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언제든 나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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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언제든 나올 수 있어”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10.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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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쇄박물관을 직지박물관으로 개명 반대’ 여론
한국의 금속활자인쇄술 연구 본부 역할 할 수 있는 이름 필요

 

청주고인쇄박물관
청주고인쇄박물관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추진하는 명칭변경에 대해 뒷말들이 많다. 박물관은 시민 선호도조사, 공청회, 명칭선정심사위원회 심의를 통해 올해 안으로 결론을 낼 계획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있어 온 이름 시비에 종지부를 찍고 개관 30주년이 되는 내년에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한다는 입장이다.

박물관 측이 지난 3월 22일~4월 23일 청주시청 홈페이지에서 명칭공모를 한 결과 1165명이 제안을 했다. 물론 이 중에는 중복된 게 많다. 박물관은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14개를 추렸다. 이후 박물관 운영위원회는 이 중 5개를 뽑았다. 이 5개가 직지박물관, 청주직지박물관, 직지인쇄박물관, 청주직지인쇄박물관, 한국인쇄박물관이다. 여기에 현 이름인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넣어 현재 6개를 놓고 선호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주시의회 일부 의원들이나 청주시민들 중에는 직지박물관 혹은 청주직지박물관을 가장 많이 선호하나 일각에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직지박물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게 이 박물관인 만큼 직지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직지박물관’을 주장하는 사람들

청주시의회 복지교육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6일 청주고인쇄박물관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명칭변경을 강하게 요구했다. 김영근 위원장(민주당·사창성화개신죽림동)은 “직지의 가치를 알리고 상품화하려면 직지박물관 또는 직지고인쇄박물관이 좋다. 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들어보고 시민들한테 모니터링도 해보라”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16일 상임위 회의 때는 “고인쇄박물관은 메리트가 없다. 직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직지박물관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 운영위원회에서도 직지박물관과 청주직지박물관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보다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고 하지만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직지박물관이라고 못박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당초 고인쇄박물관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도 직지를 포함해 전 후에 인쇄된 것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라는 의미였다. 이 이름은 한국서지학계의 권위자인 故 천혜봉 전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지었다.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에는 ‘상정예문’과 ‘증도가’가 있다. 천 교수는 ‘한국서지학 연구’라는 책에서 최소 1200년대 직후에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했을 것이라고 썼다.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234년경 ‘상정예문’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국장은 “1234년은 고려가 몽골의 2차 침입에 앞서 강화도로 천도했던 때였다. 외적의 침입과 천도라는 풍전등화 속에서 과연 금속활자 인쇄술 창안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상정예문’은 개성에서 사용하던 금속활자를 강화도로 가져가 인쇄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하나가 ‘남명천화상 송증도가’라는 책이다. 이 책 맨 뒤에는 ‘중조 주자본(重彫 鑄字本) 기해(己亥) 9월’이라는 기록이 있다. 중조 주자본이란 금속활자본을 뜯어 목판에 붙인 후 다시 새겨 만든 목판인쇄물을 말한다. 번각본이라고 한다. 여러 번각본 중 가장 오래된 김종규 씨의 증도가 번각본이 만들어진 해는 기해년인 1239년이었다. 기존의 책이 없어지거나 세월이 흘러 번각본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볼 때 최소 1200년대 초에 개성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남 전 국장은 직지관련 다큐멘터리를 7편 제작했다.
 

폭넓은 의미 담은 이름 필요한 이유

그런가하면 지난 2019년 5월 2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한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新刊類編歷擧三場文選對策)’ 권 5~6도 있다. 이 책의 소장자는 고려본으로 추정되는 책과 조선본으로 추정되는 책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고, 둘 다 받아들여졌다. 그 중 고려시대 간행된 책은 직지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말이다. 삼장문선 고려본은 1341~1370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과거수험서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책에 해당된다.

일부 학자들은 고려본이 진짜 고려본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고려 말 서적원의 금속활자와 조선초 계미자 주조에 대한 관련성을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는 희귀본이라며 둘 다 보물로 지정했다. 이런 이유들로 직지보다 연대가 빠른 금속활자본이 나올 수 있고, 박물관에서는 이를 모두 수용해 금속활자인쇄술 연구의 본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직지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직지가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서가 아니고 이를 통해 금속활자발명국 고려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직지만 강조하지 말고 금속활자발명국 고려의 문화를 조명하고, 14세기 금속활자인쇄술이 21세기 인터넷과 반도체로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점 등을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 고인쇄박물관을 국립화해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997년 미국의 언론사 타임사는 지난 천년 지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을 선정했다. 그 중 첫 번째를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성서’ 발간으로 꼽았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인쇄술이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을 불러왔고 인류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보다 최소 78년이나 앞선 고려의 금속활자인쇄술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런 점에서 청주고인쇄박물관도 청주시의 예산으로 근근이 운영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국립박물관으로 키워야 한다는 말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언제 될지는 모르나 이런 가능성까지 고려해 이름 또한 폭넓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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