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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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효과
  • 한덕현
  • 승인 2021.05.2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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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이준석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그의 당대표 출마설이 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지금의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좋게 말해 그가 이제껏 누려왔던 세대별 지분 성격의 최고위원 정도나 노리든지, 아니면 한낱 풋내기의 호기 정도로 치부했다. 한데 결과는 적합도나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론조사 수치대로라면 그는 이미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고도 남는다.

이준석 돌풍은 참으로 파격적이다. 정치적으로 많이 알려진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초선도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당의 우두머리로 거론되는 자체가 그렇다. 물론 프랑스의 마크롱이나 영국의 토니블레어, 캐머런 처럼 불과 30대 나이에 대통령이 되고 공당의 당수가 되는 등 세계 무대에서는 정치 신예들의 성공신화가 익히 현실화됐지만 그렇더라도 장유유서의 유교권 나라, 그 것도 가부장적인 차수(次數)문화가 절대적으로 숭상되는 국내 정치에서 고작 36세의 이준석이 이처럼 파란을 일으킨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른바 ‘이준석 효과’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쾌한 반란을 꿈꾼다”(오세훈) “변화와 혁신을 기대한다”(원희룡)며 같은 당 중진들이 맞장구를 쳐대고 있고 여권에서조차도 초짜(?) 원외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데 대해 “우리도 조만간 거센 바람을 맞는 게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정치의 불치병인 진영과 계파라는 프레임을 타파해 자칫하면 내년 대선에서 중도, 심지어 진보까지도 빨아들이지 않을까 내심 우려한다고 한다.

극도의 혐오로 표출되는 현재의 정치불신을 생각한다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준석 돌풍'은 허상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방송인 김용민은 한 술 더 떠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을 상징한다”면서 “이준석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더불어민주당도 ‘그렇고 그런 정치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일침한다.

SNS에선 여야 진영을 떠나 서로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이준석의 분발과 선전을 격려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룬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가 지난 4.7재보선 및 진중권과의 페미니즘 논쟁으로 확실한 우위를 차지했다고 자부하는 2030 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와 지역에서 골고루 지지세가 오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정도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분위기를 보면 지금의 파장이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같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6월 11일까지는 더 많은 얘기와 더 많은 논란이 양산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재미’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동안 눈만 뜨면 들어오던 꼰대 정치인들보다 훨씬 흥미롭고 참신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준석 돌풍에 이재명과 윤석열 등 어느덧 진부하고 식상해진 기성품 잠룡들에 대한 관심은 잠시 주춤하고 있다. 어쨌든 이준석은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를 아우르는 시대정신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이다.

타이밍도 적절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라는 당직, 그리고 해박한 지식과 달변을 내세워 각종 매체에서 종횡무진 활동한 전력으로 ‘이준석’이라는 인물에 대해선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진중권과 현학(衒學) 즉 누가 똑똑하냐를 다툰 소위 먹물들의 공방이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동안 진보에 맞서며 이슈와 정치평론의 가늠자 역할을 자처하던 진중권을 향한 이준석의 사이다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통쾌감까지 안겼다.

 

결과적으로 이준석은 좋은 기사든 나쁜 기사든 언론에 노출되는 자체가 정치인에게는 효율적이라는 정치 불문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자신을 둘러싼 공방으로 그만큼 존재감이 일약 커졌다고 볼 수 있는데 “나를 조져도 좋으니 기사만 써달라”고 하던 과거 김현수 청주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준석이야말로 “정치인 뉴스는 부음 외에는 어떤 것도 좋다”는 이른바 ‘호명 혹은 거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준석의 인기는 여전히 유동적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변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아직은 치명적인 도덕성 시비나 말 실수가 없다 하더라도 향후 있을 경선에서의 컷오프와 우리나라 정치의 만고불변 DNA인 합종연횡 등을 고려하면 지금으로선 섣부른 판단은 당연히 금물이다. 여론조사가 그대로 당락을 좌우한다면 안철수는 벌써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다.

예비경선에선 당원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50 대 50으로 반영하지만 본선에서 당원투표가 70%를 차지한다는 것도 이준석에게는 큰 변수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다선들이 장악하고 있는 견고한 당 조직과 당원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당심'은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속설에 근거한다면 이준석이 현재의 바람을 어떻게 타고 순항을 이어갈지는 앞으로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 참으로 함축적이고 기가 막히다. “이준석의 적은 이준석이다.” 젊은 나이임에도 이준석은 이미 이지(理智)의 실력이나 논리에선 탁월하기 그지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배움의 과정도 출중했다. 여기에 달변까지 갖췄으니 그만한 ‘상품’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이를 배경으로 외모 뿐 아니라 기지와 재치가 넘치고, 순발력 또한 뛰어나다면 이보다 더한 정치적 자질도 없다.

하지만 머리와 입으로 하는 정치는 결코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감동은 머리보다는 가슴, 말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호소력이 더하다. 개인적으로도 방송에 자주 노출되는 이준석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을 숨기지 못하겠다. 편견이겠지만 어느 땐 너무 약고 얄밉다는 생각마저 든다.

본인의 말대로 인터넷과 전기차로 무장한 정치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쉰세대인 주호영의 ‘어른’과 나경원의 ‘화물차’가 떠안고 있는 고충과 짐도 함께 이해해야 균형잡힌 리더가 될 것이다. 인간미와 정(情), 의지와 신념은 삶으로부터의 깨우침이지 결코 책에서 배운 방정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정치적 안정감과 역량은 정작 이런데서 나온다.

이준석은 아직 이런 면에서 충분하게 어필하지 못한다. 자신을 향한 비판에 기다렸다는 듯이 단발성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역시 막말과 저주로 점철된 기성정치의 고루함을 답습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게 한다. 변화와 혁신은 자진(自盡)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검찰 등 국가개혁에 헤매고 있는 180석의 더불어민주당이 욕을 먹는 이유는 떳떳치 못한 그들이 자기희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정치 입문 10년인 이준석이 내친김에 대한민국의 썩은 정치를 마구 흔들었으면 한다. 10년의 연륜과 경륜을 풋내기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 나이 37세이면 어른도 한참이나 어른이다. 그러니 이준석 발(發) 정치혁명을 한 번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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