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화가 이종구 “벽화에 나의 꿈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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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화가 이종구 “벽화에 나의 꿈 그렸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1.06.24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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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사직동 일대 비롯해 전국 곳곳에 벽화 그린 이종구 화가
생계를 위해 간판 가게 운영했지만 그림은 운명처럼 다가와
김명숙 화가가 벽화에 경도되어 연락…“자료화집 남기자”제안

청주시내 사직동의 오래된 골목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벽화를 만나게 된다. 사직 1동 동사무소, 다리 밑, 한벌초 계단, 낡은 담벼락 등등에 문인화, 산수화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이종구 화가(75). 붓과 페인트만 있으면 더운 여름 추운 겨울 새벽에 나와 그림을 그렸다. 또 때때로 청소년 단체 RCY 학생들과 자원봉사 활동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럴 경우 그가 직접 도안을 그려놓고 학생들과 작품을 그렸다.

 

이종구 화가는 벽화에 자신의 그림 인생을 남겼다. 사직동 다리 밑 처음 그린 벽화 앞에서 이종구 화가.
이종구 화가는 벽화에 자신의 그림 인생을 남겼다. 사직동 다리 밑 처음 그린 벽화 앞에서 이종구 화가.

 

이렇게 벽화를 그린 것은 15년 남짓이다. “한 번도 그림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며 그렸다. 벽화를 자세히 보면 늘 낚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내가 꿈꾸는 모습이다.”

벽화그리기는 처음엔 재료비만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청주를 시작으로 보은, 옥천, 속리산, 부강, 전라도 강진, 제주도, 울산 등 전국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거리의 화가인 그는 붓을 잡고 마음껏 그릴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고 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이종구 화가는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서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에게 가난과 화가의 꿈은 늘 떼어지지 않는 운명 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아야 했을 때 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낡은 서점에 가서 책을 구해다 읽었다. 종이만 구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도축장 벽을 보고 소년은 숯으로 그림을 멋들어지게 그렸다. 면사무소 직원이 혼내러 왔다가, 그 그림을 보고 오히려 칭찬을 해줬다.

결국 지게를 부러뜨리고 서울로 도망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가 17살 때 간판집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다.

그가 간판집에서 하는 일은 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지금과 같은 발전된 인쇄기가 없던 시절이라 사람이 직접 글씨를 쓰면 본을 떠서 철판을 새기고 인쇄를 했다. 그렇게 학교 시험지도 만들고 사회 교과서에 글씨와 그림도 직접 그가 그렸다. 그러다가 23살 때에 당시 항만건설과에 차트사로 합격했다. 당시 27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1년 정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 후 사업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과 함께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청주로 오게 된다.

1980년대 그는 현대광고간판집을 연다. 27년 정도 간판집 사장님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무심천 변에 플래카드를 하루에도 몇 장 씩 써내려가면 필력에 반한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옛 청주KBS방송국 청사 건물 벽에 1988년을 기념해 전국에서 제일 큰 호돌이를 직접 그렸다. 상당산성의 자연보호게시판부터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각종 개발 사업의 일정 등등 그의 글씨가 귀한 대접을 받던 시기였다.

 

청주시 사직1동사무소 벽에 그린 이종구 화가의 작품. 낚시하는 사람이 바로 본인 자신이다.
청주시 사직1동사무소 벽에 그린 이종구 화가의 작품. 낚시하는 사람이 바로 본인 자신이다.
세종 홍판서댁 앞 건물에 그려진 벽화.
세종 홍판서댁 앞 건물에 그려진 벽화.

 

일부 벽화 세월지나 훼손돼

 

하지만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손 글씨는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현대광고2007년께 문을 닫았다. 그 즈음 사직동 박재권 전 동장이 벽화를 그려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사직동 다리 밑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데 그림을 그리면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권유였다. 그는 흔쾌히 벽화작업을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화는 훼손되기도 하고, 관리를 제대로 못해 빛이 바래지기도 했다. 일을 그만둔 뒤 그는 2008년 동사무소에서 하는 조재영 선생의 문인화 수업을 4년 정도 배웠다. 사실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하기 전에도 공모전에서 입상을 했다. 이 화가는 현재 회원이 1000여명이 있는 전국단위 미술단체인 한국예술문화협회장으로 있다. 또 사직 1동 동사무소에서 문인화 수업을 4년 째 하고 있다.

차분히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소통해오던 그에게 최근 특별한 일이 생겼다. 김명숙 화가가 우연히 부강의 홍판서댁을 방문했다가 그 앞집에 그려진 담벼락 벽화를 보고 수소문을 해서 이종구 화가를 찾은 것이다. 김명숙 화가는 시지프스 연작, 새벽 숲 연작, 미노타우로스 연작 그리고 최근 카타바시스(하강)에 관한 연작을 묵묵히 해온 작가다.

그는 이 화가의 그림과 삶의 진정성에 경도됐다. 그는 명궁수가 한 번에 과녁을 맞춘 솜씨이며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기량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의 의미에서 예술은 기량을 의미한다. 기량을 연마하기에도 인생을 짧다는 말이다. 벽화의 필력을 보면 얼마나 뛰어난 예술가인지 알 수 있다. 이번기회에 작업이 재조명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진짜 예술가의 삶을 사신 분이다. 벽화가 시간이 지나 사라지기전에 자료화집 발간 등 작품에 대한 기록을 제대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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