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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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골프
  • 한덕현
  • 승인 2021.07.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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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들어 정치판에 골프얘기가 왜 안 나오나 했더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 윤석열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 시절인 2011년 전후로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으로부터 수차례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다. 당사자는 "악의적 오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만 더 키웠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사실 여부를 떠나 개인적인 바람은 문제의 보도를 놓고 벌이는 공방이 오래 가지 않았으면 한다. 대선 주자들이 가뜩이나 무슨 정책보다는 서로 인신공격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이 또한 민생과 결코 무관한 형이하적인 싸움으로 변질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양쪽의 공방을 대충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데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급해진 윤석열이 오래전 여러 지인과 통상적 식사 또는 골프를 한 경우는 몇 차례 있으나 비용을 각자 내거나 번갈아 냈기 때문에 접대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것을 놓고도 시중에선 말들이 많다. 이 얘기에 역시 골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묘한 웃음을 짓는다. 불리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늘 그렇듯 정 억울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될 일이다.
사실 김영란법으로 통칭되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공직자들에 대한 기업체나 업자들의 골프접대는 대부분 사라졌다. 아주 사라진 게 아니라 대부분 사라졌다고 표현한 것은 그런 사례들이 아직도 음성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해 강력한 단속이나 처벌을 하면 그 범죄가 법망을 피해 진화하듯 골프접대도 마찬가지다. 접대를 받는 이에게 골프 비용을 현금으로 미리 전달한다거나 혹은 각자가 골프비용을 부담케 하되 대신 내기 명목으로 역시 현금을 두둑히 안기는 수법은 이젠 고전이 됐다.
과거 김영삼 정권에선 공직자 골프금지령이 내리자 공직자들이 가명으로 골프장에 출입하는 일들이 성행했다. 그러다보니 가명을 처음 사용하는 공직자중엔 정작 골프클럽이 든 백에는 자기 본명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혼란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때 나온 얘기가 골프장 출입도 실명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선 수석비서관 환담 자리에서의 “(공직자들이) 바쁘셔서 그럴(골프칠) 시간이 있겠어요”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가 사실상 골프금지령으로 해석되어 한 동안 관가를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골프접대를 법률로써 제재하고 또 대통령이 골프 금지령을 내려도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공직자를 악착같이 필드로 끌어내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같이 라운드를 즐기고 끝난 후 식사하는 시간까지 적어도 여섯, 일곱시간을 같이해야 하는 골프만큼 서로의 관계를 단박에 이어주는 ‘특단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로비의 창구로서, 그리고 특정 사업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데엔 골프만한 운동이 없는 것이다.

만약 윤석열이 삼부토건으로부터 골프접대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특별한 일탈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시절엔 흔한 일이기도 하고 비록 악폐일망정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관행이었다. 그래서 부정청탁금지법이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마치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윤석열의 경우 본인의 이미지를 불의에 맞서는 정의와 공정의 사도쯤으로 각인시킨 상황이어서 이번 논란은 향후 자신의 대선전에 치명타를 안길 수도 있다.
특히 당시 삼부토건 임원들은 '헌인마을 개발사업' 과정에서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수사를 받는 상황이었고 윤 전 총장이 속한 대검 중수부는 전국 검찰청 특수부 수사를 지휘하던 컨트롤 타워였다는 점을 문제의 언론보도는 지적하고 있다. 장모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듯 자칫하다간 그가 내세우는 정의와 공정이 결국 ‘선택적’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골프 논란을 접하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의 골프 실력이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그가 골프를 즐겼다는 내용은 있지만 핸디로 규정되는 골프실력은 나와 있지 않다. 하여, 당사자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추측하건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체형부터가 골프 고수와는 괴리감이 있고 그가 검사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저돌형의 밀어붙이는 성격 또한 냉정함과 침착함이 가장 큰 무기인 고수의 내공과는 엇박자가 난다.
외형으로만 본다면 윤석열 보다는 차라리 최재형의 체형과 체질이 더 골프에 적합하다. 그가 실제로 골프에 입문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판에 들어오기까지 그 신중함이나, 윤석열의 행보와 지지도 그리고 여론의 추이를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어 국민의힘에 선제 입당하는 전략적 판단을 보더라도 골프고수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그의 상징적 분위기가 되어버린 낮은 톤의 목소리와 무표정한 얼굴, 즉 포커페이스 또한 골프 고수들이 필히 갖춰야 하는 제1의 요건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윤석열이 이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야권의 대권주자들을 넘어 본선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 자신을 측면 지원했던 보수언론마저 최근엔 여러 구설수를 의식해 “위기의 윤석열 밑천 드러나다” 등의 제목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검찰을 떠나 정치인이 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무장한 채 칼자루를 휘두르던 검사 시절의 ‘죽어도 고(GO)’를 고집하며 국민의힘 입당에도 부정적이다. 역대 대선에서 제3지대는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아직도 고공행진을 하는 지지도를 믿고 있겠지만 이는 마치 골프에서 멀리 해저드(hazard, 장애물)를 앞에 놓고도 복불복 심정으로 그린을 향해 샷을 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만약 최재형 이었다면 일단 안전한 거리까지만 공을 보낸 다음 그린을 노리는 이른바 ‘짤라서 샷’을 구사했을 것이다. 통상 실제 골프에선 윤석열의 선택은 십중팔구 후회를 수반한다. 복불복의 유혹은 언제든지 복(福)보다는 불복(不福)의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마이 웨이(my way)를 외치며 오직 국민들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불안정한 심리를 안긴다는 도리도리 버릇도 안 고치고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정글에서의 생존이고 그 정글은 정치인들의 무대이지 결코 국민들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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