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에게 지배당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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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에게 지배당하는 세상
  • 한덕현
  • 승인 2021.12.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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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완성한 것은 1948년이다. 뒤의 두 자를 바꿔서 제목을 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한 36년 후의 세상은 물론 가상(假想)의 산물이다.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에 의해 개개인의 어떠한 소리나 동작이 포착되고 또 이를 근거로 사상경찰(思想警察)이라는 집단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는 사회는 당시로선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얘기였다.

미래에 대한 이같은 예언이 지금의 디지털 시대, 예를 들어 문밖에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추적당하는 현실에선 비교조차도 안되는 당연지사가 되었지만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스탈린주의의 잔악함에 익숙해지려는 소련 전체주의를 경고한 이 책은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이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오웰이 생각하는 가상의 미래사회는 곧 인간성의 말살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써 오버랩된 것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게 있나보다 로 인식됐던 메타버스(meta verse)가 어느덧 우리사회의 대세가 됐다. 요즘은 유명 관광지나 명소등의 어지간한 시설에는 경쟁적으로 메타버스 체험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고 이를 이용하려면 줄을 서서 장시간 기다려야 한다. 메타버스라는 이벤트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 간의 대면 접촉이 줄어들면서 비대면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메타버스다. 메타버스 내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고, 또 가상화폐로 쇼핑하는가 하면 때론 해외여행도 즐기면서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를 언제든지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단순히 가상의 세계라고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에는 그 추세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나같은 아날로그 마인드로는 도대체 그 영역을 어디까지로 이해해야 할까, 감이 안 선다. 더 솔직히 말하면 두렵기까지 하다. 현재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사회활동이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질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즈음이다. 1992년 발표된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채 30년도 안되어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가 현실이 되고 아예 인공지능(AI)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기린아로 주목받고 있으니 지하에서 조지 오웰이 듣는다 해도 놀라 자빠질 일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때 조 바이든은 닌텐도 '동물의 숲'이라는 가상현실 안에서 캠페인을 했고 방탄소년단(BTS)은 온라인 게임 포트라이트 안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실제 콘서트 현장처럼 발표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이미 윤석열 캠프가 시동을 걸었듯이 우리나라 대선에도 AI와 가상 현실을 접목한 선거전이 선보일 판이다. 스포츠용품으로만 알려졌던 나이키는 비디오 게임 플랫폼인 로블룩스(Roblox)에서 나이키랜드를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로블룩스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 및 게임 제작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로, 메타버스를 견인하는 전세계 2억명 어린이들의 초통령(初統領)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가상(假想)은 어쩔 수 없이 가짜다. 아무래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기에 사람들에게 허구의식을 양산시키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툭하면 일어나는 강력범죄, 대표적으로 교제살인이나 데이트폭력 등은 인터넷 게임으로 상징되는 가상세계에 길들여진 이들의 반사회성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임에서는 쉽게 사람을 죽이고 또 그런 행위를 말 그대로 게임을 즐기듯 한다. 어느 분야든 가상과 가짜는 반인간성, 반사회성을 키운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후유증은 사회통합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년 대선과 관련해서 요즘 눈만 뜨면 국민들을 괴롭히는 건 다름아닌 가상과 가짜들의 기승이다. 여야를 대표하는 후보들이 가족관련 각종 추문에 휩싸이다보니 근자에 갑자기 커지는 여론은 두 후보 모두의 교체론이다. 선거일을 늦추더라도 양쪽 다 대타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이 대책없이 나온다. 누구를 세우든 지금의 치킨게임 정치판에서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본인은 물론 가족 리스크가 자고나면 불거지는 두 사람은 해도 너무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불법도박과 성매매의혹을 받는 이재명 아들, 그리고 학력 및 경력 등 각종 스펙의 허위 의혹에 휘말린 윤석열 부인은 다름아닌 가짜 인생을 살았느냐 아니냐는 공방으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두로 나선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비호감은 고사하고 지금처럼 가족의 비위 문제가 마치 시정잡배 수준으로 연일 불거지는 것은 일찍이 없었다.

그 압권이 김건희에 대해 여당이 덧씌우려 한 리플리증후군이다.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이 말의 뉘앙스는 결국 가짜 인생에 대한 자괴감과 불편함이다. 한 나라의 영부인이 될 사람이 해외 언론에서조차 출신과 관련해 비아냥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삶에 있어 가상(假想)은 비록 흥미와 호기심을 줄지언정 그 것이 진리와 참()은 될 수가 없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지도자는 결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그 가능성을 가늠케 해준다. 후보들의 실체가 가상과 가짜,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이제 우리들이 할 일은 분명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들 하니, 앞으로 국민과제는 마지막까지 차선과 차악을 고르는 데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노력과 성의를 게을리 한다면 끝내 우리를 기다리는 건 가짜들에게 지배당하는 사회, 그리하여 천추의 한을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앞으로 5년이 될 것이다. 5년은 다름아닌 5천만 국민들이 퇴행의 역사를 향해 실험용으로 내팽개쳐지는 오징어게임의 말이 될 것이고, 이러한 운명을 거부할 권리를 결연한 행동으로 보여줄 날이 202239일 아니겠는가.

앞으로 두 달, 한데 아직도 시계(視界)가 어두우니~~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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