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를 대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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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를 대변함
  • 한덕현
  • 승인 2022.01.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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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전국 유명 사찰들이 오랫동안 관람료 폐지를 주장하는 측과 숱한 법적소송을 벌였고 지금도 진행중인 곳이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립공원 입구 등에서 관람료를 받을 수 있는 사찰중 현재 13%만 실제로 징수한다는 것을 보면 어쨌든 이 제도는 앞으로 없어질 운명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만 남았을 뿐이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사실 주말 산행을 즐기는 입장에서 가장 언짢은 것은 사찰과는 상관없이 등산만 하는데도 마지못해 내야하는 문화재관람료다. 개인별로 큰 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20194월 지리산 천은사의 문화재관람료가 폐지됐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내쳐 달려가 지리산을 오른 적도 있다. 문화재관람료 하면 천은사만큼 악명높은 곳도 없었다. 천은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861호 지방도를 가로막고 이 곳을 지나는 모든 차량에 반강제적으로 관람료를 받다보니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 다퉜다.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이 도로는 교통량이 많아 민원 또한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청래 파문은 어쩔수 없이 양비론으로 접근해야 할 것같다. 합천 해인사의 문화재관람료 징수행위에 대해 봉이 김선달이라고 발언한 것은 대선정국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시기상으로 적절치 않다. 다만, 이 말은 정청래가 처음 입에 올린 것도 아니고 그동안 관련 논란이 일 때마다 단골로 나왔던 워딩에 불과하다는 것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빌미로 조계종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작금의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전국승려대회까지 열며 대통령과 정부까지를 압박한 처사는, 글쎄다?

불교계가 자신들의 위상과 관련해 이때다 싶어 목소리 한 번 내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것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정치권은 선거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말을 못하지만 사석에선 우호적인 공감보다는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다른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반 시대적인 유산인 문화재관람료를 놓고 종단 차원으로 어깃장을 놨다는 자체가 불교의 이미지에 역풍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조계종의 입장에선 문화재관람료 폐지는 사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사찰이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관람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62, 명분은 전국 사찰에 산재한 각종 문화유적의 관리와 자연환경 보존이었지만 박정희정권은 5년 후 돌연 국립공원 제도를 도입하면서 조계종 재산인 유명 사찰 소유의 땅을 대거 국립공원으로 강제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때문에 사찰의 입장에선 문화재관람료는 이의 상실감을 위무하는 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문화재관람료의 규모가 커지고 이 것의 쓰임 즉 용처가 불분명한데 따른 국민 불신으로, 간단하게 말해 과연 얼마나 걷히고 또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아무리 종교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선 문화재관람료 만큼 눈먼 돈이 없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일제히 폐지된 것을 감안한다면 사찰의 문화유적 관리도 이젠 애먼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해결할 게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책임지는 게 맞다. 지리산 천은사의 경우도 전남도가 공유부지 성격의 일부 사찰 소유 땅을 사들이고 관련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문화재관리의 협치를 약속하면서 폐지가 가능하게 됐다.

이번 정청래 파문을 지켜보면서 돌연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2년 전 불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법주사 스님들의 도박사건이다. 거액의 도박혐의로 법주사 말사주지 4명이 직무정지 됐는가 하면 8명의 스님들이 경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은 희대의 사건 말이다. 이는 결국 법주사 주지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지역사회에도 큰 파문을 던졌다.

말이 주지 선거지 이 역시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일선 기자 시절에 심층취재까지 했던 나로서는 스님들의 도박 소식에 더 이상 할 말을 잊게 됐다. 사찰에 풍족한 불로소득을 안기는 문화재관람료를 곱게 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스님들이 승방에서 시정잡배들처럼 도리짓고땡이나 벌이고 주지선거 때 돈다발이나 살포한다면 이는 불교가 추구하는 불국정토(佛國淨土) 구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종교에 부()가 넘쳐나면 필히 신앙의 가치를 굴절시켰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또한 종교가 세상에, 특히 정치에 지나치게 노출되거나 이 것들과 결탁하면 이는 곧 역사의 불행이 됐다. 로마제국의 종언을 부른 것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기독교의 타락이었고 고려는 요승(妖僧) 신돈으로 상징되는 불교의 정치화로 폭망했다. 조선은 당쟁으로 대표되는 유교의 부패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제정분리와 정교분리가 만고의 진리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며 그러기에 문화재관람료는 폐지가 마땅하고, 불교계가 이번처럼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자칫 정치와 대선에 개입할 소지가 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조계종이 역대정권에서 위기시마다 산문폐쇄라는 배수진을 치며 정부를 압박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망정 이번에는 번지수가 틀렸다. 그렇더라도 그동안 문화재관람료의 순기능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의 명산, 명승지에 사찰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연환경이 보전될 리가 없고 또 문화재관람료가 없었다면 전국 사찰에 산재한 그 숱한 문화재가 온전히 지켜졌을 리도 만무하다.

지난 신천지 사건 때 시대착오적인 신흥종교의 발호를 경계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종교심이 깊어질수록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함께하는 세상,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종교가 성장을 멈추면 종교는 자연히 치부나 치병같은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까지 내면서 진정한 종교는 자기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의 표층 인식을 뛰어넘어 심층의 사유, 스스로 깨달음을 찾아 지성을 넘는 영성에서 참 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다. 불교에 자꾸만 세속의 끈을 연결지으려는 문화재관람료는 당장 폐지돼야 하며, 이를 국회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청래는 단 하나도 그릇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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