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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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2.01.1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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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편집국장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우리나라에 보일러가 도입되면서 2층 이상의 건물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온돌 난방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2층 건물을 지을 수 없었으나 파이프를 통해 더운 물을 위층으로 올리게 돼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층 양옥집은 보일러의 보급과 함께 생겼고, 얼마 후 철근 콘크리트와 보일러를 합쳐서 만든 아파트가 등장했다고 한다.

유 교수는 “건축업자가 고층건물을 지으면서 공중에 없었던 부동산 자산이 생겼다. 아파트로 인해 부동산이 늘었고, 아파트를 사면 누구나 부동산을 소유한 지주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됐다”고 썼다.

실제 아파트의 등장이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꿨고 개인의 삶도 몰라보게 변화했다. 나도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됐다. 게다가 아파트는 편리하다. 문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 신경쓸 필요도 없다.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현대인들은 아파트의 노예가 됐다. 아파트는 살 집이 아니라 얼마 짜리 인가에 꽂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시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신 확인해야 하고, 올랐다 싶으면 이사갈 궁리를 한다. 재빨리 팔고 그 사이에 대출을 받아 새 아파트를 산다. 5년에 한 번씩 이사가는 수고로움을 견디며 시세차익을 챙긴다. 만일 20년씩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 재테크에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찍힌다.

이왕이면 아파트는 대기업이 지은 고층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래야 좋은 조건에 팔 수 있으므로. 고층 아파트는 조망권이 좋아 인기가 있다. 한강뷰, 해운대뷰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높이에 대한 도전은 계속해서 초고층 아파트를 탄생시켰다. 전국적으로는 서울과 인천 송도국제도시, 부산 해운대 등지에 50~80층 아파트가 등장했다. 청주시내에서는 30~50층 아파트가 높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를 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갑자기 불쑥 솟은 건물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거대해 위협마저 느낀다. 이런 모습은 대도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구 10만이 안되는 군단위에 가도 주변 건물과 공존하지 못하고 혼자만 높은 아파트가 종종 눈에 띈다.

더욱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구도심마저 단독주택을 밀어내고 고층 아파트 차지가 된다. 그러나 이런 곳에는 아담한 단독주택을 지었으면 좋겠다. 푸른 나무와 빨간 지붕이 어울리는 집을 지으면 새로운 형태의 재개발 방식이 되지 않을까. 경제논리만 대지 말고 말이다. 그런 동네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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