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 의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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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 의사냐고?”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10.2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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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고전연구회’에서 한문강독 가르치는 이두희 선생
평생 한문공부하고 후학 양성, 초서분야 1인자 소리 들어

 

이두희 선생
이두희 선생

지금은 인공지능기술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기술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메타버스라는 오묘한 세계도 열렸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선현들이 쓴 고전이 필요할까? 그것도 한자가 잔뜩 들어간 책이라면? 대부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메타버스는 친근해도 한자는 이상하게 생긴 외국어 정도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은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어의 70~80%가 한자로 돼있다. 이 때문에 한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한자는 옛날에도 필요했고, 4차 산업혁명시대인 요즘에도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디지털기술이 세상을 덮어도 한자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여러 대학과 기관에서 강사 역임

이두희(85) 씨는 청주시내에서 상당고전연구회를 이끌고 가는 한문 선생님이다. 그는 오늘도 우암동 허름한 건물에서 한문강독을 가르친다. 학생은 10여명. 요일별로 돌아가며 다른 수업을 하는데 금요일에 오는 학생은 4명이다. 흰색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정자세로 앉은 선생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그의 이력은 유원대 호서문화연구소 고문, 충북대 사학과 대학원 출강,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초서반 강사 역임 등으로 요약된다. 공부방에는 수많은 고서와 사전, 자료들이 있었다. 율곡전서·퇴계전서·송자대전과 두꺼운 사전들이 방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도 한문 가르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데 한 10년 지나면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존재가 더 귀하다.

선생은 지난 2018년 2월말까지 충북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한문 강독을 가르쳤으나 요즘에는 모두 그만두고 상당고전연구회만 운영한다. 그는 고향인 청주시 강서2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혼자 이두도 공부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한문이 없어진다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공부에 매달렸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서 김철희 선생 밑에서 초서(草書)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초서는 심하게 흘려쓰는 글자체라 아무나 읽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평생 초서를 공부하고 강독해 초서분야 1인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초서로 된 고문서가 나오면 사람들은 선생에게 달려온다. 추상화처럼 보이는 글자를 줄줄줄 풀이하는 모습에 감탄하는 건 흔히 있는 일. 뿐만 아니라 그는 이두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그는 “한문공부를 해서 좋은 일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한문 많이 안다고 인정을 받았다. 41세 되던 해에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서 한문공부 한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시험을 봤다. 전국에서 한문 대가들이 모여 들었지만 다행히 합격했다. 연구원들이 여기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펴냈다. 한문 덕분에 직업을 얻어 10여년 근무했다”고 말했다.

한한대사전에는 얽힌 얘기가 많다. 단국대 설립자의 아들인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은 구십 평생 한한대사전 편찬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30년간 300억원을 들여 펴낸 세계 최대 한자사전에는 한자 5만5000자와 45만여개의 단어가 수록돼 있고, 색인 1권을 포함해 전 16권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08년 완간됐다. 단국대는 후에 이 사전을 디지털화 한다고 발표했다. 지금도 발간된다. 선생은 책꽂이에 꽂혀 있던 사전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편찬위원 명단에 ‘이두희’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다. 한자문화권에서 펴낸 그 어떤 사전보다 많은 단어를 수록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학생들과 '간찰'을 읽는 이두희 선생
학생들과 '간찰'을 읽는 이두희 선생

 

“요즘 젊은이들 한자공부 안해”

현재 상당고전연구회에서는 요일별로 돌아가며 한시와 한문의 구조, 초서체, 간찰, 자치통감, 지산집 등을 공부한다. 간찰은 옛날 편지를 말하고, 자치통감은 중국의 역사책이다. 지산집은 한말 유학자인 지산 김복한이 쓴 문집. 선생의 한문 고전에 대한 세계는 넓고 깊어 고문헌의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청주 낭성면 출신의 소당(素堂) 김제환이 남긴 ‘소당문집’을 한글로 번역해서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후손들이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소당은 항일투쟁을 열심히 했고 일제에 항거할 것을 주장하다 옥고를 치렀다.

그는 또 “요즘 젊은 세대들이 한자공부를 너무 안한다. 학교에서도 한문과목이 뒷전이니 아이들이 ‘안중근 의사는 무슨 과 의사냐’고 묻는 거 아니냐. 한자문화권 중 우리나라 아이들이 한자에 가장 약하다. 일본처럼 국한문 혼용을 했으면 안 그랬을텐데 너무 아쉽다. 한문의 세계는 참으로 넓은데 이를 알 수 없으니…”라며 말을 줄였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 일일이 필사했지만 지금은 책이 넘쳐나고 컴퓨터에 성능좋은 기계들이 많아 공부하기에 최적의 환경 아니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선생의 아쉬운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상당고전연구회에서 공부하는 한 학생은 이런 한문 선생님마저 세상을 떠나면 누가 명맥을 잇느냐며 한걱정했다. 학생이라고 하지만 교사로 정년 퇴직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한문 고전 자료가 아무리 많다고 하면 뭐하나. 이를 해독할 수 있는 분들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문 분야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들을 우대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학술원 회원처럼 국가에서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준다면 후배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두희 선생이 나이 지긋한 학생들에게 한문 가르치는 모습을 오래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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