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금속활자 인쇄술 연관성, 언제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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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 금속활자 인쇄술 연관성, 언제 풀릴까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11.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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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계직지문화협회, 활자로드 규명사업 추진
국가가 해야 할 일, 과감한 연구 인력과 재정 투입해야

 

11월 10~11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직지국제포럼. 사진/ (사)세계직지문화협회
11월 10~11일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직지국제포럼. 사진/ (사)세계직지문화협회

 

직지는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상권은 자취를 감췄고,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됐다.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는 1452년에 시작해 1455년에 완성됐다. 마인쯔에서 태어난 구텐베르크는 인쇄소를 세워 금속주조기, 양피지, 종이 등 인쇄에 필요한 기술과 재료를 확보하고 성경을 인쇄했다. 우리나라보다 78년 뒤졌다. 그럼에도 책을 간행 보급함으로써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을 불러왔고 유럽의 근대화를 촉발시킨 주인공이 됐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을까? 혹시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의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사)세계직지문화협회는 지난 10~11일 ‘직지국제포럼’을 열고 이를 조명했다. 결론은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국내외 관련 학자들이 한국과 독일의 금속활자 인쇄술 연관성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이 문제를 더 파고 들 것으로 보인다.
 

2003년 ‘활자로드’ 처음 사용
 

그동안 이에 대한 궁금증이 다큐멘터리, 영화, 소설 등으로 만들어졌다. 남윤성 전 청주MBC 편성국장은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지난 2003년 ‘세상을 바꾼 금속활자 그 원류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때 처음으로 ‘활자로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이 서남아시아와 유럽으로 팔려갔다는 것에서 차용한 것. 남 전 국장 등은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유럽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없는지 중국, 미국, 유럽 등지를 따라가보고 관련 학자들을 인터뷰했다.

이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해 “스위스 인쇄박물관에서 들었다”면서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교황청 사절단을 만났다. 그 사절단 가운데는 한국을 방문하고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 말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소설가 오세영이 ‘구텐베르크의 조선’, 영화감독 정지영이 ‘직지코드’, 그리고 소설가 김진명이 ‘직지 아모르 마네트’ 등에서 이같은 가설을 다뤘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이번 포럼은 활자로드 규명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몇 몇 다큐와 소설, 영화 등에서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다뤘는데 이를 학술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포럼을 열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학술행사를 해서 한 발짝씩 다가가려고 한다. 세계의 관련학자들이 이번 직지국제포럼에 참여해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성과였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미국·프랑스·독일 등의 관련 학자들을 참여시켰고, 발표 자료도 모두 영문으로 번역해 실었다. 관심있는 외국인들이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발표는 온라인 상에서 이뤄졌다.

올리비에 드로뇽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는 ‘금속활자를 사용한 활자 인쇄술은 세계 변혁의 주체인가’라는 주제 발표를 했다. 그는 이전에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주조기술이 한국의 금속활자 주조기술과 같은 주물사주조법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던 사람이다. 올리비에 드로뇽 교수는 이번 포럼에서 “한국의 활판 인쇄술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서양에 전달됐다는 가시적인 자료는 현재까지 없다. 아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영구적으로 소실됐을지 모른다. 기술의 확산보다는 아이디어와 영향력의 확산이라는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 필요
 

‘동·서양 금속활자 인쇄술의 비교연구’ 라는 주제로 발표한 황정하 총장은 “한국과 독일 구텐베르크 사이에 금속활자 인쇄에 관한 정보 교환이 이뤄졌을지 모른다. 종이와 목판인쇄가 중국으로부터 유럽에 전파되었듯이 그 당시 동서무역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를 통해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남윤성 전 청주MBC 국장은 “조선 초기 태종~세종시대 금속활자 인쇄술의 서양 전파 가능성이 높다. 조선 초 바닷길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 국제적으로 개방된 사회였기 때문에 동서교류가 활발했다. 영국의 저명한 동양사학자 허드슨은 조선 초기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유럽으로 넘어갈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활자로드를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직접적인 문헌 증거기록을 찾아내는 것이며 구텐베르크 인쇄술 탄생과정과 당시 동서교류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술과 관련해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과의 연관성을 찾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이 날 국내 토론자들은 활자로드 규명작업을 지자체가 아닌 국가가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감한 연구 인력 확충과 재정지원으로 이 사업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정된 예산과 인력 때문인지 이번 포럼에 다양한 분야의 해외 학자들을 초청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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