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과 5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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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과 50억
  • 충청리뷰
  • 승인 2021.10.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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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유리창을 청소하던 20대 청년이 15층 높이에서 추락해 참변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사흘 전, 안전보건공단은 안전 지도 점검을 진행하면서 보조로프(구명줄모서리보호대 구비등 안전장비를 갖추라고 시정 조치를 했다. 보조로프는 작업자가 매단 작업용 밧줄이 끊어질 경우,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비다.

김혜란 충북참여연대 생활자치국장
김혜란 충북참여연대 생활자치국장

하지만 해당 업체는 이를 무시하고 보조 밧줄 없이 작업용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작업을 강행한 것이다. 이 청년의 죽음은 어쩌다 일어난 불운한 사건의 하나였을까? 지난 88일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청소를 하던 23세 청년이 추락사했다. 그 청년의 생명을 맡긴 밧줄은 닳아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고덕역 지하철 환기구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던 27세 청년이, 그 다다음날에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작업 중이던 25세 청년이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노동부가 올해 공개한 산업재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연간 882명에 이른다고 한다. 드러난 통계만 보더라도 하루 평균 2.5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하는 셈인데, 그중에 추락사의 비중은 37.2%(328)이다. 추락사 사고원인의 70%가 안전로프의 풀림 또는 끊어짐으로 이는 보조로프를 설치만 했어도 사망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20대 청년의 죽음 또한 청소업체가 시정조치만 따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청소업체가 보조로프를 구비하라는 시행조치를 받았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은 보조로프를 달면 작업속도가 느려진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작업을 빨리 끝내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기업의 논리가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청년의 죽음은 예고된 인재였다.

이 청년이 죽은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이 통과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법으로 10만 명의 국민동의 청원이 성사되어 마침내 올해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디딤돌이 마련됐다.

하지만 논의과정에서 주요 조항들이 후퇴해 입법취지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아쉬움이 큰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디딤돌이 단단히 박힐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은 본래의 입법 취지를 그보다 더 후퇴시키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 시행령이 기업의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안전틀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안전·보건관계 법령 범위, 경영책임자에 대한 범위가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간 유예기간을 뒀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적용 대상 범위를 전체 사업장이 아닌 별도로 규정했다. 고용노동부 올해 상반기 산재 사고 사망자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사업장 규모별 산재 사망자는 전체 474명 중 5~49명인 사업장이 203(42.3%), 5인 미만 사업장이 181(38.1%)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통계의 산재 사망자 수는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받은 경우만 집계한다는 점에서 통계에 누락된 노동자도 상당할 것이다.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시민들이 안전할 권리는 누구나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최근 특수통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자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아버지를 둔 아들은 31세 대리급으로 퇴직하면서 산재를 이유로 50억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곽대리는 해명글을 통해 자신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았고, 업무 과중으로 산업재해를 입어 퇴사한 것뿐이라고 했다. 기가 막히다 못해 헛웃음만 나온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한 고용 상태로 일하며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오늘도 일터에 내몰리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현실. 지금도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는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 유리창의 청소하다 사망한 청년을 살릴 수 있었던 보조로프 구입비용 3만원,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퇴직금 50.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공정을 비웃고 기득권에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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