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서동처’와 ‘인곤마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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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와 ‘인곤마핍’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1.12.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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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편집국장

 

교수신문은 매년 12월, 한 해를 정리한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런데 그 단어가 기막히게 잘 맞는다. 아니 우리 현실을 반영한 사자성어를 족집게처럼 잘 뽑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사자성어를 선정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교수들이 내놓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한패가 된 걸 말한다. 요즘에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지만 고양이의 사명은 쥐를 잡는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상부상조 한다면 세상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대학교수 880명이 6개의 사자성어를 놓고 각각 2개씩 선정했는데 ‘묘서동처’가 총 1760표 중 514표(29.2%)를 얻었다고 한다.

‘묘서동처’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당나라 역사를 서술한 중국의 『구당서』에 이런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낙주(洛州)의 조귀라는 사람 집에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서로 해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의 상관이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쳤다. 그러자 정부의 관리들이 상서로운 일이라며 난리였다. 오직 최우보 만이 ‘이것들이 미쳤다’고 바른 소리를 했다.” 도둑을 잡아야 하는 자가 도둑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최 교수는 “‘고양이’는 나쁜 짓을 못하도록 감시·감독할 공무원, 감시자, 검경, 법관 등을 의미하고 ‘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범법을 저지르는 자를 은유한다. 공직자가 위아래 혹은 민간과 짜고 공사 구분없이 범법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 아닌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라고 통탄했다.

이는 올해 전국을 뒤흔들었던 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논란과 성남 대장동 특혜의혹을 빗대 말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가지 사건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항의했다. 동시에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또 2위를 차지한 인곤마핍(人困馬乏)도 지금의 상황을 잘 대변한다. 이 사자성어는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기나긴 피난길에 ‘날마다 도망치다 보니 사람이나 말이나 기진맥진했다’라고 한 귀절에서 따온 단어다. ‘인곤마핍’은 코로나19로 힘든 판에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행동도 실망스러워 피곤한 국민들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그러나 코로나와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11월초 위드코로나로 잠깐 좋았던 게 희망을 가졌던 전부였다. 내년에는 또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나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마스와 새 해가 와도 즐겁지 않다. 대선에 나선 두 유력후보 중 찍을 사람이 없는 것도 고민거리다.

교수신문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단어가 선정됐다. 희망을 품은 사자성어는 드물었다. 이는 곧 우리나라에 밝고 희망찬 일 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일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년에는 긍정적인 사자성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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