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금이 시작이에요. 우리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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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금이 시작이에요. 우리의 사랑은
  • 한덕현
  • 승인 2021.08.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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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두 살의 청년이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한 5명을 총기난사로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언론은 그가 평소 인생에 패배했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비자발적 독신인 여성 혐오자라고 보도했다. 지난 12일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국 월스트리트저널(WSJ)그가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데 대해 화가 나 있었으며, 스스로를 '종결자'(the Terminator)라고 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에서 언론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인셀(incel)이라는 단어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성과의 애정관계를 맺는데 실패한 이들을 의미한다. 2014년 미국에서 역시 총격으로 6명을 살해한 엘리엇 로저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구애를 거부한 여성에게 분노를 표현하며 온라인상에 처음 사용한 신조어다. 당시 그는 범행 전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담긴 '살인 예고'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여자들은 다른 남자들에게는 애정과 사랑을 주면서 내게는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나는 22살인데 아직도 숫총각이고 여자와 키스해 본 적도 없다. 내일은 응징의 날"이라고 삐뚤어진 여성관을 보였다.

불행하게도 이 사건은 모방범죄로 이어져 4년 후인 2018년 캐나다 토론토에선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10명을 살해한 청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엘리엇 로저를 최고의 신사라고 지칭하면서 인셀의 반란이 시작됐다는 글을 올림으로써 글로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인셀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 때쯤이다. 인셀의 공통점은 자신의 사회관계 실패를 이성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들을 굳이 열거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빚어지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를 걱정해서다. 젊은층의 만혼이나 비혼 추세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엔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진다는 느낌이다. 비대면의 장기화에 따라 대인관계가 제약받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관계를 형성시켜주는 단체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이성과의 사귐에 손사래부터 치는 경우를 흔하게 접하게 된다. 친인척들 뿐만 아니라 20, 30대 자녀를 둔 주변 사람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성 포비아라고 할 정도로 자녀가 아예 이성에 대한 생각을 단절하고 지낸다는 사례들도 종종 듣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터넷과 SNS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물론 여기엔 이성과의 사귐을 경제적 여건과 연관시켜 지레 포기하는 일부 젊은층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도 한몫 한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연애나 결혼, 이 모든 일들이 결국엔 돈과 직결된다고 인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성과 사귀려면 적정 수준의 수입은 필수 조건이고 또 결혼하려면 집과 승용차 그리고 향후 원만한 육아를 위한 기본재산은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 대세인지라 적어도 결혼 문제와 관련해선 서로 사랑만 하면 그만이다는 부모세대의 라떼는...’은 젊은이들에겐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구애했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해서 극단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또 이런 행동에 공감을 표하는 젊은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이성과의 사랑, 과연 이 것이 무엇인가부터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어느날 하늘에서 툭 떨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편의대로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 번 관심을 갖거나 추파를 던졌다고 해서 무슨 성과가 나타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인연을 맺는 것도 어렵지만 그 인연을 지켜가기란 무한한 노력과 자기희생, 그리고 격통의 번민과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설과 영화 속의 전설적인 사랑, 시공을 넘어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례들을 봐도 그렇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원수지간인 가문에서 태어난 것이 원죄가 되어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처절한 사랑을 일구어 내지만 끝내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요소가 짙다는 소설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는 사촌간의 사랑이 사회적 통념에 얼마나 반하는지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도 지상에서의 사랑을 단념하고 천국에서의 영혼합일을 꿈꿀 정도로 치열하게 서로를 위하지만 결국 죽음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뿐인가. 러브스토리의 올리버와 제니,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제니의 백혈병 말기라는 운명의 장난이다. 그들이 하얀 눈밭을 천진난만하게 구르며 만들어내는 러브신은 오히려 현실에서의 고통과 고뇌를 연상시킨다. 전쟁터에서도 사랑을 식히지 않은 <닥터 지바고>의 유리와 라라 또한 세상에는 시련없는 사랑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주인공은 천신만고 끝에 사지에서 탈출하여 연인을 만나지만 그에게 다가가려 황급히 뛰어가다가 심장마비로 절명한다. 이러한 신파조의 시츄에이션이 남기려는 이미지는 사랑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시쳇말로 공짜가 아니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같은 범부들의 일상에서도 남녀간의 사귐과 사랑, 결혼이라는 것의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제 아무리 선남선녀가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서는 서로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초년시절엔 사랑으로 살고, 중년에는 신의로 살며, 장년 때는 의리로 살고, 노년에 들어서는 오기로 산다는 말이 그 것이다. 이처럼 부부관계에서도 서로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둘 사이는 어렵게 된다.

이성과의 사귐을 꼭 애정관계로만 해석하는 것도 문제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정신적인 성숙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선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성장에 있어 여자의 이성적 비교우위를 주장하며 남자에게 이성과 사귐의 효율성을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때 마다의 이성교제가 나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학창 시절엔 이성을 만나면서 책을 보게 됐고 커서는 인생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한창 순수한 사랑에 취해야할 젊은이들이 여성을 혐오하며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또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고립과 단절을 부추기는 코로나의 폐해가 이런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걱정은 더 커진다. 더 늦기전에 국가적인 대책이라도 고민해야 할 판이다.

하여, 소설 <좁은 문>의 명대사를 요즘 젊은이, 특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청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안녕, 지금이 시작이에요. 무엇보다도 좋은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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