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에 줄을 대려면, 우선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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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 줄을 대려면, 우선 조심해라
  • 한덕현
  • 승인 2021.09.15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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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말년이라는 것이 없을 것같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코로나 비상시국에서 정부가 마지막까지 사명과 책임감을 다 하겠으니 정치권도 도와달라는 취지였다고 하지만 이의 뉘앙스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5일 뒤 문 대통령은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직원들에게 '여야 대선캠프 공약 발굴'을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매우 부적절하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이에 대해선 역시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임기말 해이해질 수 있는 공직 기강을 잡는다는 의미가 깔렸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공교롭게도 이와 똑같은 뉴스가 현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2017년 대선 직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탄핵으로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을 맡던 황교안이 공무원의 특정 캠프 줄대기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단임 대통령제를 택하는 나라에서 정권의 임기말 권력 누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아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고 또 어느 정당이 권력을 잡든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득권 세력의 교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꼭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차기 권력이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선이 임박할 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 때 기승을 부리는 게 온갖 연고를 들이대며 후보캠프에 줄을 대려는 현상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각각 경선 일정에 돌입한 가운데 여론 지지도에서 앞서가는 후보의 캠프에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기 위한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지방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공천 등 자신의 향후 정치적 운신 때문에도 캠프의 동향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기업계, 문화예술계, 교수등 전문 직업군, 심지어 시민사회단체와 언론계 인사들까지 이에 가세하는 바람에 이미 지역사회에선 많은 얘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후보들에 대한 여론추이가 연일 요동을 치면서 캠프에 줄을 대거나 대려는 사람들의 계산도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두 가지 변수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초반만 하더라도 어대낙’(어차피 대통령은 이낙연)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경선 뚜껑이 열리자 이재명의 독주가 이어지면서 일찌감치 이낙연 쪽에 줄을 섰던 이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불거지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개발 의혹 이른바 화천대유논란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캠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촉수는 또 한번 흔들릴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윤석열, 홍준표. /뉴시스
사진 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윤석열, 홍준표. /뉴시스

 

국민의힘 쪽의 분위기는 더 민감하다. 경쟁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줄곧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윤석열이 가족 구설에 이어 최근 검찰 고발사주 의혹에 휘말리면서 주춤하는 가운데 홍준표가 기세를 올리며 접전까지 벌이자 별 고민없이 윤석열 캠프에 눈독을 들이던 인사들이 요즘 매우 혼란스럽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지역 경제계의 모 단체장을 맡고 있는 인사는 초반 이낙연 대세를 믿고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조직의 구성원에까지 여론조성의 필요성을 주문했다가 최근 큰 상실감에 빠져 있고, 또 모 인사는 타지의 지인들에까지 윤석열에 올인할 것을 설파해 왔는데 최근 후보의 흔들리는 위상으로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SNS를 즐기는 인사들의 경우 특정 후보와의 인연을 드러내기 위해 과거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계정에 올리거나,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에 가입하여 댓글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악착같이 알리려 애쓴다.

캠프에 선을 대려는 움직임은 대략 두가지로 성격이 구분된다. 순수하게 후보의 정치철학과 뜻을 같이해 지지하는 것과 대선 후 자신의 입지나 자리를 노리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 등이다. 방송토론회 등에서 패널이 특정 후보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하다가 캠프에 발탁되어 결국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 한 자리를 얻는 것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다. 꼭 굵직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일단 권력이 바뀌면 정부 산하의 각종 공기관 감사나 이사등 소위 눈먼(?) 자리가 쓰나미처럼 바뀌는 것도 지방인사들의 캠프 줄대기를 유혹하고 있다. 캠프의 논공행상 성격으로 자리가 주어지는 이런 관행은 적폐청산을 국정의 최고 모토로 삼은 문재인 정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박근혜 탄핵으로 급격히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빗대어 “‘고리를 잡아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여론조사 1위로 독주하던 문 캠프엔 각계 유력 인사들이 앞 다퉈 몰려드는 바람에 문전성시라는 또 다른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공기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의 경쟁은 정부의 임기내내 계속되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게 인맥관계이고 그 것의 최고 뒷배경은 다름아닌 캠프와의 인연이다. 캠프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았거나 이게 아니라도 캠프운영과 후보의 당선에 나름 힘쓴 인사들이 발탁된다. 뒤에서 벌어지는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정권의 레임덕은 있어도 캠프의 레임덕은 없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결국 캠프가 차기 정부의 인력 풀(pool)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잘 나가는 후보의 캠프로 사람들이 몰리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또한 대통령이 바뀌면 그와 함께 각종 국정을 이끌어갈 사람들, 이른바 군단(軍團)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선진 외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바뀌면 적게는 수천, 수만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만 개의 공적 자리가 새로운 사람들로 대체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비생산적인 정치가 가뜩이나 국가운영을 옥죄는 상황에서 국민들까지 정치적인 것에 너무 매몰되다 보면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다. 좁게는 사회의 가치관을 우습게 만들고 넓게는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지금도 우려되는 건 후보 캠프에 줄을 대려는 인사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냉소로, 이들이 자칫 처신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큰 파문으로 번질 수도 있다.

어쨌든 대선의 초침은 쉼없이 돌아가고 있고 이번 대선을 계기로 기회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머리도 쉼없이 움직이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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