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도, 환경정의를 지키는 것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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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도, 환경정의를 지키는 것도 다양하다
  •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 승인 2022.01.19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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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은평 불광천 산책로를 걷다가 입성이 남루한 한 노년남성을 만났다. 그는 산책로가 끝나고 인공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 그늘진 귀퉁이의 나무등걸에서 쉬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노쇠한 생명체의 고독이 느껴졌다. 그의 고독은 체념을 닮은 듯도 했지만, 묘한 고요함을 내뿜고 있어서 나는 잠시 그의 곁에 머물렀다. 스스로 늙어가면서, 그리고 늙어가는 이들과 늙어감/늙음 현상을 탐색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노년들을 만나면 멈춰서는 버릇이 생긴 까닭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느껴서일까. 그는 수줍게 말을 아끼면서도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여든셋인 그는 몇 년 전 아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모시고’ 혼자 살고 있다. ‘하늘나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그는 죽음을 포함한 삶의 의미를 우주적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지구와 인류 역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 통으로 이해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2017년 문을 닫을 때까지 그는 ‘도티기념병원’에서 일했다. 도티기념병원은 극빈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노숙인들 등 공공의료기관이 챙기지 못하는 의료 약자들을 의료보험과 무관하게 무료로 돌보던 곳이다. ‘가난한 환자들의 안식처’였던 이곳에서 그는 의사와 간호사를 도와 이런저런 일을 했다. “내가 챙긴 죽음도 많았죠”라고 그는 말한다.

도티기념병원도 문을 닫고, 그래서 지금 더욱 혼자가 된 여든셋의 그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종일 거리의 담배꽁초를 줍는다”고 그는 답한다. 성당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시작해 이곳 불광천까지 그는 날마다 담배꽁초를 주우며 걷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가 앉은 자리 옆에 놓인 면장갑과 마대와 집게가 눈에 띈다.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봅니다. 비웃는 거죠.” 그러나 그에게는 신적 의미로 가득한 지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드디어 그곳으로’ 갈 때까지 ‘이곳에서’ 준비하는 행복한 시간의 행복한 일이다.

폐지 줍는 노년들의 모습에는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도 담배꽁초 줍는 노년의 모습은 의아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맞이하게 되는 노년기가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가에 대한 어두운 경고로 동원되곤 했던 폐지 줍는 노년 이미지는 사회문화적·경제적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일단 폐지를 수집하는 노년들에 대한 생활실태조사와 함께 정책대안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환경운동 차원에서 이들을 자원재생활동가로 새롭게 의미화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쓰레기 배출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배달시대’에 폐지 줍는 노년들은 자원순환을 돕는 환경지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기후정의를 위해 노년들이 나선다. <60+ 기후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1월 19일 탑골공원에서 정식 출범했다. 향후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낼지 나 자신을 포함해 60+ 들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 자신이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파괴되는 지구 자체라는 깨달음 없이는 기후정의 운동을 제대로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불광천에서 만난 저 여든셋의 노년남성은 자신을 포함해 지구와 인류가 걸어온 여정이 모두 신적 의미를 지닌다고 믿고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이 포함된 지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믿는 신’의 존재 여부는 그의 실존만이 답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서 발견한 것은 ‘늙어감의 한 영적이며 세속적인 양식’이었다. 그는 ‘담배꽁초 줍는 가난한 독거노인’에 대한 다중적 통념을 깨면서 지구를 지키는 영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었다. 늙어감의 양식이 하나가 아니듯 기후행동의 양식도 하나가 아닐 것이다. 진화론에 입각해 지구와 우주를 이해해도, 이 다중 생명체/비생명체들의 공존과 공산(共産)의 부활에, 경계 지어진 인간 주체성의 오만과 오인을 넘어, 스스로를 뒤엉킨 부분으로 자각함으로써 동참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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