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희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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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의 산
  • 한덕현
  • 승인 2021.08.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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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번 휴가의 행선지는 일찌감치 머리에 그려졌다. ()이다. 가족들에게는 잠수한다 찾지마라고 문자를 남긴 후 일단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다니다가 이정표를 보거나 혹은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산이라도 있게 되면 입구를 찾아 계획없이 올랐다. 걷고 또 걷기의 연속인 참 무미건조한 시간이었지만 사서 하는 고생이 주는 기쁨은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틈만 나면 산행을 즐기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다. 간혹 지인들이 던지는 왜 그 고생을 하느냐는 질문에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곤혹스럽다. 전문 산악인이라면 모를까 고작 주말 산행족 주제에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만 산에 드는 게 즐겁고 무엇보다도 그저 마냥 걸으면서, 때로는 자연의 냄새가 가져다주는 편안한 호흡을, 또 때로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과정들이 좋을 뿐이다.

산악인 김홍빈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이를 추모하는 국가적인 분위기가 많은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그에 따라다니는 수식어, 장애인으로 세계 최초 7대륙 최고봉 등정과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이라는 초유의 기록보다는 정작 사람들을 울린 건 따로 있다. 조난당한 후 절벽 끝에 매달려 무전으로 구조를 요청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 “(지금) 엄청 춥다와 그가 평소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당부했다는 사고가 나면 (자신을 구하려) 2차 사고나 폐를 끼치지 않고 그냥 산에 묻히고 싶다고 한 말이다. 이를 곰곰 되새길 때마다 언뜻 떠오르는 건 인간의 삶’ ‘우리의 삶‘ ‘나의 삶이라는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부질없게도 그 의미가 무엇일까?를 가늠하려 하지만 끝내 제풀에 지치고들 만다.

지역 산악인중엔 김홍빈과 인연있는 이들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 히말라야 14좌에 도전하고 있는 조철희(52) 등반대장이 주목된다. 20197714좌 중 11위인 가셔브럼 1(8068m) 등정을 김홍빈과 동반으로 이뤄낸 것이다. 당시 상황은 KBS에서 <열 손가락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함으로써 과거 등반 사고로 열 손가락을 잃은 장애인 김홍빈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실 조철희 대장은 세계 산악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스펙을 쌓고 있지만 최근 방송등 언론에 소개되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해외원정이라도 나서게 되면 이른바 광내고 빛내는 이들과는 달리 조용하게 거사(?)를 치르기 때문이다. 그의 14좌 도전을 이끄는 변상규 원정대장도 한 언론인터뷰에서 등반에 성공하거나 실패한다고 해서 흥분하거나 가라앉거나 하는 것은 없다. 한 곳 등반이 끝나면 내일 갈 곳을 바로 고민하고 공부하고 분석하고 준비한다고 말해 원정팀의 분위기를 전했다.

히말라야 14좌 등반중 고 김홍빈과 함께한 조철희 대장(사진 오른쪽)
히말라야 14좌 등반중 고 김홍빈과 함께한 조철희 대장(사진 오른쪽)

하지만 조철희 대장의 당초 계획은 세계가 주목하고도 남을 만하다. 전문 산악인들에겐 은퇴의 시점으로 여겨지는 50세에 14좌 도전에 나서면서 세계 최단기간 완등을 목표로 한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20194월부터 202212월까지 3년여만에 남들은 평생 해도 될까말까한 14좌를 모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해 낼 예정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2019년 안나푸르나(8091m, 423)를 시작으로 가셔브럼 1(8068m, 77) 마나슬로(8168m, 925)를 등정해 원정 첫 해를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해를 준비하던 중 코로나가 덮친 것이다.

지난해 1년을 하릴없이 흘려보내고 올 초 어렵게 네팔로 출국, 다울라기리(8167m)에 도전했지만 기상악화로 실패한 후 다시 로체(8516m, 523) 등정에 나서 성공한다. 그는 다가오는 가을 시즌에 다울라기리에 재도전한다는 목표다. 코로나로 주춤하면서 한 때 동료였던 네팔출신 산악인이 불과 7개월만에 14좌 완등이라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기록을 세우는 바람에 조 대장의 세계 최단기간 완등 목표는 수정이 불가피해졌지만 국내 최단기간은 여전히 가능하다.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2000104, 당시 충북밀레니엄 원정단의 일원으로 등정한 바 있기 때문에 그는 14좌중 5개 봉을 이미 성공한 셈이다.

지난 710일 조철희 대장이 회원으로 있는 동호인 모임 시원산악회’(회장 박지헌)가 로체 등정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원산악회는 산을 인연으로 하는 자발적 모임으로 국내 산행은 물론 해외 트레킹을 함께 하며 서로 각별한 우애를 나누고 있다. 이날 축하연에서 조철희 대장이 어렵게 꺼낸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솔직히 제가 왜 이런 도전에 나서는지 누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말해 줄게 없어요. 스스로에게도 극한 상황에선 늘 이런 질문을 던지지만 답이 없어요. 분명한 것은 가만히 있으면 자책감, 아니 죄책감 같은 걸 느낀다는 거죠. 이건 제 자신의 미완성에 대한 질책과 채찍이라 여기려 합니다. 저는 움직이고 또 산에 들어야 사는 것같거든요.”

이런 그가 요즘은 새벽마다 청주 곳곳을 달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가을 원정에 대비해 몸을 만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쉼없이 자연에 있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한다. 운동이 끝나면 SNS로 그날의 소회를 지인들에게 전하고 있는데 새벽 댓바람에 배달되는 내용들이 얼마나 현학적인지 보는 이들은 철희철학으로 불러주기까지 한다. 몇 개를 추리면 이렇다.

포기하는 선수 당사자는 달리는 도중 수도없이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된다. 육체가 느끼는 체력의 한계와 머리가 느끼는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뇌가 이기면 포기하는 것이고 육체가 이기면 달리다가 쓰러지는 것이다. 결국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쓰러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 참으로 어렵고도 무서운 말이다.” “92년 여름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때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 것은 식량도 아니고 카메라나 텐트같은 장비도 아닌 지도였다. 25천분의 1 지도 40여장을 비에 젖지 않게 잘 포장해서 애지중지 다뤘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이나 GPS 하나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 시대엔 지도와 나침반을 사용할 줄 모르면 대간 종주를 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지도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서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 나 자신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삶이란 판에서 위태롭지 않다.” “진실된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만남에는 계산이 깔리고 소통에는 거래가 남는다, 서기 800년대 임제선사가 남긴 말,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 되리라(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도 오늘날에 와서는 반대로 서있는 모든 곳이 참되어야 비로소 가는 곳마다 떳떳할 수 있다(立處皆眞 隨處作主)로 재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산악인 조철희 대장의 14좌 완등을 도민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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