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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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바람
  •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 승인 2022.01.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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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뮤지션 가운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이 꽤 있다. 어떤 뮤지션은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지만, 어떤 뮤지션은 노래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통편집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다들 평생 음악만 해온 이들이고, 음악을 무섭게 아는 이들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음악을 해온 이들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반갑지만 씁쓸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이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흔하다. 경쟁하지 않는 음악 프로그램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2009년 슈퍼스타K가 시작된 후, 한국의 TV 음악 프로그램은 다들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을 도입했다. , , 포크, 힙합, 트로트, 일렉트로닉, 아이돌 팝, 한국 전통음악을 비롯한 거의 모든 장르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스타가 된 이들도 숱하게 많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미있다. 간절하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 있을 때부터 간절함이 배어난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누가 더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하는지 과시하고 경쟁하는 장이다. 그래서 자신의 속 깊은 사연을 전 국민에게 공개하고, 목청껏 열창한다. 노래하기 전에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내지르며 가창력을 뽐내는 일이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음악을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선보이는 곡이 3,000곡 이상인 현실에서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음악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시대가 아니다. 사실 그런 시절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뮤지션의 경쟁상대는 다른 뮤지션이 아니다. 게임이고 유튜브 영상이다. 웹툰이거나 OTT 드라마이다. 이제 뮤지션들은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들과 경쟁해 사람들의 시간을 쟁취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어가는 시점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세상에는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듣는 음악만 듣는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 차트 상위권에 오른 음악만 듣는 이들이 절대 다수다. 아니면 자신들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면서 요즘 노래는 들을 게 없다고 푸념한다. 가령 포크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들 중에 김광석과 안치환 이후의 포크 뮤지션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니 뮤지션들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다. 계속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해도 알아주지 않지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면 단숨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 평상시에는 관심 없던 이들이 그제서야 어디서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냐며 환호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라이브 콘서트,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타가 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바이벌 오디션은 뮤지션들에게 마지막 남은 동아줄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몰랐던 뮤지션을 알게 되고 팬이 되는 일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것만은 이야기 하고 싶다. 세상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은 훌륭한 뮤지션들이 여전히 많다. 간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음악으로 경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콘텐츠로 만들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걸고 싶어한다. 그 방식은 음악 자체의 힘을 믿는 방식이다. 새해에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새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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