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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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리뷰
  • 승인 2021.11.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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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52

오늘 의뢰인과 상담을 하면서 그분의 자녀에 대한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자녀인 A양은 중학교 3학년때 일렉트릭 기타를 강습받던 음악학원에서 연습을 마치고 전원을 끄기 위해 엠프선에 연결된 전기코드를 뽑았는데 그 전부터 벗겨져 있었던 전선 피복에서 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순간적으로 불이 붙었고, 스프링클러 등 소화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다 방염시공도 안 돼 있었던 학원 내부는 삽시간에 불이 번져 안타깝게도 학원 선생님 한 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A양은 이 일로 인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선생님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그 전과 같은 평범한 학교생할을 할 수 없었다. 유관기관의 도움으로 심리상담도 받았고, 경찰조사 과정에서 학원운영자가 그 전부터 전선피복이 벗겨진 것을 알고도 계속 방치한 것과 소방시설 설치의무도 위반한 것이 확인되어 그러한 과실이 화재발생의 원인이 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A양은 좀처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의뢰인은 미성년자녀의 감독자로서 민사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였지만, A양의 마음은 여전히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의뢰인은 A양에게 이건 네 잘못이 아니고 어른들의 잘못이야라고 말해주었고, A양은 약 1개월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법원에서 보내온 증인소환장이 집에 도착했다. 학원운영자가 피고인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의 재판부에서 보낸 것인데, 재판부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하고자 부득이 A양을 증인으로 소환하였으나, 나와서 그 기억을 말하기 힘들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의뢰인은 증인소환장을 받은 사실을 A양에게 말해주면서 어떻게 할까 물었는데, A양은 잠시 고민하더니 참석하고 싶다고 말하여 의뢰인과 함께 증인신문기일에 출석하였다.

변호인, 검사, 재판장은 차례로 A양에게 화재 사고 당시의 상황과 전기코드를 어떻게 뽑았는지, 평소 전기코드의 상태는 어땠는지 등에 관해 물었고, 모든 신문절차가 끝나자 재판장은 A양에게 오늘 어려운 자리에 용기를 내어 출석해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학생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재판장이 왜 그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생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는 뜬금없는 그 말의 힘은 지금까지 A양이 받았던 수많은 위로와 상담에 비교할 수가 없었다. 부모와 상담가로부터 무수히 그 말을 들었고, A양 자신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을 완전히 용서할 수 없었는데 그날 판사가 했던 그 한마디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처럼 A양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있던 죄책감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의뢰인은 그 말을 판사가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재판에서 판사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녀에게 한 말은 무죄 선고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 판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판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판사의 법정 언행이 문제된 적도 있었는데 이 판사님은 자신이 말한 그 한 문장으로 인해 한 학생이 죄짊을 벗게 됐다는 것을 알까. 비록 오늘 상담은 1시간이 넘게 진행됐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뭉클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2. 20211031

5년 전 그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다가 자녀의 근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A양은 그 후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입학했고, 밴드부에도 들어가 그동안 잡지 않았던 일렉트릭 기타를 다시 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모 대학의 로스쿨에 입학하여 법조인의 길을 준비한다고 한다. 의뢰인은 자녀가 돌아가신 선생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특히 그때 재판장님의 말이 자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뭉클했다. A양이 훌륭한 법조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그 초심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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