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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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 한덕현
  • 승인 2021.04.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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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같은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이 끝내 슬픔을 삭이지 못한 것이 있다. 배우지망생 조하나의 죽음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도 하나 하나 자신의 소중한 꿈을 키워가던 그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상실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에게 죽음의 그늘을 안긴 피해금액이 고작 200만원이라는 사실 앞에선 이루 말못할 분노감이 밀려왔다. 잘난 사람들에게는 하루저녁 술값도 안 되는 이 돈 때문에 이제 겨우 23살인 그는 삶의 끈을 놓은 것이다.

생뚱맞을지 모르겠지만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냉혹할 정도로 심판받은 문재인 정권의 실책을 나는 이런 데서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일반 국민들, ‘서민’들을 괴롭히는 사회 악행들에 대해 이 정권만큼 국가 리더들의 분명한 메시지가 생산되지 않은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같다. 막상 국민들은 정치권의 거대담론보다는 자신들의 실생활에 직결되는 것에 더 관심이 크다. 말도 안되는 범죄로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위협당하고, 또 뻔한 보이스피싱에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과연 대통령을 비롯한 이 나라 책임자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나 갖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과거 정권에선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정작 가려움을 느끼는 곳을 찾아 대처하려는 ‘액션’이라도 보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조폭과 민생사범이 기승을 부리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불법 사금융이 설쳐대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기강 차원의 근절을 약속했다. 이럴 때마다 실제 효과가 있었고 국민들도 경험상으로 이를 잘 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악폐들이 다시 여기저기 고개를 드는 것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전화사기가 속출하고 있고 주택가나 상가, 골목 등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불법 사금융 전단지가 이젠 마구잡이로 살포되고 있다. 성범죄와 갑질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데도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으니 이럴 때 대통령의 선언적 엄포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조하나의 200만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취임사를 떠올리게 된다. 상황판을 그려 일자리를 직접 챙기고,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며, 비정규직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가고 있고 현재로선 반전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故) 조하나씨 / 인스타그램 캡처
고(故) 조하나씨 / 인스타그램 캡처

 

국민들이 좌절하는 것은 개혁의 실패나 아파트값 급등만이 아니다. 국가 리더십에 이미지만 있고 임팩트가 없다고들 한다. 어쨌든 대통령제 나라에서 대통령의 한 마디는 곧 믿음이고 약속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만큼 힘이 실리고 실제 실행력도 담보한다. 그런데도 기껏 자신이 임명한 조국과 윤석열에 추미애까지 가세해 이전투구를 벌이는데도 방치했고 그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사권이 이 때만큼 국민들에게 답답증을 안긴 적도 없다.

며칠 전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등 기동점검’ 감사보고서가 우리를 또 열불나게 만든다. 이런 보고서에 충북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선 기분 나쁘다. 도지사와 청주시장이 모두 여당 소속으로 어느 곳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기대됐건만 실상 현장에선 과거보다도 더 왜곡되고 망가지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문제의 보고서에 대한 언론보도는 이렇다. 충북도청 산하 농산사업소는 지난 2018년 4월 A씨를 기간제(계약직)로 채용했다. 그는 서류전형 등을 거치지 않고 취업했다. 면접도 하지 않았지만 사업소가 면접 결과표를 임의로 작성해줬다. 감사에서 A씨가 이 사업소의 팀장급 공무원의 배우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5개월 뒤 공무직(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형식적인 제한경쟁을 통해서였다. 심지어는 A씨가 푼 실기문제는 그의 배우자가 낸 문제였다.

또 2018년 4월 B씨를 기간제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농산사업소가 면접점수를 조작한 것도 이번 감사 결과 드러났다. 4명을 뽑는 기간제 자리에 B씨가 면접에서 5위를 하자, 기간제 채용 담당자는 채용 담당 과장에게 “B씨는 충북도청 ○○의 배우자입니다”라고 보고해 점수를 조작하도록 했다. B씨는 4위로 합격했고, 5개월 뒤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이 밖에도 감사원은 충북 산림환경연구소의 한 과장이 사촌동생 면접을 직접 본뒤 채용한 사례, 충북 동물위생시험소가 거래처 대표이사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아들을 절차 없이 뽑은 사례 등도 적발했다. 결국 감사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에게 관련 공무원들의 경징계 이상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상징처럼 여겨졌던 사례도 이기적인 산물임이 드러났다. 2019년 서울교통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한전KPS·한국산업인력공단에 대한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에서 정규직 전환자 3048명 중 333명(10.9%)이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인지상정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이건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진보세력들이 정부의 회전문 인사에 동원되고 또 진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시민운동 책임자들이 어느덧 준(準)관료가 되어 정부와 지자체의 요직이나 탐하는가 하면 여기저기 공적자금의 수혜를 누리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것도 국민들을 영 불편하게 한다. 진보에 대해 국민들은 여전히 정직한 신념과 정직한 노동, 정직한 소득을 바라고 있다.

현 정부와 진보에 대한 부동의 지지세력이던 20,30세대의 등돌림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고 그 것이 지난 재보궐선거와 근자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평등, 공정, 정의를 국가통치의 최고 이념으로 제시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소통과 협치에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문 대통령은 참으로 헷갈리게도(?) 이 부분에 있어선 최악으로 기록될 처지다.

임기 내내 야당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고 기자들과의 만남도 너무 희박했다. 이와 관련해선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불쑥 ‘페이크(fake) 뉴스’라고 일갈하고 공항을 가다가도 멈춰서 기자와 입씨름을 하는 트럼프가 부러웠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문 대통령의 인상깊은 소통은 참모들과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걷는 것과, 지지자들과 북한산에 올라 인증샷을 찍는 모습이 고작이었다. 정치는 어차피 끊임없이 적을 상대해야 하는 과업인데도 대통령은 나를 따르라!가 절실할 때마다 막상 전투를 꺼렸다. 왜 그랬을까? 그 것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단돈 200만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조하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침묵할텐가. 나라면 보이스피싱을 향해 에라잇~ XXX, 욕이라도 퍼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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