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야 움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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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야 움직이나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06.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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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중사·청주 두 여중생, 성폭력 피해 신고했으나 보호 못받아
정부·관계기관 사후에 움직여…충북도교육청 뒤늦게 대책 발표

 

5월 22일 청주 성안길에서 시민들이 연 두 여중생의 추모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야 정부와 관계기관이 관심을 갖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사람이 죽어야 움직인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오간다. 최근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부사관과 청주시의 두 여중생 사건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그동안 군대내 성폭력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러나 시끌시끌하다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 5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랑하는 제 딸 공군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와 충격을 주었다. 이 달 1일부터 청원이 시작된 이 건은 8일 저녁6시 현재 35만 9049명이 참여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충남 서산의 모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던 A 중사는 지난 3월 선임인 B 중사로부터 저녁 자리에 불려 나간 뒤 귀가하는 차량 뒷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A 중사는 이튿날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피해자만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게 유족측의 주장이다. A 중사는 결국 지난달 22일 죽음을 택했다.

청원인은 “공군부대내 지속적인 괴롭힘과 성폭력사건이 무마, 은폐, 합의종용, 묵살, 피해자 보호 미조치를 당했다. 책임자 모두 조사해서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에서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신고 이후 부대내 처리, 상급자와 동료들의 2차 가해, 피해호소 묵살 등에 대해 엄중한 수사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7일에는 병영문화를 개선할 기구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피해자 죽자 가해자 구속
 

지난 5월 12일 청주시 오창읍에서는 두 여중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전국민이 10대 여중생의 죽음을 가슴아파 했으나 사건 발생 후 채 1개월도 안돼 벌써 잊은 듯하다. 이들은 각각 성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가해자는 숨진 여학생 중 한 명의 계부였다. 그는 의붓딸 B양을 학대하고 친구 C양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C양 부모가 B양의 계부를 경찰에 성폭력범죄특례법 위반혐의로 고소해 사건 정황이 알려지게 됐다. B양의 학대 사실은 경찰이 계부를 조사하면서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학생들도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후 공군부대 A 중사처럼 고립됐다. 학교 상담센터와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았으나 학교나 사회는 든든한 보호막이 돼주지 못했다. 경찰이 세 번씩이나 가해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B양은 가해자인 계부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했고 C양 또한 가해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B양의 친모는 다른 도시에서 혼자 살았다고 한다. 결국 두 피해자는 경찰 고소 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등지는 극단 선택을 한다. 충북교육연대와 충북여성연대 등이 가해자 즉각 구속을 촉구하고 국민들이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자 검찰은 가해자를 구속시켰다. 아까운 생명들이 스러진 후 내려진 조치다.

충북의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즉각적인 분리조치가 단행되지 않은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충북교육연대와 충북여성연대는 “성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조기 분리조치가 기본이다. 현 제도상으로 가해자의 구속외에는 분리가 불가능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먼저 분리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2일 청주 성안길에서는 시민들이 ‘오창 성폭력·아동학대 피해 학생 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결과적으로 이 점이 학생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며 통탄했다. 아울러 교육기관의 보신주의와 젠더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보수적인 분위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는 “학교와 교육기관은 사건이 발생해도 쉬쉬하기 바쁘다. 성폭력 아동학대 피해 학생이 생기면 피해자들을 성폭력상담소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피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이번에는 이런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여성계도 사고가 난 뒤 알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임동현·이숙애 충북도의원의 쓴소리
 

두 여중생의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충북도교육청은 지난달 27일 대책을 발표했다. 도교육청은 “정신건강 위기학생의 심층상담을 위해 학교(Wee클래스) 교육지원청(Wee센터) 도교육청(마음건강증진센터), 전문기관(병·의원, 상담센터 등)을 연계하는 원스톱시스템을 구축하겠다. 또 관계기관과 협의체를 조직해 소통하겠다. 정신건강 전문의가 학교에 가서 위기학생을 상담하고 고위험군을 찾아내 외부 전문기관에 연계하거나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이렇게 했다면 두 학생은 살았을 것이다. 이들이 학교 상담센터인 ‘Wee클래스’에서 성폭력과 아동학대 상담을 받았어도 도교육청은 전혀 몰랐다. 이들이야말로 위기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도교육청의 계획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안다.

지난 8일 충북도의회 임동현 의원(민·청주10)은 5분 발언을 통해 “두 여중생 사건뿐 아니라 2월과 4월에 발생한 학생 자살사건을 보면 ‘Wee클래스’ ‘Wee센터’와 도교육청의 마음건강증진센터는 상담 및 심리치료기관 역할을 못했다. 특히 마음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정신과 전문의 2명과 전문상담사, 임상심리사 등 많은 전문인력이 있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상담 및 심리치료 허브기관이다. 제 기능을 못하면 있으나마나한 기관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숙애 의원(민·청주1)은 “두 여중생과 공군 여중사는 성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시스템에 경고를 보냈다”고 전제하고 “성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시 가해자·피해자 즉각 분리, 교육청에 폭력사안 처리 전담부서 설치하고 전문가 배치, 자치단체-경찰-검찰-교육청 협력체계 수립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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