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국가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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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국가의 품격
  • 충청리뷰
  • 승인 2021.08.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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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와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2020 도쿄올림픽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전과의 차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우선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졌다. 광장에 태극기를 두르고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거나 치맥을 앞에 두고 함성을 지르던 응원방식은 이제는 옛 추억이다. 이번에는 경기장에도 관중이 없었지만 대신 주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과 SNS를 통해 경기를 보면서 댓글로 감상평을 달고 세계 각국의 분위기도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등 디지털 네이티브방식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올림픽 선수단은 대부분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친 단어로 대체로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자)이다. 세대론에 민감한 언론은 MZ세대 선수들이 경기 소감을 말하는 방식도 세상 쿨하다고 입 모아 논평했다. 예를 들어 국위선양을 최고 목표로 금메달에 올인하던 시절에는 은메달을 따도 시상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선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시합을 앞두고 즐기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하겠다거나 메달보다 최선을 다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시면 좋겠다는 선수가 드물지 않았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정신자세가 틀렸다고 야단 맞았어라고 부연 설명하려니 내가 꼰대인 것이 실감 났다.

소감을 듣는 사람들 반응도 선선했다. 사실 대표선수가 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왔는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그런 잔소리는 굳이 필요 없다. 그저 격려와 축복으로 족하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런 쿨함이 피차 가능해진 것은 우리가 그새 물질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선진국이 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이번 탁구 혼합복식에서 일본에 지고 은메달을 받은 중국 선수는 제가 팀을 망쳤다. 모두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네티즌은 국가에 먹칠을 했다고 선수를 공격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을 건너왔다.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수준도 달라졌다. 개막식 방송의 우크라이나 소개 화면에 비극적인 체르노빌 원전사고 장면을 떡하니 올린 방송사는 곧바로 국내외로부터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결국 사과했다. 귀화한 마라톤 선수 오주환이 부상으로 기권했을 때 해설자가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자 시청자 가운데 오히려 경기성적보다 건강을 먼저 걱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올라왔다는 기사를 보고 어쩐지 뿌듯했다.

양궁 3관왕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는 왜 머리가 짧으냐, 페미처럼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메달 반납까지 요구하는 댓글 공격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페미 논란’, ‘젠더 갈등이라고 양비론적인 제목을 뽑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산 선수가 뭔가 분란의 빌미를 준 것처럼 논평했는데 BBC 등 외신은 이런 게 바로 온라인 폭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와중에 동요없이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서 금메달을 추가한 안산 선수를 보며 신세대의 등장을 실감했다. 안 선수의 어머니가 산이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것이다. 관심과 사랑만 부탁하고 집착은 말아달라고 답변했을 때 심쿵했다. 그날 저녁 나도 안산이 좋아한다는 애호박찌개를 끓여서 맛나게 먹었다.

4강으로 마무리한 여자배구 경기를 챙겨보면서 필자는 모든 고단함이 녹는 듯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리 인기 종목이 아니었던 여자배구가 관심의 중심이 된 것은 선수들 덕분이다. 경기에 온전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나처럼 스포츠 문외한의 마음도 끌어당겼다.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기도 했다. 실수를 해도 괜찮아웃으며 말해주고, 판정에 세차게 항의하다가도 경기 후에는 예의 바르게 인사도 건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작전타임 때 김연경이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후회하지 말고라고 외친 목소리는 오랫동안 우리 귓전을 떠나지 않고 맴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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