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산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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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산으로 간 까닭은?
  • 한덕현
  • 승인 2021.05.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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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등산, 캠핑, 골프. 이 세 분야에서 취미활동을 한다면 비교적 여유롭게 산다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셋 중에 하나도 관심이 없을 경우는? 글쎄다, 삶이 좀 메마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굳이 셋만을 꼽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극도로 침체되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오히려 활성화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MZ세대들의 관심과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현상들은 필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태어난 밀레니엄(millenniu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Z세대를 합쳐 MZ세대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2030이라고 통칭하는 20대와 30대가 이들이다. 디지털과 IT환경에 독보적으로 익숙하고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 소유보다는 공유의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이들은 최근 증권가의 동학개미운동과 지난 4.7재보궐선거를 계기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들의 사회영향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커졌고 이젠 사회 전분야, 예를 들어 마케팅이나 부동산, 패션, 음식, 정치 등 어느 영역이든 이들의 거취가 곧 성패를 좌우하는 좌표가 됐다. MZ세대가 등산이나 캠핑, 골프 등에서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건 당연히 코로나의 영향이 크다. 해외여행이 어렵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내로 눈을 돌리게 됐고 또 대인접촉이 엄격하게 규제되는 일반 분야와는 달리 탁 트인 자연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비교적 주변눈치를 덜 받는 것이다.

우선 등산을 보자. 주말 산행을 즐기는 입장에서 그동안 늘 아쉬웠던 것은 중장년들 외엔 젊은층들이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산행과정에서 어쩌다가 10대나 2, 30대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데 요즘은 달라졌다.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젊은층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옷차림 또한 기존 시각과 비교된다. 그동안 등산복 하면 색색의 알록달록한 어웃도어가 대세였는데 MZ세대들은 몸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등 간편복을 즐긴다. 주말산행을 같이하는 한 지인은 이런 광경에 혀를 차기도 하지만 다른 반응들이 주목된다. 덕분에 산행문화가 젊어지고 발랄해져서 좋다는 것이다.

2030의 등산족 급증현상은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등산, 골프, 캠핑 물품 판매량이 전년보다 24%가량 증가했고 이중 등산용품만을 기준하면 30%, 또 20대에 국한할 경우 무려 87%나 급증했다고 한다. 쇼셜미디어(SNS)의 관련 사이트엔 방문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등린이’와 ‘산린이’라는 단어가 해시태그된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등린이는 등산+어린이, 산린이는 산+어린이라는 신조어로 등산 입문자를 뜻한다. 2030세대들이 산을 찾으면서 프로깅(plogging)이라는 새로운 운동도 생겨났다.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산행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활동이다.

MZ세대는 골프장 문화도 확 바꾸고 있다. 요즘 골프장 부킹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요금이 대책없이 오르는데다 부킹까지 어려워지자 주말골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아니다. 이처럼 골프장에 특수를 안기고 있는 결정적 원인은 여성과 젊은층 골퍼들의 급증현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성골퍼들의 숫자는 남성과 비교해 구색맞추기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역전됐다고 할 정도로 여성들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1년여 사이 2030세대의 골프장 습격(?)이 부킹난을 부채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특징은 골프 라운드를 일종의 커뮤니티(community) 차원으로 한다는 것이다. 지연이나 학연 그리고 직장과 친구등 가까운 관계를 중심으로 동호회나 월례회 차원의 골프모임을 하는 기성세대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SNS등을 통해 전국 개념으로 모이고 골프라운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소통과 교감을 나누는 창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충북과 전북 등 국토의 중간쯤에 위치한 골프장엔 이같은 2030들의 골프행사가 자주 눈에 띈다.

요즘 대세라는 캠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반 캠핑은 물론이고 차박, 글램핑, 카라반 등을 20대에서 3, 40대들이 선도하면서 우리나라 야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캠핑의 가장 큰 장점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과 가정의 일상을 야외에서 나누면서 그들에게 소통과 배려, 책임감을 익히게 하는 데엔 캠핑만한 것도 없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하다는 ‘공동체 의식’을 자연속에서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없이 반가운 것은 등산, 골프, 캠핑중에서도 MZ세대들이 등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특별히 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산을 통해 얻고 배우게 될 삶의 가치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등산은 어른이 됐을 때 인생의 거름이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가까운 산을 찾아라. 자연을 통해 사랑과 협동심을 배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산을 오르며 많은 대화를 나눠라.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도 깨닫게 된다.” “아이들 스스로 길을 찾게 하라. 부모는 미리 등산 루트를 익혀야 한다. 길을 잘못 찾았을 땐 돌아오는 법을 깨우치는 것도 중요하다.” 청주에서 향토 기업인 주식회사 ‘태인’을 창업하고 지금은 대한산악연맹회장으로 국내 산악계의 대부로 활동하는 이인정 씨가 등산과 자녀교육의 상관관계를 정리한 것을 발췌한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중장년들은 10대와 20대, 30대 자녀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고민이 커도 너무 크다. 아무리 디지털 세대라고 하지만 눈만 뜨면, 심지어 부모와 마주앉은 자리나 밥상머리에서조차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는 자녀들로 인해 어느 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좌절감과 답답함을 느낀다. 자식들에게 호연지기는커녕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회성, 인성조차 키워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나이도 찰만큼 찼으니 자녀들에게 쉽게 말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이럴 때 2030들이 스스로 알아서 산을 찾는다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다. ‘나를 위해, 나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쓴다’는 이들 MZ세대가 산에서 깨우침을 얻고 또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만들어낼 대한민국의 미래라면 맘껏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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