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여, 쿼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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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여, 쿼바디스!
  • 한덕현
  • 승인 2022.01.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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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갑작스런 추락도 당혹스럽지만 안철수가 졸지에 차기 대선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예상을 빗나갔다. 이제까지 안철수에게 가장 긍정적인 여론은 비록 대세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지지도를 꾸준히 견인하며 막판 이재명과 윤석열의 박빙승부에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이를 대비해 이·윤 캠프측이 립서비스 정도의 워딩을 구사하던 게 바로 엊그제였는데, 자고나니까 세상이 확 뒤집어지는 꼴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윤석열의 대체재를 자처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지경이 됐다.

외형으로 보면 안철수는 지금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서로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추파를 던지고 있고, 똑같이 정권교체를 외치던 윤석열과의 동상이몽이 부담스러웠던 차에 상대가 알아서 무너지고 있으니 불감청고소원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여차하면 본인의 바람대로 양자구도든 3자구도든 이젠 대권경쟁을 주도할 수도 있다. 지금의 판세라면 굳이 당선권이 아니더라도 대선을 죄락펴락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최대 기회가 왔다고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오히려 최대 위기라는 것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결국 안철수의 정치생명력은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안철수는 곧 철수(撤收)’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게 관건이다. 한데 안철수는 지금 바로 이런 인식 때문에 심각한 기로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설령 그가 두 자릿수 지지도를 얻는다고 해도 이를 대권까지 결부시키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대선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변신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음을 공감하는 것이다. 당도 그렇고 본인도 그렇고 혼자의 힘으로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나오는 정치적 해석이 안철수는 또 파트너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또 한 번의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이재명과 윤석열 쪽의 구애에 대해 안철수의 반응은 요즘들어 아주 원색적이다. 김칫국 마시지 마라, 꿈도 꾸지 마라, 나는 끝까지 간다 식의 단정적 어법을 구사한다. 정치적으로 미묘한 상황, 특히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서 이도저도 아닌 선문답을 남발하는 바람에 모호화법, 안개화법, 굼벵이화법, 회색화법, 아구찜화법(아구찜에 아구는 없고 콩나물만 있거나 콩나물을 헤집어서 아구를 찾는 건 듣는 사람의 몫이라는 비유) 등 등의 비아냥을 달고 다녔던 지금까지 이미지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란 속설도 있듯이 사람들은 그의 말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그의 이제껏 정치역정에서 찾아야 한다. 서울시장 3수 실패(2011, 2018, 2021) 대통령선거 3수생(2012, 2017, 2022)이라는 전력이 반증하듯 안철수에 대한 국민피로도는 당연히 높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비호감은 이재명 윤석열 못지 않다. 이번 대선출마에도 여론은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안철수라는 정치적 주식은 상장폐지가 아니라 일시적 거래중지 상태를 유지한 성격이 짙다. 부도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미지대로 일단 철수한 것이다. 그는 지지도가 쪽박난 상태에서 발을 뺀게 아니다. 잘 나가는 후보였는데도 본인의 선의적 선택 이른바 착한니즘과 정치력 부족 탓에 밀려났다. 2011년 박원순, 2012년 문재인과의 단일화 땐 본인의 당초 지지도가 상대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러니 새로운 정치를 외치는 안철수에 대한 국민기대감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 증표가 비록 지금까지는 한 자리수이지만 각종 여론조사의 꾸준한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 /뉴시스
안철수 후보 /뉴시스

 

문제는 안철수 식 정치에 있다. 그는 정치를 행동보다는 사유(思惟)로 해 왔다. 정치는 신념의 추구이자 행동이지 생각의 즐김이나 유희가 아니다. 이를 세계사에서 입증한 것이 소피스트(sophist) 아닌가. 행동이 아닌 말에 의한 이해와 충돌, 그리고 이에 따른 자기 합리화의 고집은 결국 궤변만 양산했다. 안철수가 한 번 의기투합했던 사람들과 번번이 등을 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과 화두만 던졌지 맞서 싸워 관철시키기를 꺼렸다. 긴 안목의 시련과 투쟁보다는 안주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안철수에게 또 한 번의 철수는 곧 정치생명의 끝을 의미한다. 정치입문 10년이라는 이력과 만 60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 대선이 국민피로감을 불식시키는 마지막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꿈을 꾸기에는 여전히 여건이 안받쳐주고 그렇다고 이재명이나 윤석열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것 또한 부담스러우니, 이런 고민 때문에도 지금 윤석열 만큼이나 골치아픈 사람은 안철수 일 것이다. 시중 여론처럼 윤석열과 손잡는다는 가설도 현재 국민의힘의 인적, 역학구조를 보면 이 역시 부담스럽다. 대선이 끝나도 입지를 보장받는다는 확신이 안 선다.

이럴 때 해법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본인의 공언대로 끝까지 완주하는 길 밖에 없다. 이래야 추후에라도 정치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고 대선 이후에 곧바로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총선은 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매번 선거만 되면 기성의 정치공학과 여론에 휘둘리며 포기를 거듭했던 안철수에게 천재일우가 내렸음인지 윤석열의 곤경이 타이밍을 맞춰 찾아든 것도 참으로 이채롭다.

윤석열의 지지도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인은 한 번 여론에서 밀릴 경우, 더군다나 그런 현상이 당사자의 결함과 자질 및 정치적 역량의 부족으로 야기됐다면 원상복귀는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과거 이인제와 문창극, 김문수, 박찬종, 반기문이 좋은 반면교사다. 이들은 한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가를 올리다가 본인의 선택과 판단 미스로 쓴 맛을 본 후 시나브로 잊혀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윤석열은 경선후 지지도가 바닥으로 추락해 역시 후보교체론에 포위됐다가 끝내 기사회생, 대권을 거머쥔 노무현의 사례와도 결이 다르다. 부인 김건희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공정과 정의, 수권 능력으로 포장됐던 그의 대중 이미지는 지금까지 운신만으로도 더 이상 소구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검사시절의 흑백논리로 무장되어 대통령 후보로 부적격하다는 윤석열의 토론 기피는 이래서 결정적인 패착이 됐다.

달리기 예찬론자인 안철수의 자서전엔 이런 내용이 있다. “빨리 가는 게 어려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가는 게 더 어렵다. 그 것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나만의 속도로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그렇지만 그게 결국 내가 원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맞는 말이다. 이제부터 안철수가 할 일은 흑심이 가득한 이재명, 윤석열 캠프의 말장난에 일일이 대꾸할 게 아니라 자신만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은 아니더라도 다음 번엔 반드시 일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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