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음악 어플에서 추천해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본다. 최근 90년대 발라드와 우울한 노래를 많이 들었는지 유사곡 추천들이 둠칫둠칫 흥겹게 운전을 하기엔 부적합하다. 얼른 드라이브할 때 듣기 좋은 추천곡들로 전환해본다. 전혀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친구 왈 “요새 기상예보 적중률이 거의 100%”라면서 드디어 슈퍼컴퓨터가 열일을 한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다들 눈구경에 차량 속도가 느려지는 건지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추천경로를 바꾼다. 세상에, 오히려 시간이 5분이나 단축되었다. 친구와의 수다 중 갑작스런 엄마의 요청으로 식료품 몇 개를 집으로 배송시키려는데, 최근 내가 사려고 눈여겨봤던 냉동식품이 시간 한정 특가 세일한다는 알림까지 뜨면서 득템의 기쁨도 얻었다. 이렇게 오늘도 음악, 이동경로, 식당, 쇼핑 등 핸드폰 추천 속에 하루를 보낸다. 추천의 늪에 빠져 내 월급통장도 가벼워지는 것 역시 순식간이지만 이런 취향저격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근거 없는 추측이나 그럴싸한 논리, 때로는 관습이 먹히는 시절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누군가의 일상 속 패턴과 취향을 파악하는 데에 ‘데이터’가 그 시작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적된 나의 습관과 행동들이 나를 대표하고, 그것들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온-오프라인이 연계된 활동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정부 역시 경제 전반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디지털 대전환 프로젝트이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기업의 수익 모델, 운영 방식, 문화, 전략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까지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다.
그 일환으로 추진 중인 대표적인 사업이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이다. 기업이 제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구입하거나 가공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데이터 공급기업과의 매칭도 포함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아기가 우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가정방문으로 수집한 아기 울음소리를 기반으로 한 울음 분석 서비스나 1인 여성가구의 안전을 위해 현관 앞 영상정보를 수집하여 이상상황을 감지하는 솔루션이 개발되고, 강수량 등 날씨와 시간대별 하수 맨홀 수위를 분석해 홍수에 사전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나왔다고 한다. 바람이나 파도, 수온 등 해양데이터와 파도에너지 데이터를 확보·가공해 서핑이나 스쿠버다이빙 등 해양레저를 즐기기 위한 적정 날씨를 알려주는 어플도 인기란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방법 도출에 필요한 데이터를 어디에서 어떻게 수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업들에게 컨설팅부터 데이터 공급기업 매칭까지 도와준다니 이것보다 좋을 게 어디 있을까.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2020년의 경우 바우처 지원을 받은 기업의 72.2%가 수도권 기업이라는 점과, 최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설문 결과 디지털 전환에 무관심하다고 답한 기업이 32.4%나 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 신기술을 도입하는 문제를 넘어 고객의 기대나 기업 생태계의 변화를 기업이 직접 확인하고 생존을 고민하는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체감도가 높지 않다는 점은 좀 당황스럽다.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적극 그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충북도의 역할은 지역기업들에게 그 바람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릴 수 있는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일이고, 적극적인 정보 공유와 관련 기관과의 협업으로 시작해보고자 한다. 최근 어떤 글에서 읽은 ‘데이터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고픈 수많은 기업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이 오늘따라 뭉클하게 떠오른다. 내가 그렇다.