사람 만나는 게 어찌 반갑기만 할 것이며, 인솔자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해서 마냥 가볍기만 하랴.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언제까지고 사람을 떠나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둘러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이제는 부딪힐 건 부딪히고, 만나야 한다면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의식도 발동했다. 아니면 역지사지라고나 할까. 잔치판에는 그저 구경꾼이 많아야 좋은 법이므로.

불편함을 꿀꺽 삼켜 버리고, ‘평소에 진 신세나 갚자’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행사를 주최한 K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왠지 앞자리는 권위적인 듯하고, 끝자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의 팔짱끼고 지켜보는 자리 같아서, 중간 자리를 살핀다. 의외로 아는 얼굴도 없다. 다행스런 마음으로 한숨을 돌리는 순간,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딱 마주쳤다. 서른 초반 시절, 함께 일했던 선배다. 그동안 전혀 소식을 몰랐는데, 최근 모 단체에서 새로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던 참이었다. 옆자리가 비어있다. 나란히 앉는다. 오늘 하루 동안의 길동무가 된 셈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우리는 서로 그리 편한 사이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생각하는 것과 일하는 방식이 달라 골이 깊은 채로 헤어진 게 십 수 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몇 마디의 안부인사로 서로의 눈빛이 따뜻하게 풀리고 있다. 각자 다른 길이었지만, 둘 다 그동안 사느라고 무척 애를 많이 쓴 모양이다. 외로움의 긴 터널을 막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 특유의 솔직하고도 깊은 눈빛과 자잘한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웃음으로 얼굴빛이 환하다.

   
▲ 첨성대 아래에 새겨진 옛글씨 비례부동.
넘어지고 깨어지는 삶의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게 있는데, 사람 사이에서의 갈등과 골 깊은 인간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그 외로움의 긴 터널을 벗어난 사람들은 솔직함으로 한층 깊어진 눈빛과 자잘한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웃음으로 얼굴빛이 환하다.

도반과의 동행에서 서로를 새롭게 재발견하는 일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길라잡이인 K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의 일정과 함께 ‘오늘 우리가 왜 화양구곡을 찾아가는지, 또 우암 송시열이란 인물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오늘의 주제가 우리의 얼과 혼을 찾아가는 여행인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화양동 계곡에서 찾아보는 우리의 본디 참모습, 곧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게 오늘 여행의 목적이라고 한다.

화양동에 도착한 버스가 우리를 부려 놓은 곳은 주차장 어귀에 있는 서낭당이다. 커다란 돌무더기가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그 옆에 서있는 서낭나무 역시 다 늙었지만 위세가 당당하다. 끊어진 마을 공동체 문화를 다시 잇기 위한 제단도 마련돼 있다. 아! 그런데 거기, 서낭당 돌무더기 사이로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단체 버스에서 어째 안 보인다 했던 이들! 한때, 정말 좋은 뜻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했었던 이들. 내 역사의 중요한 갈피갈피마다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정이 깊었던 그만큼 더 멀리에 있는 사람들.

신산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눈이 낮아지고 귀가 열리며, 발걸음은 점점 당당해진다고 한다. 너와나 모두를 용서하는 삶의 겸손함이 몸에 배고, 어제에 얽매이지 않아 ‘지금 이 순간’에 건강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건 또 어쩐 일인가? 선뜻 몸이 나아가질 않는다. 억지로 짜내는 듯 데면데면한 인사밖에 나오질 않는다. 속마음과 행동이 다른 내가 확연히 느껴진다. 쯧쯧, 아직 멀었구나! 천지인이 하나로 모아지는 이 서낭당에서조차도 죽은 어제 때문에 오늘을 어둡게 하고 있다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스스로에게 먼저 혀를 끌끌 찬다.

   
▲ 화양구곡 중 제2곡 운영담.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해서 붙여진 이름.

서낭당을 돌아 만동묘로 가는 이 화양동 길은 맑은 물과 기묘한 바위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운영담(雲影潭:화양 제2곡)도 이 길가에 있다. 조선 시대 적도 많고 동지도 많았던 우암 송시열도 이 산수(山水)에 반해 여기에 머물며 곳곳에 좋은 글귀를 많이도 새겨 놓았다. 하늘의 별을 본다는 첨성대(瞻星臺:화양 제5곡) 밑에만 해도 비례부동(非禮不動),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글씨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개 무슨 일을 할 때, 처음 마음과 처음 가진 뜻은 순수하고 드높은 정신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뜻과 정신을 계속 지속해 나가기는 꽤 어렵다. 문자 그대로라면 비례부동(非禮不動)이 얼마나 좋은 말이고, 만절필동(萬折必東)은 또 얼마나 당당한 뜻이던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만큼 항심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또한 만 번 물이 돌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라며 호언장담할 만큼 주체 의식을 가졌다는 입장 표명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말을 실행하는 데 있어 우암 송시열과 그 학파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였던가. 물론 그 시대를 살아간 반대파들 역시 마찬가지다. 혹시 대의라는 명분 아래 소인 같은 마음가짐은 없었던가.

비례부동(非禮不動)이 얼마나 좋은 말이고, 만절필동(萬折必東)은 또 얼마나 당당한 뜻인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만큼 항심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 만 번 물이 돌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호언장담. 하지만 말과 글과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법.

저만큼 앞에서 한때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이들이 걸어간다. 여기 화양동 이 맑은 산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이나 씻어내야 하는가.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또 무엇이던가. 그들이나 나나, 우리는 모두 개인의 영달보다는 공익을 위해 이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게다가 역사 속에서의 어제를 되짚어, 지금 여기서 할 일을 찾고, 거기에서 또 내일을 가리키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뿐인가. 처음의 우리는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머리에 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돌이, 모두 우리와 같은 생명체임을 분명히 알고자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 모든 이치를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 전달해주고자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데, 그 실행 방법에 있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조선 시대 때, 예(禮)와 이(理)를 따지며 공박을 하던 유학자들과 역사의식과 생명 사상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지금 시대의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옛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이고, 버릴 점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버릴 것은 무엇이고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파천(화양 9곡)으로 가는 길목에서 앞서 가는 이들이 돌탑을 쌓고 있다.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돌멩이를 하나하나 얹어놓고는 숲 길 저쪽 파천으로 팔랑팔랑 뛰어간다. 하늘의 구름장을 뚝뚝 뜯어다 놓은 것 같은 너럭바위 위를 나비처럼 날아 건너는 녀석들. 그 위로 가을 햇빛이 쏟아져 내려 하얗게 빛나는데, 반대편 산에서는 벌써 산그늘이 짙게 내려와 계곡을 반이나 덮고 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은 저기 산 그림자 짙은 반대편에 앉아 있고, 나도 아직 숲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엉거주춤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건너오고, 나아가리라. 아이들 웃음 같은 가을 햇살 환하게 빛나는 저 파천 너럭바위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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