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후예들
상태바
전두환 후예들
  • 한덕현
  • 승인 2021.12.01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으로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국 민주주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에 근거해 뉴욕시청에 100년이 넘도록 설치돼 있던 그의 동상이 최근 철거됐다. 그가 노예제를 옹호했고 실제로 생전에 600명 이상의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누구보다도 확고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뒤늦게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 전력으로 응징을 당한 꼴이 됐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전두환의 사망으로 청남대에 있는 그의 동상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현재는 관리사업소 뒤쪽에 노태우 동상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시민단체의 철거요구로 논란을 빚자 관리의 편리성을 이유로 전두환 동상을 이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대신 충북도는 동상 옆에 역사적 과오를 담은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으로 여론을 무마했다. 표지판에는 “‘군사반란 주도, 권력 장악’(12·12사태), ‘계엄군 동원 5·18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등 과오와 반란수괴·내란수괴·뇌물 등 9개 죄목으로 무기징역, 추징금 2205억원 확정 뒤 특별 사면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두 사례를 접하며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동상 얘기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아니 민주주의라는 것의 허구, 더 심하게 말하면 천박함이다. 미국은 죽은지 200년이 다 되어서도 제퍼슨의 흠집 하나를 허투로 넘기지 않고 역사를 바로 잡으려 했다. 이 것으로만 보면 역시 미국은 민주주의에서 앞선 나라다. 한데 이러한 미국이 희대의 이단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아 한동안 시끄러웠다. 민주주의 1등국은 커녕 트럼프에게 사주받은 모리배들에게 민주주의 전당이라는 국회의사당까지 침탈당하며 세계적인 망신을 샀다.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추락을 이때만큼 적나라하게 목격한 적도 없다.

우리나라 대선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민주주의의 몰락 현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미국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선두를 달리는 두 후보가 똑같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으로 기록되고 있고 이들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투표장에 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번 대선처럼 국민들에게 집단의 고통을 안겨준 적이 없다고도 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선거전 내내 혼선을 빚다가도 막판에는 대개 선의의 옳은 선택, 이른바 집단지성이 발현됨을 비꼬는 말이다.

단순히 비호감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절반이 그에 환호하며 난리다. 그의 지나온 궤적을 보면 민주적 삶과는 거리가 먼데도 오히려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추앙받는다. 후보가 국민들을 철면피하게 기망하거나 아니면 국민들의 눈이 멀었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설계한 제퍼슨은 당시 관행인 노예제도를 따른 것만으로도 사후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는 민주의 가치와는 전혀 상반된 독단, 권위적 삶을 평생 살아왔는데도 국가권력까지 거머쥘 판이다.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지구상에 있는 최고의 제도로 꼽힌다. 민주주의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진 게 아니고 사회운동의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 도래, 확대되었다고 단언한 토크빌에게 이런 확신을 가져다 준 것은 역시 미국 민주주의였다. 그는 생의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민주주의 체제를 지구상의 낙원이라고 했다. 한데 그 미국이 도저히 도 안되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했고 끝내는 세계인을 좌절시켰다. 이제 와선 생뚱맞게도 두 세기 전의 일을 트집잡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제퍼슨을 끌어내렸으니~ 이 모순, 이만한 가치관의 혼돈도 없겠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반세기 동안의 지난한 투쟁과 역경의 산물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또 자기삶을 희생시킨 결과물인 것이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성스러운가. 그런데 지금, 이같은 민주주의를 더 정성으로 가꾸고 지켜야 할 대통령 자리를, 이미 택도 없는 자질을 만천하에 드러낸 후보가 차지하겠다고 덤벼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도 트럼프가 강림하려 한다는 비아냥은 이래서 나온다. 후보보다도 그를 신격화까지 하며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 이해하지 못하겠다. 우리의 국민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라는 자괴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은 전두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후예들이 주변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던 군인도 아니고 가족들도 아니다. 그를 업적으로 추모하려는,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고 평가하는, 아직도 그를 가슴에 담아두려 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죽음 앞에서도 살인마나 반역자, 독재자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눈치를 본 언론이 후예들이다. 멀게는 황강의 기적에서부터 가깝게는 애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언론이야말로 전두환의 단연 최고 후예들인 것이다.

이러한 언론이 지금, 역대 최고 비호감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안달이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라는 것도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곰곰 생각해 보면 토크빌이 후반기에 우려한 민주주의의 필연적 역기능을 실체적 사실로써 확인하는 것같아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사회적 유대감의 상실과 공적 덕성의 소멸, 그리고 다수의 폭정과 민주적 전제가 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유대감의 상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민을 딱 반으로 편가르기 하는 진영싸움이 나라 전체를 휘감고 있다. 공적 ()덕성의 소멸은 대장동과 고발사주 사건에 국가정의의 최후 보루라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줄줄이 카르텔로 엮여있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실감한다. 다수의 폭정과 민주적 전제는 온갖 권익, 이익집단의 발호와 물질·개인주의 팽배로 인한 사회병리현상을 보면 그대로 입증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민주주의 훼손과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야겠다. 적어도 한국판 트럼프가 현실화되는 것은 차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이 것만이 전두환의 후예들을 영원히 사장시키는 비책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