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노무현의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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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노무현의 닮은꼴
  • 한덕현
  • 승인 2021.10.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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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미학(美學), 져도 아름답게 지라고 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마치 관용어처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승부에서 지고도 깨끗하게 승복하지 않으면 추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낙연이 그렇다. 다른 후보들과 비교돼 품위여유’ ‘실력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원래 이미지를 경선 내내 살리지 못하고 끝내 이재명에 패한 그는 경선 불복 이후 자꾸만 더 옹색하게 보여 나름 지지했던 나로서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 문제는 이렇게 보면 된다. 이낙연측이 사퇴 후보표의 무효처리라는 경선 룰에 이의를 달겠다면 시작 전에 확실하게 짚었어야 맞다. 이 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차라리 경선 보이콧을 했어야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자신의 당 대표시절에 만든 당헌, 당규로 치러진 경선 결과를 놓고 뒤늦게 어깃장을 놓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명분없어 보인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이재명의 대장동 리스크에 대한 것도 그렇다. 만약 선거 전에 지금 받고 있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후보를 바꿔 대선을 치르면 될 것이고, 설령 당선된 뒤에 대장동의 몸통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이재명을 감옥에 집어 넣고 선거를 다시 치르면 그만이다. 당연히 민주당으로선 불리함을 말하겠지만 그런 인물을 후보로 내세웠던 정당이라면 원초적으로 정권을 잡을 자격조차 없다.

재보궐선거에 따른 비용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곽상도 아들의 50억원을 포함해 현재 구설에 오른 천문학적인 금액만 몰수하면 이를 충당하고도 남는다. 하여 결론은,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이고 이낙연을 비롯한 경선에서 다툰 다른 후보들은 당연히 원팀으로 뭉쳐 정권재창출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경선결과에 불복했다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이인제의 말로가 어른거릴 뿐이다.

경선 기간중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봉하마을로 달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기렸지만 지금 민주당의 경선불복 사태를 보면 과거 노무현 사례의 데자뷰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 이 또한 참으로 묘하다. 2002년 대선 말이다. 처음 국민경선으로 치러진 당시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노무현이 광주의 선택으로 이른바 노풍이라는 파란을 일으키며 최종 후보로 낙점됐지만 막상 본선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도 지난했다. 그 해 열린 월드컵이 성황리에 마무리 되어 축제분위기가 여전한 상황에서 노무현은 오히려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권 말 아들의 게이트와 노무현 본인이 후보 당선 직후 김영삼을 찾아간 행보 등으로 지지율이 급속히 빠지는 반면 월드컵으로 한껏 주가를 올린 정몽준의 지지율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민주당의 후보 흔들기는 누가 주동했느냐를 따질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본격화 됐다. 초유의 국민경선에 의해 시민참여라는 이벤트로 당선된 후보였지만 당내에서조차 노무현은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저질이다등의 딱지까지 붙여가며 대책없이 흔들었다. 지금 이재명이 대장동 사건에 결부돼 구속이라는 험한 말까지 듣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같은 흙수저 출신인 둘이 본선 경쟁력이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후보 사퇴론에 봉착하게 된 것도 유사하다.

이재명 /뉴시스
이재명 /뉴시스

 

노무현이 후보로서 위태위태할 당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유시민의 절필선언은 세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라운드(정치판)에서 선수들이 반칙을 하는데도 심판이 제지하지 않는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어 해설을 때려치우고 그라운드의 룰을 세우려 운동장에 뛰어들려고 한다면서 국민후보로 뽑힌 노무현을 아무런 이유없이 낙마시키려고 하는 민주당 반노(反盧비노(非盧)그룹의 행동은 국민들에 대한 배신 행위이자 사기 행위라고 일갈, 노무현 지키기에 나선다. 아예 민주당을 정당이 아니라 패거리 집단이라고까지 매도했다.

그래도 노무현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고 급기야 12%까지 떨어지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탈당을 결행한 후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라는 조직까지 만들며 압박했다. 진보를 상징하던 김민석까지 당을 이탈, 정몽준의 국민통합21로 건너가게 되자 민주당의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는다. 이 때 촉발된 것이 그 유명한 희망돼지 모금이다. 안팎으로 치이며 핍박받는 노무현의 선거자금을 국민모금으로 마련하자는 취지의 이 운동은 노란 물결로 전국을 흔들며 결국 정치의 이단아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만다.

더불어민주당이 경선을 통해 이재명이라는 후보를 결정하고 나서도 이낙연의 불복으로 당내 내홍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2002년을 답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당 지도부가 이미 이재명 후보를 공식화한 상황에서 이낙연 캠프 의원들이 집단행동을 하거나 더 이상의 액션을 보이기는 사실상 쉽지가 않다. 그렇더라도 정치는 생물이라는 불문율이 현실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현되는 때가 다름아닌 대선이고,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대선판은 더욱 요동칠 것이다. 이낙연이 스탠스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이 더 혼돈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자칫 2021년 판 이재명표 돼지저금통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패자의 미학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지는 것을 그저 패배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를 삶의 가치로 여기라는 뜻이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고 더 좋게 말하면 지금보다도 훨씬 나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친구집에서 기숙하며 빈 콜라병을 모아 끼니를 해결한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애플신화는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로부터의 해고가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패배는 삶의 추락과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슬픔과 좌절을 극복하고 새 생명력을 얻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낙연이 할 일은 경선 기간 동안 이재명에 대한 끊임없는 네거티브로 훼손된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것이고, 또 이를 통해 더 좋은 정치를 위한 성찰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 때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이미지와 믿음을 다시 곧추세워 이 나라를 위한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다. 안 그러면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달고 다닐 것이다.

잔인한 승리는 반드시 잔인한 권력을 만든다’. 역사의 교훈에 이런 것이 있다. 본격 대선전을 앞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죽이는 잔인한 승리가 아니라 상대를 승복시키는 선한, 상식의 승리이다. 그래야 한국 정치에서 가장 절실한 연대(連帶)라는 것도 가능하다. 경선 불복은 다름아닌 잔인한 승리를 부추길 뿐이다.

우리나라처럼 승자 독식, 그리하여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서로 증오만 키워가는 정치문화는 이제 씻어야 할 때가 됐다. 소수 엘리트들의 권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인 시민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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