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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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책임이다
  • 충청리뷰
  • 승인 2021.08.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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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고 싶지 않은 사건이 있다. 이혼 사건이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가급적 맡지 않으려고 한다. 이혼 사건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친권자와 양육권자를 누구로 정할지, 비양육자가 부담해야 할 양육비는 얼마로 정할지가 반드시 결정돼야 한다. 그런데 가끔이지만 어떤 의뢰인은 10살 전후의 미성년 자녀의 유도진술을 녹음하여 나에게 들려주면서 배우자의 유책사유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서라면 나 또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싶으나 '만약 그 미성년 자녀가 자신의 진술로 인해 부모가 이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에 그 요구는 사임을 각오하고 거절한다.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법원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몇 년 전부터 이혼 사건의 경우 미성년 자녀의 진술증거는 되도록 제출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양육비에서도 비슷한 딜레마가 있다. 판결문에 기재된 지급해야 할 양육비 금액이 적을수록 능력있는 변호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돈은 배우자가 아닌 의뢰인의 핏줄을 양육하는데 필요한 생활비인데 의뢰인이 경제적인 사정을 호소하여 그 금액을 요구한 대로 줄여준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돌아볼 때가 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미성년 자녀가 없거나 성년 자녀만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혼 사건은 가급적 안 맡으려고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부모 자식간의 천륜은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싶은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혼 사건에서 친권·양육권을 서로 포기하겠다는 부부를 심심찮게 보게 되면서, 그리고 판결 또는 조정으로 양육비 지급의무를 부여받은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는 비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착각이었나 싶다.

일례로 여성가족부의 '2018 한부모 실태조사'를 보면 "양육비를 한 번도 지급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73.1%에 달했다. 급기야 20187월 민간단체인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채무자의 얼굴, 이름, 주소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하겠다고 사전에 통지한 후 실제로 공개했고 그러한 활동으로 약 890건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됐는데, 이 가운데 신상공개를 '사전 통보'하자 양육비를 지급받은 게 약 690여 건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환경과 복지를 제공해주지 못했던 미안함보다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이 더 두렵고 다급했던 것일까.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가사소송법에 따라 가정법원은 직접지급명령이나 이행명령을 할 수 있고, 위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30일의 범위에서 감치를 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자에게 과태료의 제재를 가한다 해도 이를 낼 가능성은 매우 낮고, 감치는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어서 양육비 채무자가 재판에 출석해야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를 알고 허위 주소로 송달받는 등 거주지를 숨기고 잠적할 경우에는 감치명령을 내리기 어렵고 실제로 감치가 인용된 사례도 매우 드물다.

이러한 문제로 2015년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특히 지난 달 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법에서는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에 대해 감치명령을 받았음에도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출국금지 및 명단공개와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양육비 이행의 실효성을 제고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필수요건인 감치명령을 받기가 매우 어려운데다 출국금지의 추가요건인 '양육비 채무가 5,000만 원 이상'이 되려면 양육비가 월 50~100만 원에서 인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약 4~8년 동안 연속하여 미지급하더라도 출국금지는 어려울 수 있다.

양육비는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지원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지원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녀가 모를 수 있지만 나중에는 다 알 것이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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