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토끼산 밑에 사는 ‘그림책 작가’ 정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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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토끼산 밑에 사는 ‘그림책 작가’ 정승각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2.01.19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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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 그려 인기…흠뻑 빠져든 '그림책 인생'
정승각 작가가 자신의 ‘토끼산 그림책공방’에서 그림책을 설명하고 있다.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충주에 권정생 선생의 작품 <강아지 똥> 속의 그림을 그려 유명세를 탄 정승각(61) ‘그림책 작가’가 산다.

정승각 작가의 작업실 겸 안식처는 충주시 엄정면 야트막한 토끼산 아래 문닫은 교회다. 옛날 교회 건물을 활용해 ‘토끼산 그림책공방’으로 바꾼 이곳은 그의 원화 작업 및 그림책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 작가의 그림과 권 선생의 글로 제작된 <강아지 똥> 작품은 국내 최초로 그림책 분야에서 100만부의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7개 국가에 출판 번역본도 수출됐다.

교육부 청소년진로체험처 ‘꿈길’로 지정된 이곳 정승각 작가의 공방에는 <강아지 똥>을 비롯해 그가 그린 <오소리네 집 꽃밭>, <황소아저씨>, <금강산호랑이>,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등 작품의 ‘그림책원화’가 소장돼 있다.

중앙대 회화과를 다닌 정 작가는 대학 때 아이들 때문에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시절 경기도 광명시 수해지역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면서다. 아이들의 꾸밈 없는 느낌대로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수해지역 아이들의 체험그림을 접하면서 출판미술 작가로 진로를 정했다. 이듬해인 1998년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의 시화공모전에 당선됐다. 이 계기로 그림책의 행복한 수렁에 더욱 빠지게 됐다. 이 시집은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에 출판됐다.

이후 그는 권 선생과의 인연이 깊어졌다. 권 선생이 그림책 문장으로 다듬은 원고를 받아 그림책 <오소리네 집 꽃밭>, <황소아저씨> 등을 그렸다. 바보처럼 웃지만 일본 경찰에게 물러서지 않는 <벌렁코 할아버지> 작품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새야 새야 녹두새야> 등 10여 권의 단행본 그림도 그렸다.

그림책 분야 선구적 활동

‘토끼산 그림책공방’ 앞에 선 정승각.

그는 다수의 어린이 잡지에도 그림을 그렸고 1994년에는 전통설화 ‘불개 이야기’와 동서남북 방위를 수호하는 사신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발간했다. 정 작가 스스로 글과 그림을 모두 맡은 첫 작품이었다. 이 이야기는 2009년 초등학교 2학년 읽기 교과서에 실렸고 당시 도올 김용옥 선생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그림책 <춘희는 아기란다> 작품의 그림을 그렸다. 재일조선인 원자폭탄 피해자의 아픔을 담은 이 작품은 폭탄 투하 그해 춘희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일본 현지에서 직접 스케치해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

현재 정승각은 그림책협회회원으로 어린이도서연구회자문위원을 맡아 그림책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사단법인 그림책협회에도 속해 있다.

특히 그는 그림책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지역의 문화공간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2019년 5월 앙성면 선재마을에서 발족식을 가진 ‘충주독립문화공간네트워크(이하 충주독문넷)’의 초대 사무국장으로 이를 주도했고 지금도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충주독문넷은 상호 정보교환과 협업을 통해 창작자와 문화예술 향유자 간 건강한 창작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정 작가가 소개한 주요 회원으로는 ‘공간해슬(목각인형이 사는 마을)’ 등 지역 문화예술인과 단체가 속해 있다. 동량면 소재 공간해슬은 부산국제연극제, 춘천인형극제를 비롯해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리오네트’ 극단보물의 상주공간이다. 공연작품에 필요한 ‘마리오네트’ 제작공방과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계 ‘강아지 똥’ 역할도

또한 중앙탑면에 있는 ‘우리한글박물관’은 2009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박물관이다. 해마다 특별전을 열어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앙성면에 위치한 ‘문화공간 선재마을’은 주변 자연과 문화를 조화롭게 나누며 몸과 마음이 쉼을 얻기 위한 공간이다. 해마다 봄철이면 공연 전시와 함께 선재음악회가 이어지고 있다.

‘충주독립문화공간네트워크’ 발족 사진.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정승각(뒷줄 왼쪽서 3번째) 작가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충주 시가지에 있는 ‘창작극단 하다’는 ‘삶이 곧 예술이다’는 슬로건을 갖고 있다. 극단과 단원이 발 딛고 사는 지역의 공간, 사람,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공연, 예술교육, 문화,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극단의 특성을 활용한 그림책 공연도 한다.

충주 관아골에 있는 ‘세상상회’는 도시재생의 모범공간이다. 관아골 골목길 허름한 집을 개조해 만든 디저트 카페공간이다. 지역 젊은이들과 매월 ‘담장마켓’을 열고 있다. 인형공방과 독립출판공간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림책은 인간이 성장기에 처음으로 접하는 책이다. 시대별로 작가의 상상과 해석을 담은 작품은 인격 형성 전반에 영향을 주는 세대 간 소통의 도구다. 정승각은 청년 그림책 작가들에 대한 관심도 부탁한다. 그는 “최근에 예술의 전당에서 젊은 작가들의 그림책 전시회가 있다”면서 언론의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그림책’을 예술분야의 정식 장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 누구나에게 익숙한 그림책이 미술관에서 향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요즘 그림책 원화전시회가 유행하고 있다”면서 “친근한 그림책에 어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전국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를 줄줄 뀄다. 그는 직접 그림책 전도사 역할도 한다. 전국 학교 등의 초청을 받아 그림책 관련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특히 정승각 작가는 “충주 한강 주변의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과 문화, 농업이 융화되면 자연도 살고 문화도 살 수 있다”는 말로 지역문화 살리기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권정생 선생이 표현한 ‘강아지 똥’이 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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