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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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공정한가?
  • 충청리뷰
  • 승인 2021.06.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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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충북도에서 위원회를 구성할 때 지켜야 할 지침이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3개 이상 위원회에 위촉될 수 없다. 위촉직 위원 중에 특정 성별이 10분의 6을 초과할 수 없다. 충북 내 특정 권역 출신 위원이 10분의 5를 넘을 수 없고, 비청주권이 10분의 5 이상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느 분야든 관계자 명단을 펴놓고 이 비율을 맞추다 보면 진땀이 난다. 전문가 순으로 뽑으면 됐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덕분에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대표성의 독점을 막아서 내용의 다양성을 담보하려는 위원 비율 안배, 즉 할당제는 공정을 저해할까, 확대할까?

근대 민주주의는 신분 세습사회에 저항하면서 등장했고,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능력조차 배경에 따라 개발되거나 부가 대물림되는 새로운 세습사회의 등장이 지구적 현상이다.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능력주의(meritocracy)를 낙관하는 태도는 ‘현대판 귀족정치’로 비판받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작년 9월호에 따르면 정계와 기업 등 사회 상층부에 자리 잡은 프랑스 엘리트들도 자녀의 교육, 복지, 문화, 건강을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은밀히 특권을 계승해왔다. 그 결과 프랑스혁명의 나라에서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은 그보다 심각한 교육적 불평등을 초래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18세기 이래 실증적 데이터를 분석해서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결코 따라가지 못함을 입증하고, 누진세와 글로벌 부유세를 불평등 해소 대안으로 제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피케티는 이 시대는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조세 등 국가의 대대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능력주의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세습자본주의로 인해 능력주의가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불평등 상태를 바로 잡고자 한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마이클 샌델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샌델은 디스토피아 소설 『능력주의: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을 쓴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을 인용해서 능력주의 만능 사회의 위험을 경고한다. 영은 만일 승자가 자신의 성취를 “나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오만하게 굴고, 패자는 “다 내 못난 탓”이라고 자책하는 사회라면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샌델은 민주당의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즘의 반감이 트럼프 당선에 어떻게 기여했나 분석하여 미국 사회에 스민 능력주의의 음영을 조망한다.

요즘 우리도 공정이 화두다. 강준만은 한겨레 칼럼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성장의 동력이 바로 능력주의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제 공정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보고, 능력주의의 파탄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박태주는 시사인 칼럼에서 공정이 능력주의에만 머무르면 또 다른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고 썼다. ‘능력주의 너머에 존재하는 공정의 가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대, 곧 적극적 차별 시정조치’라는 것이다. 이때 공정은 능력주의라는 얼굴과 적극적 차별이라는 얼굴을 동전의 양면처럼 갖는 야누스다.

김호기는 한국일보에서 능력주의를 둘러싼 토론에서 주목할 것은 ‘공정’에 대한 시각 차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공정을 기회 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다른 이는 결과의 평등까지를 포함한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공정의 다른 이름이 ‘정의’라면,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했던 불평등을 사회 구성원 다수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이다. 쉽게 결론이 나올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준석도 여기 가세했으니 공정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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